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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일담 === {{인용문|관우에게는 장무후(張繆侯)의 시호가 내려졌다. 그의 아들 흥(興)이 그의 뒤를 이었는데, 관흥(關興)은 자(字)를 안국(安國)이라 했고 어려서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다. 승상 제갈량은 그의 그릇됨이 매우 남다르다고 보았다. 약관(弱冠)의 나이에 시중(侍中)과 중감군(中監軍)을 지냈지만 몇해 뒤에 죽었다. 그의 아들 통(統)이 그의 뒤를 이었는데 관통은 공주를 아내로 맞았다. 관직은 호분중랑장(虎賁中郞將)에까지 이르렀으나 그가 죽은 후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관흥의 서자 이(彛)가 뒤를 이어 작위에 봉함을 받았다. 「촉기(蜀記)」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처음에 관우가 출전하여 번성을 포위했을 때 돼지가 그의 발을 무는 꿈을 꾸었다. 관우는 이것을 그의 아들 평(平)에게 말하며, "나도 이제 늙었나 보다. 돌아올 수 없을 것 같구나!"라고 했다. 「강표전(江表傳)」에 이르기를, 『관우는 좌씨전(左氏傳)을 좋아하여 내용을 모두 외울 수 있었다.』고 한다. 「촉기(蜀記)」에 이르기를, 『방덕(龐德)에게는 회(會)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종회(鍾會)·등애(鄧艾)를 따라 촉(蜀)을 정벌했다. 촉이 망하자 관씨(關氏)의 가문은 모두 멸하여 그 대(代)가 끊어졌다.』고 했다.}} 나~중에 촉이 쫄딱 망하면서 방덕 아들한테 관씨 성 가진 놈들이 죄다 몰살당했는데, 이 쪽은 관흥 후손이고 관평 후손이 오나라 땅에 남아 있어서 관우 후예가 아직까지 살아있다고 전해진다.<ref>관우의 후손인 관충운이 6.25전쟁때 중공군으로 참전했다고 함.</ref> 그리고 방회(방덕 아들)는 이 일로 존나 까인다. 생각해 봐도 지 애비 복수한답시고 무고한 서주 주민들까지 학살하던 [[조조]]하고 비슷한 또라이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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