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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1}} == 개요 ==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전 1년]] 즉 [[기원전 10세기]]부터 [[기원전 1세기]]까지를 말한다. == 대제국, 철학, 종교의 출현 == === 제국 === 철기가 나타나면서 기존의 청동기 문명들을 제압한 신흥 국가들이 나타났다. 중동에서는 [[아시리아]] 제국, [[페르시아 제국]] 등이 나타났고, 이후 유럽에서도 마케도니아 제국과 [[로마 공화국]] 등이 등장했다. 인도에서는 [[마우리아 제국]]이, 중국에서는 [[진나라]]와 [[한나라]]가 나타나면서 [[선진시대]]가 끝나고 [[진한시대]]가 열렸다. 기원전에서 기원후로 넘어가는 시점 세계를 4분할했던 [[로마 제국]], [[파르티아]], [[쿠샨 제국]], [[한나라]]는 유럽 문화권, 중동 문화권, 인도 문화권과 동아시아 문화권의 시초가 되었다. === 철학 === 4대 문화권이 형성되면서 철학과 종교가 발전했다. 철학부터 보자면 동양에서는 피튀기는 전쟁이 매일같이 벌어지던 [[춘추전국시대]]를 겨우겨우 살아가던 사람들이 '인간은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고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생각의 체계가 정립되었고 이것은 [[유가]], [[도가]] 등의 [[제자백가]] 등장으로 이어졌다. 서양에서는 그리스에서 폴리스가 나타남과 동시에 무언가를 탐구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이런 문화가 발전하던 도중 최초의 철학자, 과학자, 수학자인 [[탈레스]]가 서양철학의 출발을 알렸다. 이후 밀레토스 학파가 형성되었고 그 후에는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가 대립했다. 소크라테스 이후에는 [[플라톤]]이 서양 이상주의의 토대를 제공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과 서양 과학의 틀을 잡았다. 마케도니아 제국 등장 이후에는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가 나타났다. === 종교 === 종교의 경우에는 동양에서는 철학과 함께 나타난 편이다. 인도에서도 베다 철학이 브라만교와 그를 계승한 힌두교에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브라만교의 카스트 제도를 비판하면서 [[고타마 싯다르타]]가 만든 [[불교]]와 [[바르다마나]]가 만든 [[자이나교]]가 나타났다. [[인도유럽어족]] 신화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 [[북유럽 신화]], [[조로아스터교]], [[힌두교]] 등이 파생되었고, 조로아스터교가 이스라엘의 야훼 신앙에 영향을 끼치면서 [[유대교]]가 등장했다. 유대교는 훗날 [[기독교]]와 [[이슬람]]의 탄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러모로 세계의 문화, 철학, 종교를 결정한 중요한 시기였던 것. == 당시의 세계 == === 동아시아 === 철기가 확산되면서 문명 시대를 벗어나고, 중국 외의 한반도, 베트남, 일본 열도 등에서 초기 국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 중국 ==== 중국은 [[선진시대]]와 [[진한시대]] 사이에 끼어 있다. ===== 서주 ===== [[주나라]]가 황허 강 유역에서 봉건제를 실시하며 존속해왔다. [[기원전 841년]] 이전의 역사는 연대를 검증할 수가 없으며, 그 이후의 '공화시대'부터 연대를 검증할 수 있다. 사마천의 [[사기(역사서)|사기]]에 따르면 [[기원전 770년대]]에 주나라 [[유왕]]이 [[포사]]라는 여자를 웃게 만들기 위해 거짓으로 봉화를 피워 제후들에게 낚시질을 시전하다가, 진짜로 견융족이 침입하면서 진짜로 봉화를 피웠으나 제후들은 낚시인 줄 알고 가지 않았고, 결국 수도인 호경이 털리면서 수도를 낙양으로 옮기고 [[동주]]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유왕과 포사 이야기는 하상교체기와 상주교체기에 나타나는 여자+폭정->역성혁명 이야기에서 역성 혁명이 일어나는 것만 빼놓은 창작일 가능성이 높고, 여하튼 [[기원전 770년]]에 [[춘추시대]]가 시작되었다. ===== 춘추 시대 ===== 춘추시대에는 주나라 황실의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그 권위를 잃었고, 제후들이 실제 권력을 잡았다. 제후들은 [[존왕양이]] 사상으로 주나라 황실을 받들고 오랑캐들을 몰아낸다는 이유를 댔지만, 실제로는 스스로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이렇게 주나라는 여러 제후국으로 분열되었다. 춘추시대는 제후국들이 서로를 감시, 견제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고, 기본적으로 주나라 황실에게 일일히 보고해야 전쟁을 인정받았다. ===== 전국 시대 ===== [[기원전 403년]]부터는 진나라에서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가 갈라져나오면서 [[전국시대]]가 시작되었다. 전국시대부터는 주나라 황실을 완전히 개무시하고, 견제와 감시로 유지되는 체제는 무너지고 서로 개판 오분 전 싸움을 벌였다. [[기원전 256년]]에는 아예 주나라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합쳐 [[춘추전국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기가 너무 혼란스러워서 살아남는 법을 고민해야 했고, 여기서 [[제자백가]]가 등장했다. 제자백가의 일파인 [[법가]] 사상을 받아들인 [[진나라]]는 [[진시황제]]가 [[기원전 221년]]에 전국 7웅의 국가들을 전부 제패하고 전국시대를 끝내면서 [[진한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 진 및 초한전쟁 ===== 통일된 중국의 [[진나라]]는 진시황이 처음으로 황제를 선포하면서 중화제국을 성립시켰다. 중화제국은 [[1912년]] [[청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동아시아의 질서를 통제해왔다. 그리고 도량형과 문자를 하나로 통합하면서 하나의 중국 개념을 형성시켰다. 그러나 진시황은 법가 이외의 사상을 탄압하면서 [[분서갱유]]를 벌였고 농민들을 데려다가 [[만리장성]]을 짓게 하면서 많은 농민들을 빡치게 만들었다. 결국 진시황이 뒤진 다음 [[기원전 209년]]에 진승 오광의 난이 터지고, 군웅들이 할거하면서 [[항우]]의 [[초나라]]에 의해 [[기원전 206년]]에 멸망했다. 하지만 항우 또한 진시황 못지않은 폭정을 벌였고, 또 다른 군웅인 [[고제(한)|유방]]과 겨루다가 결국 패배했다. 항우의 초나라를 제압한 유방은 [[기원전 202년]] [[한나라]]를 건국했다. ===== 한 ===== 중국의 통일 왕조를 이룩한 [[한나라]]는 신나라를 한나라에 포함할 경우 무려 421년 간 존재한 제국이다. [[기원전 195년]] 유방이 사망한 이후 황후인 여씨가 섭정을 하는 시대가 열렸고, [[기원전 141년]]에는 [[무제(한)|한 무제]]가 등장하면서 고조선, 베트남 등을 제압하고 유교를 도입하며 연호를 제정하면서 유교 질서가 등장했다. 그러나 이 다음부터는 황권이 조금씩 약해지고, 기원후 [[8년]]에는 [[왕망]]이 왕위를 찬탈하면서 잠시 [[신나라]]로 바뀐다. 주나라에 이어 초장기 왕조를 이룩한 한나라는 중국 한족, 한자 등등 중국과 관련된 것의 어원이 되었다. ==== 한국 ==== [[청동기 문화]]가 발전하면서 [[고조선]]이 성립되었다. 고조선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동안 중국의 문물을 남쪽의 '진'에 전달해주는 무역으로 크게 성장했다. 그러다가 중국에서 한나라가 들어선 이후 [[기원전 194년]]에 [[위만]]이 왕위를 찬탈하면서 위만조선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후 한 무제가 고조선을 침입해오면서 [[기원전 108년]] 고조선은 멸망했고, 고조선 자리에는 한사군이 설치되었다. 고조선이 망하기 이전부터 만주 일대에는 [[부여]]가 존재했고, 그 이외에 동해 연안에는 부족 연맹체인 옥저와 동예도 있었다. 남쪽의 '진'에서는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이 형성되었다. 고조선 유민들이 경상도 경주로 이주해 [[기원전 57년]]에 6개의 촌락으로부터 인정받은 [[혁거세 거서간]]이 신라를 세웠다. 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해서 고조선 민족을 흡수한 [[동명성왕|주몽]] 세력은 [[기원전 37년]] [[고구려]]를 세웠고, 거기서 한번 더 남쪽으로 이주한 [[온조왕|온조]] 세력은 한강 강남 지역에 [[백제]]를 세웠다. ==== 일본 ==== 신석기 시대인 [[조몬 시대]]였다가, 한반도에서 야요이인이 유입되면서 [[기원전 3세기]]부터 청동기+철기 시대인 [[야요이 시대]]가 시작되었다. 일본에서 문명이 시작된 시기라고 볼 수 있으며, 조몬인과 야요이인의 융합은 일본 민족을 형성했다. ==== 베트남 ==== 동썬 문화가 하나의 국가로서의 [[반랑]]으로 발전한 시기이다. 학계에서는 대략 [[기원전 7세기]]쯤으로 본다. 반랑은 [[기원전 257년]] 툭판(안양왕)의 침입으로 멸망했다. 툭판은 [[어우락]]을 건국했는데, 어우락은 한국으로 치면 (실존하지는 않지만)[[기자조선]]의 포지션에 있는 나라다. 하지만 한족 출신 [[조타(남월)|찌에우 다]]가 [[기원전 208년]]에 어우락을 멸망시켰다. 찌에우 다는 [[남비엣]]을 건국했다. 이 시기를 찌에우 왕조라고도 부른다. 우리로 치면 위만조선 같은 포지션이다. [[기원전 111년]] 한 무제가 침입하면서 멸망했고, 베트남에는 한구군이 설치되면서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 인도 === 후기 [[베다]] 시대를 맞이하면서 [[브라만교]]와 [[카스트 제도]]가 고착화되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6세기]]쯤에 인도 북부에 16개 이상의 왕국들이 세워지면서 [[십육대국]]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 브라만교에 대한 비판으로 [[불교]]와 [[자이나교]]가 창시되었다. 십육대국 중 가장 강했던 마가다의 난다 왕조가 [[기원전 4세기]]에 전성기를 이룩했으나, 그리스에서 [[마케도니아 왕국]]을 대제국으로 만든 [[알렉산드로스]]가 침입하면서 위기를 맞이했고, [[기원전 322년]]에는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마우리아 제국]]을 세운 다음 난다 왕조를 무너뜨렸다. 마우리아 제국은 십육대국을 전부 통일하고 인도의 대부분을 하나로 만들었다. 남부의 타밀계 왕국들도 복속시킬 정도로 강력한 제국이었다. [[기원전 3세기]]에 활동한 3대 황제인 [[아소카 대왕]]은 상좌부 불교를 발전시키면서 동남아시아에 인도 문화를 전파했다. 그러나 그의 사후 마우리아는 급격히 몰락했고 [[기원전 184년]] 멸망했다. 이후 [[슝가 왕조]]로 이어졌지만 마우리아 시대보다는 약해졌고, 인도-그리스 왕국과 사타바하나 왕조(안드라 왕조)와 공존했다. === 중동 === ==== 이집트 ==== 신왕국 붕괴 이후 제3중간기를 맞이했다. 이집트는 청동기 문명을 계속 유지하다가 결국 메소포타미아와의 경쟁에서 밀리게 되었고, 계속해서 국력이 약화되다가 나중에는 분열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오히려 남쪽의 쿠시 왕국의 흑인들이 이집트를 통일해버리면서 제25왕조가 열리고 흑인의 지배를 받았다. 25왕조 시기에 잠시 국력을 회복하고 문화를 융성하게 만들었으나, 메소포타미아에서 [[신아시리아 제국]]이 침략해오면서 이집트는 아시리아의 속국이 되었다. 이때 아시리아의 봉신으로서 사이스 왕조(26왕조)가 세워졌다. 신아시리아가 [[신바빌로니아 제국]]에게 멸망한 후에도 26왕조는 유지되었으나, 신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게 박살나고 27왕조로서 아케메네스 왕조가 들어섰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진보적 문화와 이집트의 보수적 문화는 공존하기 힘들었고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때 이집트는 잠시 28왕조로 독립했으나, 29왕조와 30왕조로 교체되었고, 30왕조 때 페르시아에게 다시 정복당하면서 31왕조가 생겼다. 하지만 31왕조가 생긴지 11년 만에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가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31왕조는 없어졌고, 알렉산드로스 요절 이후 마케도니아 제국이 분열되던 와중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이집트의 지배자가 되면서 [[기원전 323년]]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32왕조) 시대가 열렸다. 이 시기는 고대 이집트 문명의 마지막 시기로, 이집트 문화와 그리스 문화가 섞여 있었다. 지중해의 헬레니즘 문화를 주도한 국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계속된 전쟁으로 몰락했고 [[클레오파트라 7세]] 때 [[로마 공화국]]의 [[안토니우스]]와 동맹을 잘못 맺었다가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의 군대에게 박살나면서 [[기원전 30년]]에 [[이집트 문명]]은 완전히 멸망했다. 이후 이집트는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었다. ==== 메소포타미아 ==== ===== 신아시리아 제국 ===== [[기원전 911년]] 아다드 니라리 2세가 아시리아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신아시리아]] 시대가 개막했다. 아시리아 제국은 [[기원전 8세기]]에는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유대를 복속시켰으며 메소포타미아 전역을 장악했다. [[기원전 7세기]]에 [[아슈르바니팔]]이 즉위하면서 이집트를 정복하고 봉신 왕조인 26왕조를 세웠다. 그리고 세계의 모든 지식을 수도 니네베(니느웨)에 모으기 위해 '아슈르바니팔 도서관'을 세웠다. 그러나 아슈르바니팔이 죽고 나서 내란이 발생했고, 바빌로니아가 독립해나가면서 [[기원전 626년]]에 나보폴라사르에 의해 [[신바빌로니아]] 제국이 세워졌다. 이후 [[기원전 612년]]에 메디아, 유대, 신바빌로니아, 엘람 등이 동맹을 맺고 스키타이 민족까지 합세하면서 아시리아는 멸망했다. 하지만 아시리아 민족은 페르시아 시대에 정체성의 유지를 보장받았고, 이슬람 시대에도 정체성을 유지해오면서 [[{{현재년}}년]]에도 이어지고 있다. ===== 신바빌로니아 제국 ===== 아시리아를 멸망시키고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한 신바빌로니아 제국은 [[기원전 605년]]에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즉위한 이후 속국인 유대를 완전히 멸망시켰고 [[바빌론 유수]]로 인해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기원전 562년]]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사망한 이후 바빌로니아도 혼란을 겪었다. 멸망 직전 섭정으로 추정되는 벨사자르가 통치했으나,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신바빌로니아는 멸망했고, 문명의 주도권은 페르시아로 넘어가게 되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시대 또한 종식되었다. 그 후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페르시아, 그리스, 셀레우코스 왕조, 시리아, 로마 등에게 순차적으로 지배를 당했다. ==== 팔레스타인 ==== [[다윗]]과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국]]의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솔로몬의 실책으로 그의 사후 [[기원전 931년]]에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왕국]](북이스라엘)과 [[유다 왕국]](남유다)로 나뉘었다. 이후 200년 간 이어지다가 북이스라엘이 먼저 [[기원전 722년]]에 [[신아시리아]] 제국의 침략으로 망했고, 남유다도 [[기원전 609년]]에 요시야 왕이 이집트에게 살해당하면서 이집트에 복속되었다가, [[기원전 586년]]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침략으로 완전히 멸망했다. 유대인들은 바빌론 유수를 통해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신바빌로니아의 통치를 받다가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가 신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킨 후 유대인들은 키루스 칙령을 통해 다시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에는 [[마케도니아 왕국]]이 거쳐갔고, 마케도니아 분열 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셀레우코스 왕조]]에게 지배받았다. 이후 [[마타디아]]가 [[하스몬 왕조]]를 세워 셀레우코스를 상대로 독립 전쟁을 일으켰으며, 후계자인 [[유다 마카베오]]가 독립전쟁을 이끌면서 이스라엘은 재차 독립했다. 그러나 [[로마 공화국]]에 의해 [[기원전 63년]]에 복속당했고, 이스라엘 지역에는 [[헤로데 왕국]]이 들어섰다. ==== 페르시아 ==== 지금의 페르시아 지역에는 엘람이라는 국가가 있었다. 인도유럽어족의 유입 이후 메디아 제국이 들어섰으며, [[아케메네스]]가 세운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는 [[기원전 6세기]]의 [[키루스 2세]] 때 메디아를 멸망시키고 페르시아를 장악한 후 리디아, 신바빌로니아를 전부 무너뜨렸다. 이후 캄비세스 2세 때 이집트를 정복하고 제27왕조를 세웠다. [[기원전 522년]]에 즉위한 [[다리우스 1세]]는 영토를 인도, 마케도니아 일대까지 확장시켰다. [[기원전 491년]]부터 [[기원전 449년]]까지는 페르시아와 그리스 간의 전쟁이 있었다. 그러나 [[크세르크세스 1세]] 때 [[테르모필레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 등에서 패배하면서 그리스 원정은 실패로 돌아갔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 제국은 아시리아 시대의 강압 통치와 정 반대로 관용적인 정책을 베풀었다. 페르시아 제국은 [[기원전 4세기]]까지 존재했지만 마케도니아의 정복군주인 [[알렉산드로스]]의 침공으로 [[기원전 330년]]에 멸망했다. 알렉산드로스 제국 붕괴 이후에는 [[기원전 312년]]에 [[셀레우코스 왕조]]가 페르시아를 분봉받았다. 셀레우코스 왕조 또한 잦은 전쟁으로 붕괴되어갔고 나중에는 시리아 일대만 남았다가 로마 공화국에 의해 [[기원전 64년]]에 멸망했다. 셀레우코스 왕조가 몰락하는 동안 페르시아 지역에서는 [[기원전 247년]]에 [[파르티아]]가 세워졌다. 예수 탄생을 전후해서 세계는 로마 제국, 파르티아 제국, 쿠샨 제국, 한나라의 4개 제국으로 판도가 나뉘었는데 파르티아 제국은 로마 제국과 수백 년 간 경쟁하는 관계에 놓였다. === 유럽 === ==== 그리스 ==== [[미케네]] 문명 붕괴 이후 그리스는 암흑시대를 맞이했다. 미케네 문명 붕괴부터 폴리스 출현까지의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록이 갑자기 매우 적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도 페니키아 문자를 변형시켜 그리스 문자를 만드는 등의 노력이 있었다. 그리스 문자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로마자]]를 파생시킨 문자이기도 하다. [[기원전 8세기]]쯤부터 기존 미케네 문명의 대도시였던 [[스파르타]]와, 상대적으로 듣보잡이었던 [[아테네]] 등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암흑시대는 막을 내리고,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주도하는 [[고대 그리스]] 문명이 시작되었다. 아테네에서는 왕정이 귀족정으로 바뀌고, [[기원전 621년]]에 성문법이 형성되고 [[솔론]], [[페이시스트라토스]], [[클레이스테네스]], [[페리클레스]] 등이 나타나면서 민주정으로 바뀌었다. 스파르타의 경우 국가를 3개의 계급으로 나누었으며 남녀 할 것 없이 전부 강력한 훈련을 시켜 군사 강국이 되었다. [[기원전 491년]]에는 페르시아 제국과 전쟁을 벌였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기타 도시 국가들은 동맹을 맺어 페르시아에 맞섰다. [[기원전 449년]]을 끝으로 페르시아와의 전쟁은 종식되었고 그리스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그리스의 승리 이후 아테네가 이끄는 [[델로스 동맹]]의 힘이 강해지자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경쟁하게 되었고, 결국 이 둘은 충돌하여 [[기원전 431년]]부터 [[기원전 404년]]까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벌였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패배했으나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모두 몰락했다. [[기원전 4세기]]에는 도시국가 테베가 급성장하는 바람에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테베에 맞서 동맹을 맺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359년]]에 북쪽의 마케도니아에서 [[필리포스 2세]]가 나타나 테베, 아테네, 스파르타를 모두 제압하고 그리스를 통일했다. 그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기원전 336년]]에 제국을 물려받아 페르시아까지 침략해 세계 최강 제국을 이룩했다. 그러나 [[기원전 323년]]에 알렉산드로스가 사망한 이후 그리스부터 이집트, 중동, 인도 북부까지 걸친 마케도니아 제국은 여러 개로 분열되었다. 이후 분열된 그리스계 왕국들은 이탈리아 반도의 신흥 강자 [[로마 공화국]]에 의해 제압된다. 이후 그리스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으나 그리스의 문화는 오히려 로마에 계승되어 기독교의 등장 전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 ==== 로마 ==== 인도유럽어족의 유입 이전부터 이탈리아에 살고 있던 [[에트루리아]]인들이 로마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들은 선진적인 그리스인의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 에트루리아의 지배를 받던 라틴족의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기원전 753년]] [[로마 왕국]]을 세웠다. [[기원전 509년]]에는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왕정을 무너뜨리고 [[로마 공화국]]을 세웠다. [[기원전 5세기]] 동안 로마는 계속해서 확장을 이어나갔고, [[기원전 4세기]]에는 이탈리아 남부의 삼니움족과 전쟁을 벌였으며, [[기원전 280년]]부터 [[기원전 275년]]까지는 그리스계 국가들과 피로스 전쟁을 벌였다. 피로스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이탈리아 대부분을 장악한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로마가 강해지면서 이들은 기존 강대국인 페니키아계 국가 [[카르타고]]와 맞장을 뜨게 되었다. [[기원전 264년]] 제1차 [[포에니 전쟁]]으로 로마와 카르타고는 맞붙었고 초기에는 강대국인 카르타고가 이기는 듯 했으나 결국 [[기원전 241년]] 로마의 승리로 끝났고 카르타고는 지중해의 강자 자리에서 밀려났다. [[기원전 218년]]부터 [[기원전 201년]]까지 있었던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 측의 [[한니발]] 장군이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서 로마를 큰 위기에 빠뜨렸다. 그러나 [[스키피오]]가 카르타고 본토를 쳐들어가 카르타고를 제압한 덕분에 막아낼 수 있었다. 전쟁 이후 카르타고는 로마에 복속되었으며 엄청난 탄압을 벌였다. 카르타고는 최후의 발악으로 [[기원전 149년]]에 제3차 포에니 전쟁을 일으켰으나 [[기원전 146년]]에 패배했다. 로마는 카르타고의 흔적을 지구에서 완전히 쓸어버렸고 북아프리카 지역을 획득하면서 지중해의 강대국이 되었다. 로마의 세력이 커지면서 자영농들이 몰락하고 귀족이 강해지는 문제가 생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키피오의 외손자들인 [[그라쿠스 형제]]가 개혁을 시도했으나 원로원의 방해로 실패했다. [[기원전 1세기]]에는 삼두 정치 체제가 들어섰고 제1차 삼두 정치를 이끈 카이사르가 훗날 [[로마 제국]]이 될 나라의 기틀을 잡았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이후 [[옥타비아누스]]가 제2차 삼두 정치를 이끌었는데, 라이벌인 [[안토니우스]]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이집트 문명을 완전히 정복하고 로마를 통합하면서 옥타비아누스의 시대가 열렸다. 옥타비아누스는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으로 프린켑스의 지위에 올랐고, 이로서 [[기원전 27년]] [[로마 제국]]이 탄생했다. === 아메리카 === [[올멕]] 문명이 존재했다. 이들은 [[기원전 4세기]]즈음에 몰락한 것으로 보이고, 그 이후에 멕시코 지역에는 테오티우아칸 문명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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