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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기 사회 모습 == 몇몇 [[애국보수|애국자]]들은 이때를 조선 시대에 비유하면서 박정희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조선 시대의 그 어느 왕도 이 정도로 엄청난 권력을 쥐지는 못했다. 가장 오랫동안 왕좌에 앉았던 [[영조]]? 이 양반은 신하들이 못 살게 군다고 자기 방에서 펑펑 운 적도 있다. 마음에 안 든다고 신하를 내치거나 숙청하는 짓거리는 왕좌에서 쫓겨났던 연산군과 광해군도 마음대로 못했다. 신하들이 존나 지랄발광을 했으니까. [[선조]]도 [[신립]] 눈치를 봐야 했고 그래서 [[이일]] 대신에 죄 없는 [[이순신]]에게 벌을 줘야만 했는데 [[선조]]의 권한은 [[이순신]]을 살려주는 것밖에 없었다. [[숙종]]은 이렇게 권력이 힘들어서 남인에게 붙어서 [[송시열]]을 제거하고 다시 서인에게 붙어서 [[희빈 장씨]]를 제거하는 역대급 철새짓을 했다. 근데 박정희는 그런 반발 걱정도 없이 마음대로 했다. 영조는 즉위 초 [[이인좌의 난|대규모 쿠데타]]로 정치 생명이 끝장 날 뻔하기도 했다. 밤 12시 이후에 밖에서 돌아다니면 통금 안 지킨다고 간첩 혐의로 구속하고, 대학교 강의를 결석하면 결석 이유로 그 대학생을 구속할 수 있었고(결석하면 시위에 참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 남자인데 머리를 10cm 이상 기르면 그 남자를 구속할 수 있었고(단발령), 치마가 무릎 위로 올라오는 채로 거리를 활보하면 그 여자를 구속할 수 있었고(미니스커트 단속), 호텔이나 여관 같은 숙박 시설에 체크인 하려면 이름, 전화번호, 주소, 주민등록번호 전부 적고 그렇게 방에 들어가서 경찰에게 신분증 한 번 더 보여주면서 신상 조사 받던 시절이다. 용감하게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던 이때 대학생들은 국적이 북조선으로 바뀌었고 순수 혐북반공민주주의를 지향하던 사람도 공산주의자로 전향 당했다. 빨갱이 낙인이 찍히면 취직도 안 되는 등의 불이익을 겪었기 때문에 시위에 가담했던 학생들은 학원 강사를 많이 했다. 이 풍조는 전두환 정권까지 이어졌는데 지금 민주당 소속 인물 중에서 학원 강사 출신이 많은 것도 이 영향이 크다. 헌정 사상 최초로 체육관 선거가 도입되었는데 여기에서는 훈련 받은 사람들만 투표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론상 항상 박정희 100% 득표가 나와야 했지만 배신표가 딱 1표 나왔다. 그 배신표는 {{인용문|박정'''의'''}} 라고 쓰여 있었다. 박정희가 아닌 박정의라고 쓴 사람은 잡혀가서 코렁탕을 배부르게 먹고 나왔다 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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