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위키
조무위키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임의의 문서로
미디어위키 도움말
도구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특수 문서 목록
문서 정보
행위
문서
토론
편집
역사 보기
김형욱
편집하기 (부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토사구팽 == 이렇게 [[박정희]] 외엔 두려울 게 없었던 김형욱은 그 해 10월 20일 [[박정희]]의 부름을 받고 달려갔는데 [[박정희]]는 이제 그만 중정부장 물러나고 쉬라고 했다 (이후 [[김계원]]이 5대 중정부장으로 취임) 김형욱은 어버버 [[파오후]] 거리면서 남산의 중정으로 급히 돌아갔는데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 '''[[박종규|피스톨 박(Pistol Park)]]'''에 의해 이미 부장실의 자기 책상과 자료, 서류들이 죄다 없어져버렸다. 당시 이만섭 의장은 [[3선 개헌]]에 찬성할테니 자신과 [[이후락]]부터 내치라고 합의했던 차 중정부장에서 짤리고 1971년 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서 활동을 하지만 그마저도 이듬해 1972년 [[10월 유신]] 선포와 동시에 아싸리 짤려버림. 이때부터 김형욱은 부들부들하며 왠지 모를 배신감에 점점 좌좀화 된다. 그 이후 사석에서 [[박정희]]와 당내 의원들을 씹어대기도 하고 언제 자기가 대공분실에 끌려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하루하루를 살았음 한국에 있으면 언젠가 해코지 당할것이라는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에서 수없이 구현한 결과 박정희한테 [[용도폐기]]당할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을 해서 해외로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함. 당시에는 [[중앙정보부]]가 여권 발급까지 권한을 가지고 있던터라 김형욱은 특히 여권 발급이 까다로웠음. 그러던 차 해외에 명예 학위를 받을 기회가 있었다. 이래 봬도 김형욱은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 석사 학위가 있는 고학력자. 때문에 이때다 싶은 김형욱은 짐을 싸들고 해외로 도피. 1977년 '코리아 게이트' 사건의 증인으로 미 의회에서 증언을 하며 진골 좌좀행보를 이어오던 형욱이는 [[대한민국]] 정부와 중정의 눈엣가시가 됨 이때는 김형욱이 김경재와 같이 쓴 책 '김형욱 회고록' (또다른이름 '혁명과 우상')을 한국에서도 출판하기 위한 중정과 딜을 하고있던 때였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