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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적 == {{스포일러}} 51회에서 광복 이후에 조선 땅에 남아있던 일본 해군무관부가 철수하지 않자 빡친 [[김두한(야인시대)|김두한]]이 우미관패를 소집해 해군무관부를 털기로 하는데 이때 처음으로 나온다. 정진영이 애기보살 집에 숨어있던 김두한을 습격했을 때 아구와 같이 빨갱이들을 막다가 총을 맞기도 한다. 아무튼 계속 비중이 늘어난다. [[한국전쟁|6.25]] 때는 캬바레 습격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가 6.25가 끝나자 서울의 주먹들에게 군수물자를 나누어주기 위해 설립된 건중친목회의 부장이 된다. 그런데 욕심이 많아서 부심을 부리고 홍영철에게도 갑질을 하다가 보다못한 김두한이 허공에 총탄을 탕 탕 탕 하고 쏜다. 그리고 부장 자리에서도 짤리고 근신하라는 명령을 듣자 빡쳐서 술을 미친듯이 쳐 마시다가 결국 갑질을 못 견디던 종로의 아오마스와 부하들에게 쳐맞는다. [[백병원]]에 실려가고 나서 정신을 차렸는지 주먹계를 떠나기로 한다. 어차피 얼마 안 가 우미관패 전체가 해산됐다. 후에는 김두한과도 몇 번씩 만나다가 김두한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자 자유당이 김두한을 지윾당에 끌어들이기 위해 김관철에게 허공탄을 쐈던 일을 트집 잡아서 김관철에게 고소장을 쓰라고 강요하지만 본인은 끝까지 거부한다. 이후에도 여러번 김두한의 선거 활동을 도와주게 된다. 123회에서는 자기가 갈궜던 홍영철과도 재회하게 된다. 어차피 이땐 정신 차린 상태였고. 미지막회에서 밝혀진 근황에 따르면 위가 녹아서 집에서 요양하는 중이라고 한다. 실제의 김관철은 위도 녹지 않고 [[1987년]] <청년운동반세기>에서 근황이 공개됐고 얼마 안 가 죽은 걸로 추정된다. 참고로 이때 우미관 멤버들 일부와 같이 나왔는데 [[신영균]]도 멀쩡히 살아서 중앙극장 영사실 폭파한 것까지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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