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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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1925년 1월 16일~1979년 10월 7일[1]

그 옛날 박정희에게 충성을 다했던 중앙정보부장. 덩치도 크고 아주 무서웠다 카더라. 그래서 별명이 "날으는 돈까스", "남산 멧돼지"였다고 한다. 남산 위에 저 돈까스 철갑을 두른 듯~

하는 짓이 귀축스럽기 그지 없어서 자기 꼬붕들을 시켜 김영삼에게 초산을 던지는가 하면, 7대 대선이 끝난 몇달 뒤 야당쪽 후보였던 김대중 슨상님의 장남 김홍일을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배후 혐의로 남산으로 끌고가 고문을 자행했다.

그리고 또 일본 도쿄에 있는 김대중 슨상님을 납치하여 현해탄에 빠뜨려 죽이려고 하였으나 "헤이 정희! 돈 두 댓!"을 외친 천조국에 가로막혀 김머중 납치 작전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 사실 두, 세 번째 사건은 다다음 중앙정보부장 "제갈조조" 이후락이 뒤에서 조종한 것이다. 1970년대가 되기 작년인 1969년 3선 개헌 국민투표 통과로부터 사흘 후 김형욱은 버림받았다.

그리고 31명의 순수한 청년들을 공규 중위의 직책으로 꼬드겨 684부대같은 것들을 만들기도 했다.

아무튼 이후 박정희에게 열받은 김형욱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가루가 되도록 다까끼를 까는데, 덕분에 도 모르게 납치당해서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설이 다양한데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파리의 양계장에서 사료 만드는 기계에 박아서 갈아 죽여버렸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상세[편집]

김형욱은 제 4대 중앙정보부장(1963년 7월~ 1969년 10월)으로서 중정, 안기부, 국정원을 통틀어서 가장 긴 기간동안 재임했다. 김형욱은 61년 박정희 소장의 5.16 쿠데타에 가담한 장교 중 한 명이다.

당시 김형욱은 중령으로 혁명 정부 시대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최고의원을 역임하며 주요 요직을 맡는다. 이때부터 박정희와의 관계가 시작된다.

1963년 7월 김형욱은 중앙정보부장에 임명이 된다. 당시 중정부장은 김형욱처럼 무대포에 멧돼지 같은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같은 육사 8기로 동기였던 김종필의 도움이 있었다.

중앙정보부장으로서 김형욱의 최대 업적은 박정희대통령으로 만든 작전 (사실 이러라고 앉혀준 거지만) 김형욱은 중정 요원들을 민간인(야당 지지자)으로 위장시키고 야당을 흔들어 놓아 야당 후보들이 난립하는 바람에 그 틈을 노려 간신히 박정희는 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나름의 업적(?)을 세운 김형욱의 위세는 커짐 당시 중정부장은 명실공히 대통령 다음의 실권자였음. 김형욱은 뚱뚱한 체구에다 거친 성격 때문에 "남산 멧돼지"라는 별명이 있었다.

남산 왕돈까스만큼 덩치가 뚱뚱하다는 뜻도 있고, '남산' 이라는 지역이 갖는 의미 때문이다.

지금은 내곡동 쪽에 국정원이 위치해 있지만 과거에 중앙정보부남산에 위치했거든. 그래서 남산 멧돼지.

김형욱은 성격이 불 같기로 유명했는데 자신의 아들이 지뢰를 밞고 외발 일게이가 된 순간부터 성격이 괴팍해졌다고 전해진다.

그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1964년 6.3사태의 한일협상을 반대하는 학생들을 진압하는 방법을 모의하던 도중 "트럭 1000대 정도 증발해서 싸그리 싣고 무인도에 쳐박아두면 돼!"라고 말해서 중정 직원들이 이게 진심인가 장난인가 했다는 후문이 있었고

1964년 1차 인민혁명당 사건[2] 1967년 동백림 사건, 1969년 유럽 간첩단 사건을 일으켜서 전 세계의 외교관계를 악화시킴.

1969년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을 일으키는 등 물불 안 가리는 성격이었다.

토사구팽[편집]

이렇게 박정희 외엔 두려울 게 없었던 김형욱은 그 해 10월 20일 박정희의 부름을 받고 달려갔는데

박정희는 이제 그만 중정부장 물러나고 쉬라고 했다 (이후 김계원이 5대 중정부장으로 취임)

김형욱은 어버버 파오후 거리면서 남산의 중정으로 급히 돌아갔는데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 피스톨 박(Pistol Park)에 의해 이미 부장실의 자기 책상과 자료, 서류들이 죄다 없어져버렸다.

당시 이만섭 의장은 3선 개헌에 찬성할테니 자신과 이후락부터 내치라고 합의했던 차 중정부장에서 짤리고 1971년 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서 활동을 하지만 그마저도 이듬해 1972년 10월 유신 선포와 동시에 아싸리 짤려버림.

이때부터 김형욱은 부들부들하며 왠지 모를 배신감에 점점 좌좀화 된다.

그 이후 사석에서 박정희와 당내 의원들을 씹어대기도 하고

언제 자기가 대공분실에 끌려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하루하루를 살았음

한국에 있으면 언젠가 해코지 당할것이라는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에서 수없이 구현한 결과

박정희한테 용도폐기당할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을 해서 해외로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함.

당시에는 중앙정보부가 여권 발급까지 권한을 가지고 있던터라 김형욱은 특히 여권 발급이 까다로웠음.

그러던 차 해외에 명예 학위를 받을 기회가 있었다.

이래 봬도 김형욱은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 석사 학위가 있는 고학력자.

때문에 이때다 싶은 김형욱은 짐을 싸들고 해외로 도피.

1977년 '코리아 게이트' 사건의 증인으로 미 의회에서 증언을 하며 진골 좌좀행보를 이어오던 형욱이는 대한민국 정부와 중정의 눈엣가시가 됨

이때는 김형욱이 김경재와 같이 쓴 책 '김형욱 회고록' (또다른이름 '혁명과 우상')을 한국에서도 출판하기 위한 중정과 딜을 하고있던 때였다

최후[편집]

사라진 시점은 중정 요원들과 프랑스 파리에서 만나기로 한 날 1979년 10월 7일 아마 이때쯤 사망한 것으로 보고있다 카더라

김형욱의 공식 사망일인 1984년 10월 8일은 가족들이 사망신고를 한 날이다.

김포공항으로 몰래 납치해와 대공분실에서 박정희가 권총으로 머리를 쏴 죽였다는 설

파리에서 죽이고 양계장의 닭모이가 됐느니 돼지사료가 됐느니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진고기가 되었을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아마 돈까스가 분쇄가공육이다 보니 별명이 가져온 고정관념일수 있겠다 카더라

2005년 5월 6일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를 통해 김형욱이 중앙정보부에 의해 암살된것이 공식적으로 규명되었다. 증언에 의하면 파리에서 암살을 하고 낙엽들로 덮어뒀다고 한다 팩트

그게 아니라 이게 팩트일 거 같다. 파리 벵센 숲속에서 도축된 후 그 자리에서 냉동 돈까스로 가공된 뒤 헬조선으로 보내져서 누군가의 주둥이 안으로 들어갔을 거다.

-> 만약 살아있다면(중정에 의해 죽은 게 아니라면) 박정희에게 빅엿을 선사하고 생존한 게 되기 땜에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스파이가 되는 셈이다.

대중매체에서[편집]

공화국 시리즈에서 제2공화국부터 제3공화국까진 박상조가 맡았고 제4공화국에서는 백일섭이 맡았다. 외모는 백일섭이 실제랑 근접한데 연기는 박상조가 더 맛깔나고 인상에 남는다.

각주

  1. 실종으로 공식화된 날짜가 이 날이므로 법적인 사망 간주일은 이 사건이 국가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 판단한다면 1980년 10월 7일, 일반적인 실종으로 판단한다면 1984년 10월 7일이다. 다만 국가 개입설은 국정원 측의 공식 피셜로 1979년 10월 7일 당일에 살해되었다고 언급했으므로 1979년 10월 7일 또는 1984년 10월 7일이 가능한 법적 사망일이 된다.|(?)
  2. 이후 김형욱의 밑에서 중정 차장을 지냈던 신직수가 나중에 중정부장이 되어 1974년 2차인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일으켜서 판결 이튿날에 8명이 사형당했다. 이듬해다음달이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당시 유신 정부가 얼마나 빡대가리에 미친 놈들인지만 인증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