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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주에서의 관우 === {{인용문|관우는 선주(先主)를 따라 유표(劉表)를 따르게 되었다. 유표가 죽자 조공(曹公)은 형주(荊州)를 정벌했는데, 선주는 번성(樊城)에서 남쪽으로 강을 건너려고 하며 별도로 관우를 보내 수백 척의 배를 이끌게 하여 강릉(江陵)에서 만나기로 했다. 조공은 추격을 계속하여 당양(當陽)의 장판(長阪)까지 이르게 되자, 선주는 한진(漢津)을 끼고 달려 관우의 배와 서로 만나게 되었고 함께 하구(夏口)에 이르게 되었다. 손권(孫權)이 병력을 보내 선주를 도와 조공을 막도록 하자, 조공은 군사를 이끌고 퇴각하여 돌아갔다. 선주는 강남(江南)의 여러 군(郡:무릉·장사·영릉·계양 등)들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고, 공이 있는 자들에게 상을 내렸으며 관우를 양양태수(襄陽太守)·탕구장군으로 봉하여 강북에 주둔하게 했다. 선주가 서쪽으로 익주(益州) 원정길에 올랐을 때, 관우에게 형주(荊州)를 맡아 지키도록 하였다. 마초(馬超)가 선주에게로 투항하 여 왔다는 소식을 듣자, 일찌기 그와 교류하며 지냈던 사람이 없었던 까닭에 관우는 제갈량(諸葛亮)에게 글을 써 보내 마초의 인물됨과 재주가 누구와 비교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제갈량은 관우의 오만함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곧 답장을 보내"마맹기(馬孟起)는 문무(文武)를 겸비했고 그 능력은 보통 사람을 뛰어넘는 일세의 호걸로써, 경포·팽월(彭越)과 같은 무리일 것이니 마땅히 익덕(益德)과 나란히 앞섬을 다툴 수 있을 것이고, 미염공(美髥公)의 절륜(絶倫)함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오."라고 했다. 관우는 수염이 아름다웠기 때문에 제갈량은 옛날부터 그를 '염(髥)'이라 했다. 관우는 서신(書信)을 살펴보더니 크게 기뻐하며 이를 빈객(賓客)들에게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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