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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집 == 로마 왕국 시절, 전쟁이 나면 왕이 시민들을 모아 싸우고 전쟁이 끝나면 바로 해산하였다. 이후 로마의 7왕 중 6번 째 왕인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때부터 징병제으로 바뀌게되었다. 전쟁이 나면 거리 곳곳에 트럼펫이 불었고 이 소리를 들으면 카피톨리움 언덕<ref>유피테르 신전이 있는 곳</ref>으로 갔다. 징병관인 집정관이 징집조사를 하는데, 이름과 사는 곳<ref>로마는 5년에 1번 가정의 가족 수, 연령, 재산을 조사하는 호구조사를 했다.</ref>을 묻고 명부에서 확인, 신체 조건을 조사하면 끝이였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17~47세의 나이이며 시민권을 갖고 있고 자비 무장이 가능한 경제력, 장애가 없어야하고<ref>고자는 상관이 없었다!</ref> 몸이 건장한 것이 조건이였지만 때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경되었다. 로마군의 신체조건은 최소 173cm<ref>4세기 기준</ref>이였다고 하는데 그 시대에 그럴리가... 일반적으로 165cm라고 추측한다. 그 외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면제를 받았는데 손가락이 하나라도 없으면 면제였다.<ref>그 중 무기에 힘을 실을 수 있는 엄지 손가락이 가장 중요했는데 병역을 면제 받기위해 엄지손가락을 잘라냈다고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자 4세기 말에는 엄지손가락이 없어도 입대시키도록 법이 개정되었다.</ref> 속주국의 시민들을 징집하면 타국 경우엔 반발하겠지만 로마는 보조군으로 징집 후 제대하면 시민권을 제공하였다. 시민권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은 많으며 자식에게 이어지기 때문에 아버지는 보조군, 아들은 군단병인 가정이 많았다. 하지만 값싼 수입 곡물과 잦은 전쟁으로 인해 자영농민인 병사들이 몰락해가자 가이우스 마리우스는 군제 개혁을 단행하였다. 군제 개혁으로 인해 무장을 나라가 준비해주니 중산층만이 아닌 가난한 시민들도 로마군으로 복무 할 수 있게되었으며 군에 복무할 때는 돈으로 월급을 지급, 제대하면 땅을 지급하여 중산층의 몰락을 막아냈으며 BC 28년엔 성인 남성 26.2명당 1명이 로마군이였고 나머지 인구들도 언제든지 징집이 가능할만큼 군사의 수를 불렸다.<ref>하지만 돈을 지급하는 사람이 군단장이라 군의 통제권이 지나치게 군단장에게 가고, 왠만해선 똑같은 군단의 군단장으로 복무했기에 사병화를 불러오고 내전의 확률이 증가하였다.</ref> 베게티우스(Vegétĭus)에 따르면 신병은 군대 마크(문신)를 새겼다고 한다.<ref>이는 탈영방지 때문으로 보인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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