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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의 오점 == {{왼쪽}} === 민간인 살해 === 대마도 출신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 살해. 다른 건 어떻게든 변론할 수 있어도 이건 빼도박도 못하는 민간인 살해다. 아무 짓도 하지 않은 멀쩡한 상인을 단순히 옆구리에 칼 찼다는 이유로 돌로 머리를 내려치고 칼을 뺏어서 베어 살해했다. 어떤 놈들은 일본인 상인이 수탈하려고 조선에 들어왔으니 때려죽여도 괜찮다고 하는데 실제로 잘못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장사하러 온 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때려 죽인 건 엿같은 짓이다. 게다가 김구는 장사하러 온 상인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냥 죽였다. 쉴드 치는 건 아닌데 애초에 그땐 우리나라에서 반일감정이 조오온나 심했다. 민비 살해 사건으로 일본인이 그냥 돌아다녀도 맞아죽을 판인데 칼도 차고 수상한 짓을 했다? 의혹을 사기 충분했음. 물론 죽인 건 좀 그렇긴 하지만 그 시대 때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보복이 여럿 있었고, 이에 대한 처벌이 약했던 걸 보면 당시엔 그게 애국이었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봐야 할 듯. [[맹꽁이 서당]]에서도 미화됐다. ===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암살 사주 === 사실 김구의 암살대상은 자기와 척을 진건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사회주의고 아나키스트고 우익이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승만만 해도 척진뒤로 암살위협에 시달렸다고 하니까 ====우익과 좌익 간 사이가 벌어진 배경==== 일단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우익진영(민족주의)과 좌익진영(공산, 사회, 무정부)간 사이가 존나게 나빴단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당시 고려 공산당은 막 창당되었을 때부터 노령(현재 러시아 이르쿠츠크)와 상해, 두 파벌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무장독립운동을 주도했다. 여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이들은 서로 밥그릇 싸움을 하다가 사실상 내전을 벌였다. 뭐, 여기까지도 좋았다. 아래에서 보이듯 독립운동진영끼리도 서로 통수 치고 잡아족치는 것은 사람 사는 데에는 매일 일어나는 일이니까. 문제는 이들이 '''외세'''인 소련을 끌어들인 것이었다. 이것이 민족주의자들의 비위를 제대로 거스른 거였고, 저 미친놈들이 지들 밥그릇 싸움을 하는데 또 다른 외세인 소련을 끌어들인다고 인식하면서 좆같이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한마디로 구한말 민씨 세도외척 밥그릇을 지키고자 임오군란 때 청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여 동포를 탄압하고 자주권을 들어다가 바친 민비의 행동과 다를 바가 없는 새끼들이란 인식이 생긴 것이다. 실제로 북부의 모 사이비교주 수령은 한국전을 싸지르고 수습이 불가능해지자 소련의 한 주(크라이)나 자치 공화국으로 들어가다 바치는 것을 고려했다고 하니 아주 잘못된 생각도 아니었다. 물론 사이비 교주가 진정한 공산주의자인지는 차차하더라도. 애초에 민족의 독립을 해야 하는데 저 새끼들은 너무 코민테른(크렘린)에 순종적이라고 까는 것도, 또한 같은 우파이면서도 독립 청원서로 외교론자들 극딜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사건의 배경==== 하여간 쏘련 성립 후 레닌은 사회주의 혁명을 수출하고자 제국주의 국가=자본주의 국가이므로 이들을 타도하는 사회주의 혁명의 연장선으로서 각 약소 민족들의 독립을 위해 지원하겠다고 코민테른에서 천명한다.(5월 테제) 이에 따라 각국의 독립운동가들이 공산주의에 심취하고 각지에서 공산당이 설립되었다. 그러다 터진 게 위의 자유시 참변이다. 하여간 소련 측은 조선의 독립운동 진영에도 지원금을 주었다. 이 지원금을 상해로 운반하는 임무를 맡은 것이 김립으로, 그는 이동휘 휘하 고려공산당원이었다. 이때 받은 돈이 60만 루블인데, 거금이라서 한 번에 옮기긴 거시기 해져서 일단 40만, 20만으로 나눠서 상해로 가져가기로 했고 김립은 이후 좌익계 운동가들과 분배해서 사용하기로 합의한다. 즉 이 돈은 국제공산당(코민테른)이 좌익계 독립운동가들(고려공산당원)에게 사회주의 혁명의 일환으로 독립운동을 하라고 지원금으로 준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쓰는 것은 합법이었고 이 점을 들어서 안창호마저 아래의 사건을 깔 정도였다. ====국제공산당 자금사건==== 김구는 저 새끼들이 '정당한' 상해 임정으로 가야 했을 임정의 공금을 횡령해 사적으로 호의호식 하는데 썼다는 논리를 제시한다. 결국 같은 독립운동가인 [[김립]]을 공금 횡령범으로 몰아 암살을 지시하였고 그렇게 김립은 왜경이 아니라 같은 독립운동가 자기 동포손에 상해 한복판에서 죽었다. 물론 임정 내 우익 측은 아몰랑 빼애액!으로 일관된 것일 뿐. 까놓고 말해서 이때 돈 나눠줄 때 받아간 사람들 모아다가 계산만 했어도 될 일이다. 다시 말해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을 죽이고, 이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거짓말까지 한 것이다. 즉 좆같았는데 잘됐다며 처치하고 핑계를 댄 것이다. 근데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 게, 김구는 분명 상하이파 공산당과 이르쿠츠크파 공산당 간의 싸움으로 벌어진 스보보드니 참변(자유시 참변) 같은 것을 목격했을 거고, 이승만과 이동휘의 대립으로 인해서 임시정부가 산산조각 나는 것도 봐왔기에 공산주의자는 죽어 마땅한 매국노 집단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 죽인 게 잘할 건 아니지만. :당시 김구는 임정 내 법무장관 겸 치안총감인가, 그런 직위에 있었다고 하는데 저 당시 임정은 영토가 한 뼘도 없어서 감옥도 없었다. 즉 임정에게 죄를 짓게 되면 무죄=석방, 유죄=사형 둘 중 하나였다고 한다. ㄷㄷㄷ 그리고 임정의 범죄자들을 처분하는 임무와 권한은 저 당시 김구가 맡고 있었다는 거... === 해방 후 백색테러 의혹 및 극우적 행보 === 송진우, 장덕수, 여운형 세 명 전부 김구와 관련된 사람들에 의해 암살되었다는 의혹이 있다. 북괴의 [[먹사]] + 관료인 강량욱<ref>[[혹부리우스]] 애미인 강반석의 먼 친척이다.</ref>의 집에 폭탄을 던져 주변 사람들까지 깡그리 죽였다. 강량욱은 몰라도 옆의 민간인들을 죽인 건 테러다. 위정척사파 유생 출신이어서 조선시대 양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좌파의 평등 사상에 매우 부정적이었고 권위주의적이었으며 외국이 하는 말이라면 덮어놓고 무시했다. 남로당원의 박갑동은 비서가 김구의 옷을 다 입혀주는 것을 보고 마치 조선의 왕과도 같다고 말했다. 신탁통치 논란 초기엔 반탁파였지만 이후 호형호제 하던 사이인 이승만과의 관계 고려와 협력을 위해 이승만의 신탁 노선에 동의하는 대신, 자기를 중심으로 우익 세력의 결집을 받아내는 조건으로 협력했다가 1947년 12월 장덕수 암살 사건이 터져서 이승만과 관계가 나빠지자 다시 반탁파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천조국에서도 김구를 매우 부정적으로 본다. 미 군정은 김구를 무자비하고 파렴지한 기회주의자라고 평가했다. ㄴ이건 좀 생각을 해봐야 할 게, 일단 천조국은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정부로 인정하지 않았고 임시정부를 구성한 인원 중 하나인 김구를 비난해야 자기 나라를 더 잘 믿기 때문에 한 말일 수도 있다. 애초에 천조국은 우리나라를 위해서 남한에 군정청을 만든 게 아니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ㄴㄴ 괜히 이승만, 김구가 극단적이라고 김규식, 여운형 회유해서 좌우합작위원회를 만든게 아니다. 김구도 이승만과 마찬가지로 해방후 친일파나 정치깡패들을 자기세력으로 많이 흡수했는데 얘네들이 충성심 보여준다고 좀더 막나간점도 미군정입장에선 거슬렸던것도 있고 근데 이건 의혹은 제기되고 있는데 명확한 근거가 없다. 당장 송진우는 임정 봉대를 가장 크게 옹호했고, 임정에 900만 원 상당의 정치자금까지 대준 사람이다. 김구도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을 죽일 수 있냐?"라고 물은 바 있어서 송진우 김구 암살설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같은 편인데 영향력도 약한 송진우를 굳이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 ㄴ 김구는 이봉창, 윤봉길의거의 자금을 안창호한테 받았고 안창호는 옥관빈에게 자금을 받았다. 하지만 옥관빈은 김구한테 죽었다. 한번한거 두번못할게 뭐냐?, 더군다나 적어도 저중에서 여운형운 백범일지에서도 비판하고 있다. 여운형 암살도 사실 미군정에선 박헌영 계열의 극좌 세력에서 암살했을 가능성을 더 높게 봤다. 애초에 백의사 자체도 김구보다 신익희 편에 더 가까웠다. 임정 시절 신익희가 만든 정치 공작대와 백의사가 늘 함께 했다는 말도 있으니까. 김구와 이승만은 1947년 초 이후로 사실상 헤어졌기 때문에 백의사를 김구가 이끌고 백색테러를 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애초에 백의사 배후에 경찰도 있었고. ==== 송진우 암살 ==== 1945년 12월 27일 카이로에서 한반도 분할 신탁통치 의견이 나왔다. 다들 반탁을 하다가 소련에서 찬탁으로 돌아서자 [[박헌영]] 등은 찬탁을 주장했다. 근데 그전에 동아일보가 박헌영이 찬탁이라고 오보를 했다. 신탁통치에 김구는 결사 반대했고 [[송진우]]는 미국과 소련이 힘으로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까 일단 수용하고 3~5년 정도 기다리자고 말했다. 신탁통치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안재홍]]이나 [[김규식]]도 역적으로 지목됐다. 45년 12월 29일의 경교장 회의에서 [[송진우]]는 신탁통치가 우리 뜻으로 거부할 수 없는 힘이라고 말했다가 30일 오전 6시반 원서동 집에 들이닥친 한현우에게 총에 맞아 죽는다. 한현우는 끝내 자신을 사주한 사람 입을 열지 않고 투옥됐다. [[브루스 커밍스]]는 문적 몇 개를 조사한 뒤 한현우의 배후로 김구를 지목했다.<ref>일월총서 71 한국전쟁의 기원(브루스 커밍스, 김자동옮김, 최옥자펴냄, 일월서각) 2001년판 287페이지</ref> [[장택상]]도 [[송진우]] 암살범으로 김구를 지목했고<ref>[http://shindonga.donga.com/3/all/13/102998/1]</ref> [[조병옥]]도 김구가 송진우 암살범이라고 지목한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나는 중도주의자인 송진우를 김구가 암살한 사실과 이유를 안다면서 반탁 문제를 언급했다.<ref>리처드 로빈슨, 미국의 배반:미군정과 남조선 (정미옥 역, 과학과 사상, 1988) 77페이지</ref> 결국 김구는 신탁통치 반대 데모 때문에 46년 1월 1일 소환되어 중단하라는 경고를 받았고, 같은 날 또 불려가서 송진우 암살 문제로 경고를 받았다. 여담으로 한현우는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을 사면해줬기 때문에 자신은 무죄라고 주장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22200209222006&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3-02-22&officeId=00020&pageNo=22&printNo=22093&publishType=00020</ref> ==== 장덕수 암살 ==== 송진우는 신탁통치를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받아들이자는 취지로 말했다가 찬탁으로 몰려 갑자기 암살 당한 뒤 [[한민당]]을 떠맡게 됐다. 그는 미소공위 적극 참가와 [[김구]] 중심의 보수 정당 단일화를 반대, 소극적인 김성수에 대해 합당은 한민당을 통째로 임정에 갖다 바치는 거라고 반대한다. 이 일로 [[김구]]와 만난 뒤 고성이 여러 번 오고 갔다. 1947년 12월 8일 집에 있던 중 박광옥, 초등교사 배희범 등 한국독립당원 5명이 쏜 총에 맞고 죽었다. [[장덕수]]가 암살됐다. 김구는 [[이승만]]에게 가서 자신이 암살한 게 아니니까 미군정에 소환되는 일을 막아달라고 했지만 [[이승만]]은 거절했다. [[송진우]] 암살 직후, 반탁건으로 미군정사령부에 끌려가서 경고를 먹었는데 송진우 건으로 또 경고를 받고<ref>(김구, 도진순 엮고 보탬, 돌베개, 2007.11) 67페이지</ref> 그 다음에는 [[여운형]] 암살의 유력용의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여운형은 당내 라이벌인 [[박헌영]]도 유력용의자로 의심되기도 한다. 그런데 [[장덕수]] 암살사건이 터지고 현장에서 잡힌 한독당 당원 외에 한독당 간부인 조상항, 김석황 등이 줄줄이 끌려가면서 빼도박도 못하고 김구도 미군정 재판정에 출석. 다만 최대한 예우해서 증인 이라는 명분으로 심문을 했다. 이때부터 김구는 [[이승만]]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장덕수 암살의 이유 중에는 장덕수가 일제말 기고문을 날린 것, 그 전에는 [[공산당]] 좌파쪽 이론가였다는 게 그 이유다. 조소앙도 끌려가서 재판을 받았다.<ref>서중석,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역사비평사, 1992) 592페이지</ref> 김구가 상하이에 있을 때 [[한인애국단]] [[이봉창]] [[윤봉길]] 등에게 줄 폭탄을 구해준 인물이 [[김홍일]]과 함께 조소앙이긴 했다. [[허정]]은 김구에게는 차마 못가고 조소앙한테 가서 장덕수 암살 사건을 따지고 책임 추궁을 했다.<ref>허정 회고록</ref> === 친일 인사 등용 === [[이승만]]과 마찬가지 케이스다. 본인은 독립운동가였고 친일 행위를 한 바가 없지만, 해방 후 친일세력과 가깝게 지내며 이들의 도움을 여러모로 받았다. 대표적으로 백범일지를 윤문한 소설가 [[이광수 (문학인)|이광수]]가 있다. 그리고 김구의 거처 경교장을 제공한 최창학, 한국독립당과 김구의 자금원이였던 방응모 등이 있다. 이광수는 다들 잘 알다시피 친일파로 변절한 소설가고, 최창학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와 결탁하여 광산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친일 자본가였고, 방응모는 우리가 잘 아는 [[조선일보]]의 당시 사장이다. 또한 한민당 내 친일파 출신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을 많이 지원 받았다. 근데 애초에 김구는 완전무결한 성인이 아니다. 잘잘못은 잘잘못 그대로 보면 되는 거지 굳이 이미지 자체를 깔아뭉갤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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