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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우 상대로 서황이 펼친 전략 ==== {{인용문|태조가 마침내 직접 양평에 이르러, 한중의 여러 군대를 이끌고 나왔다. 다시 서황을 보내 조인을 도와 관우를 토벌하며 완(宛)성에 주둔하도록 했다. 한수가 급작스레 범람하게 되어 우금 등이 물에 잠겼다. 관우는 번성에서 조인에 대한 포위를 풀고, 또 양양(襄陽)에서 장군 여상(呂常)을 포위했다. 서황이 거느리던 병사에는 신병들이 많아, 관우와 예봉을 다투기 어려워, 마침내 양릉피(陽陵陂)의 둔영으로 전진했다. 태조가 다시 돌아와, 장군 서상(徐商), 여건(呂建) 등을 서황에게 보내면서 영을 내리길 "모름지기 병마(兵馬)가 집결하게 되면, 함께 전진하라"고 했다. 적(賊)들이 언성(偃城)에 주둔했다. 서황이 도착하자, 거짓으로 길에 참호를 파서, 적의 배후를 끊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적들이 둔영을 불지르고 달아났다. 서황이 언성을 얻고서는, 양쪽에서 진영을 이어 차츰 전진하니, 적의 포위망에서 3장(丈) 떨어진 곳까지 왔다. 태조가 (이 때의) 전후로 해서 은서(殷署), 주개(朱蓋) 등 무릇 12개의 영을 파견해 서황에게 가게 했다. 적은 위두(圍頭)에 주둔하였고 또 따로 사총가에 주둔하였다. 서황은 일부러 큰소리로 위두의 진영을 공격하라고 하고는 몰래 사총을 습격했다. 관우는 사총이 격파되는 것을 보고 친히 5천 명의 보병과 기병을 인솔하여 서황과 교전하였는데 서황은 관우를 격퇴시키고, 그대로 포위망 안까지 깊숙이 추격하여 끝내 적을 무찔렀으며, 어떤 적들은 달아날 길이 없자 면수(沔水)로 뛰어들어 죽었다. 태조가 영을 내리길 "적의 참호와 녹각의 포위망은 열 겹이나 되었는데, 장군은 전투를 매번 이기게 하여 마침내 적의 포위를 함락시키고, 많은 적의 머리를 베었다. 내가 용병(用兵)을 한지가 30여년인데, 옛날에 용병을 잘했다고 들었던 자도 오래 동안 핍박당하면서 샛길로 적의 포위망에 진입했던 자는 없었다. 또한 번성과 양양이 포위당했던 것은 거(莒)와 즉묵(卽墨)(이 포위되었던 때의 일)보다 심했으니 장군의 공은 손무(孫武)나 양저를 넘는다"고 했다. 서황이 군대를 떨치며 마피(摩陂)로 돌아오니, 태조가 7리나 나가 서황을 맞이하고 주연을 크게 베풀었다. 태조가 술잔을 들어 서황에게 권하며, 또 그를 위로하며 말하길 "번성과 양양을 보전하게 된 것은 장군의 공이요"라 했다.}} 위서 서황전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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