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관우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관우에 대한 몇가지 일화 == === 조조의 형주 진공 이후 유비에게 대든 관우 === {{인용문|「촉기(蜀記)」에 이르기를, 처음에 유비가 허도(許都)에 있을 때 조공(曹公)과 함께 사냥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사냥 중에 무리가 흩어지자 관우는 유비에게 조공을 죽일 것을 권했지만 유비는 이에 따르지 않았다. 하구(夏口)에 이르러 장강(長江)가를 떠도는 처지가 되자 관우는 화를 내며 말하기를, "지난날 사냥을 할 때 만약 이 관우의 말을 들었다면 오늘과 같이 곤란한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유비는 "그때는 다만 국가를 위해 조조의 재주를 아깝게 생각했을 뿐, 만약 천도(天道)가 옳은것을 돕는 것이라면 이것이 복(福)에 어긋나는 것이었음을 알았겠는가?"라고 했다. 신(臣) 배송지(裵松之)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유비는 후에 동승(董承) 등과 함께 모의하여 조공(曹公)을 죽일 것을 결의하였지만, 일이 사전에 탄로나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만약 유비가 국가를 위해 조공을 아깝게 생각했다면 그의 이러한 언행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 관우가 이와 같이 권했을 때 이것을 옳게 여겨 듣지 않았던 것은 조공을 따르는 심복이나 친척의 무리가 많아, 미리 심사숙고하여 일을 하지 않고서는 이를 행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공이 비록 살해된다고 해도 자신의 몸이 반드시 징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는 계산을 했기 때문에 유비는 이를 하지 않은 것이었을 뿐, 어찌 조공을 아끼는 마음이 있었겠는가? 이미 지나간 일이었기에 단지 아름다운 말로 꾸며댄 것일 뿐이다.』}} 촉서 관우전,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지 주군한테 대드는 거랑 유비 변변찮은 변명 보소 === 청니 대치 당시 악진에게 패한 관우 === {{인용문|후에 형주를 평정하는데 종군하여, 양양(襄陽)에 남아 주둔하면서 관우, 소비(蘇非) 등을 쳐서 모두 패주시키니, 남군(南郡)과 여러 군의 산과 계곡의 만이(蠻夷)들이 악진에게 와 항복했다. 또 유비와 임저(臨沮)현장 두보(杜普), 정양(旌陽)현장 양대(梁大)를 토벌하여, 모두 크게 격파했다.}} 위서 악진전에서 인용 ㄴ관우전엔 이런 내용 찾아볼수도없던데 ㄴㄴ위서 악진전에 나와있다 === 관우가 북쪽길을 끊다 === {{인용문|유비와 주유는 강릉에서 조인을 포위하여 공격하고 따로 관우를 보내 북쪽길을 끊어 놓았다. 이통은 부대를 인솔하여 공격했는데, 말에서 내려 방책을 걷어내고 포위권으로 진입하여 싸우면서 앞으로 나가 조인의 군사를 구출하여, 무용이 여러 장수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다.}} 위서 이통전에서 인용 === 마취제 없이 수술을 받은 관우 === {{인용문|일찌기 관우는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그의 왼쪽 팔을 관통당한 일이 있었다. 뒷날 비록 낫기는 했지만 흐린 날이나 비가 오는 날에는 욱신거리고 아팠는데, 의원이 말하기를, "화살 촉에 독(毒)이 있어 그것이 뼈속으로 들어가서 그런 것이니, 마땅히 팔을 가르고 뼈를 깎아내면 이 고통은 자연히 없어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관우는 순순히 팔을 뻗어 의원에게 자신의 팔을 가를 것을 명했다. 이때 마침 관우는 여러 장수들을 초청하여 음식을 먹으며 서로 마주 대하고 있었는데, 피가 흘러내려 받쳐놓은 대야에 가득넘쳤다. 그러나 관우는 구운 고기를 자르고 술을 마시며 담소(談笑)를 나눌 뿐 태연했다.}} 촉서 관우전 === 감녕이 익양대치 때 지킨다는 소리를 듣고 감히 진격하지 못한 관우 === {{인용문|후에 노숙을 수행하여 익양을 진무시키고 관우에게 대항했다. 관우는 3만 명의 병사 중 직접 정예병사 5천 명을 선발하여 상류 10여 리의 얕은 여울에 배치하고 밤을 틈타 냇물을 건너려 한다고 말했다. 노숙이 장수들과 상의할 때 감녕은 당시 3백 명의 병사만 있었으므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시 저에게 5백명을 증원시켜 줄 수 있다면,제가 가서 그에게 대항하겠습니다. 관우는 제가 기침하여 가래침을 뱉는 것을 듣고 감히 물을 건너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물을 건너면 저의 포로가 될 것입니다. 노숙은 곧바로 병사 1천명을 선발하여 감녕에게 더해 주었다.감녕은 그날 밤에 갔다.관우는 이 소식을 듣고 건너지 못한 채 머물러 있으면서 땔나무를 엮어 진영을 만들었는데,오늘날 이것을 관우뢰라고 부른다. 손권은 감녕의 공로를 칭찬하고 서릉태수로 제수했으며,양신.하치 두 현을 통솔하도록 했다.}} 오서 감녕전에서 인용 === 서황의 말에 당황한 관우 === {{인용문|관우는 서황과 더불어 예전부터 서로 경애했다. 멀찍이서 함께 대화했는데 다만 평생(平生-평소)의 일만 말할 뿐 군사(軍事)는 언급하지 않았다. 잠시 뒤 서황이 말에서 내리며 영을 내렸다, “관운장의 머리를 얻어 오는 자는 금 1천근을 상으로 내릴 것이다.” 관우가 놀라고 두려워하며 서황에게 말했다, “대형(大兄), 이 무슨 말이오!” 서황이 말했다, “이는 나라의 일이오.”}} 촉서 관우전에서 인용 ㄴ이게 서황이 무서워서 벌벌떤 내용이냐? 친하던 사람이 죽이려고 드니까 놀란거지. 저 시대에 쓰여진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병신이또... ㄴ네 다음 관빠 ㄴ나도 딱히 이걸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는 내용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관까 새끼들이 많긴 많구나 ㄴ사적인 대화 나누다 정색빠는거보고 왜이러냐는게 무서워서 벌벌떤건가 ㄴ 응 그래서 싸우지말라고 문서 제목 수정해뜸 ㅇㅇ ㄴ'''놀라고 두려위하며''' 라 써져 있는데 ㅋㅋ ㄴ 결국 서황심리전에 고나우 걸려서 좆된 거 아니냐 ㅋㅋ 서황이 친한 척하면서 처음에 노가리 까니까 관우 병사들이 어 뭐야 하면서 좀 긴장 풀고 있다가 갑자기 고나우 죽여! 하고 자기 대장이 어 형 왜 그래 하면서 놀라는 거 보면 사기가 어떻게 되겠냐? 고나우 ㅄ 서황한테 농락당함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