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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소의 장수 안량을 베고 유비에게 돌아가다 === {{인용문|건안(建安) 5년, 조공(曹公)이 동쪽 정벌길에 나서자 선주(先主)는 패(敗)하여 원소(袁紹)에게로 달아났다. 조공은 관우를 사로잡아 돌아갔는데, 그에게 편장군(偏將軍)의 벼슬을 내리고 예(禮)로써 심히 후하게 대우했다. 원소(袁紹)가 대장 안량(顔良)을 파견하여 동군태수(東郡太守)유연(劉延)을 백마(白馬)에서 공격하자, 조공(曹公)은 장요(張遼)를 관우과 함께 선봉으로 삼아 맞서게 했다. 관우는 안량의 대장기와 마차의 덮개를 멀리서 바라보더니 말을 채찍질하여 달려 나가서는 수만의 병사들 사이에 있는 안량을 찔러죽이고 그의 목을베어 돌아왔다. 그러나 원소의 여러 장수들 중에 능히 관우를 당할 자가 없었기 때문에 원소는 하는 수 없이 백마의 포위를 풀고 물러났다. 이에 조공(曹公)은 즉시 표(表)를 올려 관우를 한수정후(漢壽亭侯)로 봉했다. 처음에 조공은 관우의 사람됨이 용감하고 기상이 굳세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오래 머무를 뜻이 없는 것을 살피고 장요에게 말하기를, "경(卿)이 그의 뜻을 시험해보게."라고 했다. 장요가 관우에게 그의 의중을 물어보니 관우는 탄식하며 말하기를, "나는 조공께서 나를 후히 대우해주는 것을 잘 알고 있소. 그러나 나는 유장군(劉將軍:유비)의 후한 은혜를 입었고, 함께 죽을것을 맹세하였으니 이를 어길 수는 없소. 그러니 여기 끝까지 머무를 수는 없고, 대신 다른 공을 세워 조공께 보답하고 떠날 것이오."라고 하였다. 장요가 이를 조공에게 보고하자 조공은 관우가 진정 의기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안있어 관우가 안량을 죽이자 조공은 그가 반드시 떠날 것임을 알고 상을 무겁게 베풀었다. 그러나 관우는 그 상을 모두 봉(封)해 놓고 떠나감을 알리는 글을 올려 놓은 후 선주(先主)가 있던 원소군으로 달아났다. 조공(曹公)의 좌우에 있던 사람들은 관우를 추격하려 하였지만,조공은 "누구나 각기 그 주인이 있는 것이니 추격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부자(傅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장요가 이를 태조(太祖:조조)에게 고하려 하다가 태조가 관우를 죽일까 두려워하여 말하지 못했는데, 이는 군주를 섬기는 도리가 아니었으므로 곧 탄식하며 말하기를, "조공은 나의 군부(君父)요,관우는 형제와 같다." 그러면서 관우가 한 말을 고했다. 태조는 "군주를 섬기는 근본을 잊지 않았으니 천하에 다시없을 의사(義士)로다. 그러면 언제쯤 떠날 것 같은가?"라고 묻자, 장요는 "관우는 공(公)의 은혜를 입었으니 공을 세워 이를 보답한 연후에 반드시 떠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신(臣) 배송지(裵松之)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조공이 관우가 머무르지 않을 것을 알고도 내심 관우의 뜻을 아름답다고 여겼다. 떠나가는 관우를 추격하여 잡지않고 그가 갈 수 있도록 내버려 뒀는데, 이는 왕의 으뜸가는 도량이라 아니할 수 없음이니, 어느 누가 능히 이를 따를 수 있겠는가? 이것은 조공(曹公)의 용서하는 미덕의 결실이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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