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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우에 대한 여몽의 평가와 대 관우상대로 오가 취한 통수 전략 ==== {{인용문|노숙이 죽자, 여몽은 서쪽으로 육구에 주둔하며 노숙 군대의 인마 1만여 명이 모두 여몽에게 속했다. 또 한창태수(漢昌太守)에 배수되고, 하준(下雋) 유양(劉陽) 한창(漢昌) 주릉(州陵)을 식읍으로 했다. 관우와 땅을 나눠 접경하고 있었는데, 관우가 매섭고 빼어난데다 (오를) 병합하려는 마음이 있지만 또 그 나라가 상류에 있어 형세상 오래가기 어려움을 알았다. 처음에 노숙 등은 조공이 아직 살아있음으로 해서 화난(禍難)이 이제 시작되었는지라 마땅히 서로 도와야지 같이 원수가 되어 잃어서는 안된다고 여겼다. 여몽이 은밀히 계책을 진언하길 정로장군(征虜將軍; 손교(孫皎))에게 남군을 지키게 하고, 반장(潘璋)은 백제(白帝)에 주둔하며, 장흠(蔣欽)은 유격병 1만명을 거느리고 장강을 아래위로 순행하며 적이 있는 곳에 따라 대응하고, 저는 나라를 위해 양양을 먼저 점거하여 그렇게 된다면, 조조에 대해 걱정할 게 무어며 관우에게 힘입을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또 관우는 신하인데 사기와 힘을 존숭하여 거꾸로 뒤엎는 것(反覆)이 있으니, 마음깊이(腹心) 기대할 수 없습니다. 지금 관우가 바로 동쪽으로 향하지 못하는 것은 지존께서 성명(聖明)하고 저희 등이 있기 아직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강하고 성할 때 도모하지 않는다면, 하루 아침에 엎어질 것이니, 다시 힘을 펴고자 해도 얻을 수 있겠습니까?라 했다. 손권이 마음 깊이 그 계책을 받아들였는데, 또 다시 그와 서주를 취할 뜻을 의논하였더니, 여몽이 대답하길 지금 조조는 멀리 북방에 있어, 새로이 여러 원씨(袁氏)를 격파해 유주(幽州)와 기주(冀州)를 위무하고 안집(安集)하느라 동쪽(동오)으로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서주 땅의 수비병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가면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세가 육지와 통하고, 날랜 기병이 달리는 곳이라, 지존께서 지금 서주를 얻는다 할지라도 조조가 후일 반드시 와서 쟁패를 벌일 것이고, 비록 7~8만명으로 수비한다 해도, 오히려 응당 걱정하게 될 것입니다. 관우를 취해 장강을 모두 점거하여 형세를 더욱 늘릴 만 못합니다라 했다. 손권은 이 말이 더욱 옳다고 여겼다. 여몽이 노숙을 대신하게 되어 처음으로 육구에 이르러서, 겉으로는 은혜와 후의를 더욱 닦아 관우와 우호를 맺었다.}} 오서 여몽전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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