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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원균]]에게 곤장형을 내렸다. 다시 어명 씹으면 넥슬라이스해주겠다는 포스에 지린 원균은 냅다 출전해서 칠천량에 전 수군을 꼬라박고 자기도 뒤졌다. 이로 인해 조선 해역은 위기에 처하지만 대신 이순신의 재기용을 초래하기도 했다. 갓율 인정합니다…. 권율은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자 해줄 거 다 해줬다. 원균을 위해서 곡식을 엄청 징발해다 원균에게 군량미로 쓰라고 갖다 바쳤고 원균이 육상작전을 해보겠다고 하자 권율은 진주성 병력 중에서 5천명이나 빼다가 원균에게 붙여줬다. 게다가 권율은 원균에게 은괴를 꽤 많이 줘서 그걸로 각종 총통의 탄약을 사라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지원을 제대로 받음에도 불구하고 원균은 사리사욕을 채울 목적으로 왜군 수송선을 상대로 함포는 일절 발사하지 않고 계속 접근만 하다가 결국 노꾼들이 넉다운되어 배를 12척이나 잃고 만다. 자초지종을 들은 권율은 조선 수군이 왜군 수송선을 상대로 배를 잃는 역사적인 병크에 치를 떤 나머지 원균을 패버렸다. 그래도 권율은 원균을 뚜까팼어도 물자는 계속 지원해줬는데 원균은 칠천량에 나가서는 부하들을 고기방패 삼아 지 혼자 도망쳤다. 폭뢰격을 쓸줄안다. 관노비 출신 [[정충신]]이 권율의 공문서 셔틀이었을 때 행주대첩을 비롯한 전투에 참여하고 우체부 역할까지 맡는다. 갓율은 전속 우체부조차 존니 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위키보면 패배를 자주 했지만 방어전은 괜춘한 장군이라고 까내리고 있다. 일본이 아득바득 까는걸 보니 최강 갓장군님이라는 사실이 증명된 셈 ㄴ 일본 위키에서는 김명원을 권율이라고 착각해서 김명원의 행적을 권율에게 덧씌웠다. 사실 일본인들은 안면인식장애가 좀 있어서 [[진주대첩]] 당시 진주목사가 [[김시민]]이었는데 김시민이 전사한 걸 모르고 있었고 그 후 2차 진주성 전투 당시의 진주목사가 서예원으로 변경되었음에도 일본놈들은 서예원을 김시민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일본 위키에서는 권율 = 도원수, 김시민 = 진주목사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저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실제로 권율은 패한 전투가 하나도 없다. 원래는 90살 넘게 오래 살 사람이었다. 당장 46살에 과거 급제해서 55살 나이에 어지간한 청년들처럼 날뛰며 무예를 보여준 양반이다. 그러나[[임진왜란]] 당시 얼마나 모진 고생을 했는지 임진왜란이 끝나자마자 폭삭 늙어버렸고 결국 임진왜란 종전 이듬해인 1599년에 사망해 버렸다. 굉장히 건강한 사람이고 강골에 장사 체령이기까지 한 양반인데 이런 강인한 권율조차 폭삭 늙고 후유증으로 죽게 할 정도로 [[임진왜란]]은 그에게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줬다. [[분류: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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