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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황== 일단, 전력을 보면 러시아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 일단 러시아 극동군은 10만에 불과하지만 전진기지를 블라디보스토크로 지정한지 오래고 시베리아 철도 준설까지 완공 직전인 상황이었다. 베를린 협정으로 전군을 일본과의 전쟁 상정하에 임전태세에 있었고 제정러시아는 국력과 영토확장으로 민중들의 야기하는 불만을 해소하는 구조이기에 일본과의 전쟁에서의 승리는 가히 필수적으로 가져와야 했다. 또한, 유럽쪽의 팽창은 이미 딥보상태로 미궁으로 빠진지 오래이기에 적극적인 남하정책으로 중국에 온갖 불평등조약을 반강제적으로 체결하며 한반도 이권을 향한 야욕을 감추질 못했다 반면 일본으로서는 일국의 흥망이 어쩌고 하는 판이라 풀발기상태. 거기다 조선 역시 충실히 일제의 병참고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물자 걱정도 없었다. 태평양때 지겹게 듣는 덴노 찬양 드립, 정신력 드립도 여기서 시작됐다. 러시아가 전략적으로 버티는 게 성공할 시 일본이 ㅈ망할게 뻔하기 때문에 러시아는 장기전으로, 일본은 단기전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다.. ===대한해협 해전(쓰시마 해전)=== 일본의 기습공격으로 요동반도의 '러시아령 포트아서(=뤼순)'가 공격 받게되자 러시아제국은 발트함대 총 출동이라는 어미어마한 강수를 벌린다.<ref>당시 러시아제국은 열강이였다. 세계 2위의 땅을가진... 발트함대는당시 프랑스 제국의 총 해군력과 맞먹었다. 이유는 해군 함정으로 어뢰정만 뽑는 프랑스 [[청년학파]] 병신들 때문.</ref> 이에 일본은 후덜덜 그러나 유럽과 동아시아는 너무 멀었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 못 하고 희망봉을 돌아야 했는데 영국이 막았다는 말도 있고 배가 너무 커서 못 통과했다는 말도 있다. 이로인해 러시아 발트함대는 말 그대로 신명나는 세계일주를 하게 되는데 발트에서 스페인을 거쳐 거기서 모로코와 세네갈을 거친 뒤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을 거쳐서 마다가스카르에서 잠깐 쉬었다가 인도를 거쳐 베트남을 거쳐 필리핀을 거쳐 일본에 도착했다. '''항해기간만 1년'''이나 걸렸다. 결국 아시아에 도착한 모랄빵이난 러시아 함대는 프랑스령 베트남에서 보급도 받고 재정비도 하려 했으나 프랑스는 석탄값을 열배로 뛰우고 수리비를 비싸게 청구하는 바람에 러시아함대는 빨리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방법을 고른다. 결국 일본은 상하이에서 러시아 함대의 석탄보급선이 보급을 받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다. 이는 러시아가 재정비도 하지 않은채 빠르게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역시 첩보를 통해 발틱함대의 경로를 알아낸 일본은 야밤에 대한해협에서 모든 조명을 끈채 침묵항해로 일자횡 항해중인 러시아 함대에 가로횡이라는 전략적으로 매우 유리한 진형을 펼치고 기습 공격한다. 바로 정丁자전술. 이에 1년동안 쉬지않고 달려온 러시아 함대는 모조리 수장당한다. 단 3척을 제외하고는 발틱함대의 함선은 나포당하거나 격침된다. 이때문에 제정 러시아는 발트함대를 재건하기위해 상당한 군비를 지출한다. [[강구트급 전함]]이 그 재건사업의 일환. ===요동 전선=== 러시아령 항구도시였던 뤼순시과 요동에서는 장기화 전략에 따라 버티다 져버릴 듯하면 철도 타고 내빼버리는 러시아군의 전략에 걸려 일본군은 만주, 뤼순까지는 죽음을 댓가로 어떻게해서 먹었지만은 러시아군을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하고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손실이 나버린다. 즉 정말 심각하게 러시아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지는 않았음. 그 중 가장 큰 손실이 뤼순 공방전의 일부인 203고지 전투에서 발생했는데 일본군은 너비 100m의 좁으면서 높은 언덕위에 위치한 러시아군 기관총 요새를 공략하기위해 시체로 산을 만들어서 엄폐물로 이용하면서 진격하는 개죽음 전술을 펼쳤고 결국은 승리하지만 전사자 교환비가 1:200 에 육박했다. 이 전투에서 두 아들을 잃어 대가 끊긴 일본군 장군 노기 마레스케는 자신이 지휘한 전투에서 발생한 인명손실에 책임을 지고 덴노가 죽은 후 할복 자살한다.(원래 전쟁 끝나고 바로 자살할랬는데 메이지덴노가 할거면 자기 뒤진담에 하라고했다. 그리고 진짜로했다 ㅂㅅ 아내도 같이 자살함) 후에 전쟁학자들은 203고지 전투를 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의 예고편이라고 평가하고있음 ㅇㅇ. ===요약=== 러시아는 '아 씨발 나름 육군최강국이라 불렸는데 일개 변방 똥양국에 좆발렸네 더 쪽팔리기전에 GG' 하고 휴전협상서를 보낸다. 당시 일본은 청나라한테 받은 청일전쟁 보상비로 돈 독이 오른상태였으나 그때 상황은 감히 일본이 돈을 요구할만한 상황이 아니였다.물론 군부 및 일본 신민 전체는 그동안 투자한(?) 군비가 얼만데 반드시 돈을 받아내야 한다고 아우성이었으나 상대적으로 제정신이었던 일본 정치인들은 미국 언론에서 일본은 돈 밖에 모르는 국가라는 소문이 퍼지자 재빨리 휴전을한다. 그래도 일본은 러일전쟁 발발의 이유이지 양국의 원초적 목적인 한반도의 실질적인 영유권과 '포트 아서' 지배, 남사할린 영유권, 만주의 이권 그리고 기타 어업권 등등을 얻었기에 기대 이상의 수획을 얻은 셈이다. 일본 국민들은 청일전쟁때처럼 러시아가 돈셔틀 해올줄알고 풀발기 했었는데 꼴랑 저거밖에 안되자 폭동을 일으켰다. 더 요약하면 러시아가 함대 끌고 오기엔 거리가 너무 멀고 일본군 전력을 막기에도 힘들어서 결국 러시아가 털린다. 실제 역사서 기록에는 위에 기술된것보다 더 처절한 전쟁의 흔적이 보인다 당시 일본군의 전술은 믿기진 않겠지만 굉장히 획기적이었고, 백기대만 봐도 쪽바리 특유의 정신력 운운하는 자살돌격이 부대내의 신조로 자리잡았다. 2차세계대전당시 화염방사기 + 개런드로 쪽바리들을 아무리 학살해도 항복은 커녕 눈알 까뒤집고 반자이테츄!거리면서 발작하는 일본군의 븅신성에 전세계가 경악을 했는데 백병전이 비일비재했던 당시 그러한 미친 유사인류들을 상대했다 생각해봐라. 러시아인들은 한인들에게 도움을 받았는데 원으로 안내고 러시아 돈을 낼려고 하는둥 정황이 없었던것으로 보인다. 정주에서의 싸움에서 코사크인들이 대거 물러남으로써 한반도에서의 싸움은 종전됐다. === 결과 === {{심플/망함}}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한 결과로 [[조선|헬조선]]은 사라졌지만 조금 [[일제시대|온건한 헬조선]]으로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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