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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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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세 == 김형욱은 제 4대 [[중앙정보부]]장(1963년 7월~ 1969년 10월)으로서 [[중정]], [[안기부]], [[국정원]]을 통틀어서 가장 긴 기간동안 재임했다. 김형욱은 61년 박정희 소장의 5.16 쿠데타에 가담한 장교 중 한 명이다. 당시 김형욱은 중령으로 혁명 정부 시대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최고의원을 역임하며 주요 요직을 맡는다. 이때부터 [[박정희]]와의 관계가 시작된다. 1963년 7월 김형욱은 [[중앙정보부]]장에 임명이 된다. 당시 중정부장은 김형욱처럼 무대포에 [[멧돼지]] 같은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같은 육사 8기로 동기였던 [[김종필]]의 도움이 있었다. [[중앙정보부]]장으로서 김형욱의 최대 업적은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만든 작전 (사실 이러라고 앉혀준 거지만) 김형욱은 중정 요원들을 민간인(야당 지지자)으로 위장시키고 야당을 흔들어 놓아 야당 후보들이 난립하는 바람에 그 틈을 노려 간신히 [[박정희]]는 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나름의 업적(?)을 세운 김형욱의 위세는 커짐 당시 중정부장은 명실공히 대통령 다음의 실권자였음. 김형욱은 뚱뚱한 체구에다 거친 성격 때문에 "'''남산 멧돼지'''"라는 별명이 있었다. [[남산]] 왕돈까스만큼 덩치가 뚱뚱하다는 뜻도 있고, '남산' 이라는 지역이 갖는 의미 때문이다. 지금은 내곡동 쪽에 국정원이 위치해 있지만 과거에 [[중앙정보부]]는 [[남산]]에 위치했거든. 그래서 남산 멧돼지. 김형욱은 성격이 불 같기로 유명했는데 자신의 아들이 지뢰를 밞고 외발 일게이가 된 순간부터 성격이 괴팍해졌다고 전해진다. 그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1964년 6.3사태의 한일협상을 반대하는 학생들을 진압하는 방법을 모의하던 도중 "트럭 1000대 정도 증발해서 싸그리 싣고 무인도에 쳐박아두면 돼!"라고 말해서 중정 직원들이 이게 진심인가 장난인가 했다는 후문이 있었고 1964년 1차 [[인민혁명당 사건]]<ref>이후 김형욱의 밑에서 중정 차장을 지냈던 신직수가 나중에 중정부장이 되어 1974년 2차인 [[인민혁명당 사건|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일으켜서 판결 이튿날에 8명이 사형당했다. '''이듬해'''나 '''다음달'''이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당시 유신 정부가 얼마나 빡대가리에 미친 놈들인지만 인증한 것.</ref> 1967년 [[동백림 사건]], 1969년 유럽 간첩단 사건을 일으켜서 전 세계의 외교관계를 악화시킴. 1969년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을 일으키는 등 물불 안 가리는 성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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