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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호 == 촉한에서 관우의 시호는 장목후(장무후라고 해도 된다)인데 송나라 때부터 갑자기 왕의 시호가 붙기 시작하더니 명나라때는 협천호국충의대제라는 식으로 황제 칭호까지 붙기 시작한다. 이후 청나라에 들어서 충의신무영우인용위현호국보민정성수정익찬선덕관성대제(忠義神武靈佑仁勇威顯護國保民精誠綏靖翊讚宣德關聖大帝)는 최종 시호가 붙었으며 증조부는 광소왕(光昭王)으로, 조부는 유창왕(裕昌王)으로, 부친은 성충왕(成忠王)으로 다시 추존되었다. 이쯤되면 자식 빨도 이만한 자식 빨이 없을듯. [[청나라]] [[옹정제]] 때는 아예 전국 각지에 관묘를 세울 것을 지시해서 공자의 제사와 같이 본다, 가을에 성대히 문무백관이 참석한 가운데 황제가 직접 제사를 행하고 관우를 주신으로 국가적인 제사가 행해지기 시작했다. 이쯤되면 관우가 뭘했다고 공자랑 동급 취급 받는지 의문이다. 솔직히 아닌말로 진짜 군신으로 추앙받아도 하등 이상할것이 없는 조선의 충무공 [[이순신]]도 추증해서 겨우 영의정 붙여 줬는데 관우는 뭘 했다고 관성대제라고 불린단 말인가. 그의 주군 유비나 같이 묶여서 툭하면 까이는 제갈량도 저런 엄청 휘황찬란한 시호를 받진 못했다. 현대 인터넷의 관까 추세는 이런 역대 중국왕조들의 관우 신격화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된 것일수도 있다. 까놓고 [[삼국지연의]]에서 공적이 많이 부풀려진 장수중 하나가 관우이기도 하고. ㄴ당연히 조조 밑에 있다가 유비에게 돌아간 충성심(사실 똥아시아의 유교 탈레반들이 노예 근성을 좋게 포장한 단어) 때문이다. 조조가 여자 안 줘서 삐져가지고 그랬다는 얘기도 있지만 조조 밑에 있었으면 이쁜 여자들 잔뜩 끼고 광란의 파티 벌일 수 있을텐데 고작 그거갖고 유비한테 돌아가 개고생을 했을까. 아무튼 관우가 장군으로서 까이는건 반박불가지만 충신(노예)인건 맞다. 그러니까 황제들도 관우 띄워주며 신하들한테 네들도 관우같은 충성심 좀 가져보라며 노예근성 교육 시킨거다. 네들도 만약 황제 됐는데 관우처럼 충성 바치는 신하 있으면 싫겠냐. ㄴ근데 내가 위에서 충성심을 노예근성 포장한 단어라고 깠는데 "그럼 이순신 장군님도 왜군에게 붙어 출세할 수 있었는데 계속 자신을 갈궈댄 조선에 충성을 했으니 노예근성이냐"라고 반박할까봐 미리 말한다. 유비는 '군벌'이고 조선은 '나라'다. 이순신 장군님은 선조 새끼가 아니라 조선에 충성한거다. 위의 황제 새끼들은 자기한테 충성하는 노예가 되라고 관우 띄워준거고. 좋은 의미로 충성심이란 단어를 사용하면 갓순신 장군님이야말로 관우보다 더한 충신이다. ㄴ갓갓갓의 충성심이야 더 말할 필요가? 그런데 유비도 서촉 들러가고 한중왕 드립치고 왕이 되고 황제가 됨, 즉 이렇게 따지면 관우는 개국공신이란 거지. 사실 따지고면 개국초에 군벌아닌 집단도 있냐, 위촉오 다 그런점에선 같다, 왕건만해도 송악의 유력호죽 출신이고, 갓갓갓이 충성하신 조선왕조도 근본을 거슬러 올라가면 몽골에 투항해 세력을 키우던 동북면 군벌이나 매한가지 아님?그런 식으로 말하면 모든 개국공신들은 노예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밖엔 안된다. 심지어 킹세종의 아버지 이방원은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담면서 조선왕조 세운 공신 아니냐? 유비가 나라를 세우지 못 했다면 야 그렇수도 있겠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촉한이 나라가 아니라고 할 순없다. ㄴ그리고 전제군주제 사회에서 왕이 심각한 잘못을 저질로 하늘과 백성에게 버림 받지 않는한 신하들은 왕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을 수 없다 왜냐면 왕이라는게 '그 나라'를 만든 조종조와 사직을 대표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대에 사는 민주주의 공화국의 시민이라 당시의 이런 믿음을 질 모르지만 갓갓갓은 왕이 심각한 하드트롤러임에도 왕, 조선조정. 백성들에게 모두 충심릏 바친인물이다. 전제군주제에선 결국 충이라는 단어 사용이 이렇다, 괜히 선조의 하드트롤링 중 하나인 명나라 도주가 신하들에게 까인게 아니다. 의주 넘어서 중극으로 런하려 힐때 이산해나 유성룡이 '장난합니까? 시발 왕이 나라의 어버이 인데 어버이가 자식을 버려요? 여기서 왕노릇하기 진짜 싫으신가 보죠? 압록강 건너면 닌 왕 아님. 정 갈거면 세자한테 양위하고 가시죠?'이런 말이 나올랑 말랑해서 선조가 그만두었다. 전제군주제에서 왕의 위상이 이렇다는 거다. 요즘 얼치기 역사강사들(특히 설 뭐시기)이 말하는 것 줌에 이순신이 선조를 충심을 섬기자 않았다 운운하고 이순신이 "무능한 왕조가 아니라 백성을 위해 싸웠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이는 상당히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이다. 여러 사료에서 볼 때, 이순신은 선비로서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를 다하는 유교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 그렇다고 백성을 위해 싸우지않았다는 말도 맞는 말은 아니다. 충무공은 최전방에서 전장의 참혹함을 실제로 느낀 분이고 이 전쟁에 희생되어가는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을 다한다. 피난민들을 모두 받아들여 그들이 안전하게 살아 갈 수 있도록 목민관으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했다. 따라서 충이라는 단어를 포장해서 '임금에게 충성하지 않는 충'이란 소릴 갓갓갓이 들었으면 대노할 소리다. 본디 원래 충(忠)이라는 말의 뜻은 어떤 일에 있어서 끝까지 성심을 다라는 마음을 뜻하며 꼬한 '올곧은 마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란 뜻이었다. 관우고 이순신이고 자기가 믿는 가치를 위해 성심을 다한 올곧은 마음으로 군주를 섬겼다고 보는것이 맞다. 그리고 관유가 신이된건 산시성 소금장수들이 저신들이 믿던 관우신앙을 돌앋니며 전국에 전파한된 것도 있는데 소위 위정자들이 이런 풍토에다가 도가적 성향이 강한 태공망 여상대신 유가적 성황이 강한 관우로 바꾼 이유도 있었다. 즉, 원래 백성들에게 퍼진 관우 신앙을 국가가 정책적으로 이용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그리고 유교적 충을 단순히 왕의 말만 듣는 딸랑이가 되라는게 아니다. 관우의 강직한 성품을 본받아 임금이 잘못한다면 그걸 목숨을 걸고서랃 지적할줄 알아야 한다는것 역시 충이다. 우리나라 경우엔 임진왜란 당시 쪽바리를 물리쳐줬다하여 관제묘가 몇 개 세워져 있는데 가지 마라. 중국인들밖에 없다. 중국에서 관우는 전쟁의 신을 비롯하여 부+복의 신으로 추앙받고 아예 관우라고 불리지도 않고 관공으로만 불린다. 이 관공신앙이 아니었다면 관우의 고향인 윈청 시는 서부의 깡촌 1밖에 안됬을지도 모른다. 근데 관우가 왕, 진군 소리 붙은건 이미 송나라때부터였고 [[삼국지연의]]는 원말명초 소설이다. 뭐든 삼국지연의, [[나관중]] 탓으로 돌리면 편하긴 하겠지. 연의 탓, 나관중 탓부터 하는 새끼들은 연의 이전에 나왔던 삼국지평화 같은 거 보면 거품물고 뒤집어질 듯. ㄴ 근데 위쪽 어디를 찾아봐도 관우가 신이 된 건 전부 삼국지연의 때문이다! 나관중 OUT! 이라는 내용은 없고 그냥 역사적으로 왜 관우는 신까지 된거냐 정도인데 넌 왜 갑자기 쉐도우 복싱하고 있음? ㄴ근데 이순신도 나중에 왕이 인정하고 제사차려줄정도로 대우받고 무속에서 전쟁의신으로 모시지 않음? 후대에 박문수가 이순신만큼 못한다고 까이고 정조가 엄청 빨아주잖이?게다가 숙종이 고맙다고 엄청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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