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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판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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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당시 대작곡가 요제프 하이든의 제자가 된 적이 있었는데 하이든의 교육방식과 베토벤이 원하던 교육방식의 차이 때문에 미지근하게 사제관계가 끝난다. 하지만 이후로도 베토벤은 하이든을 존경했고 자신이 처음 작곡한 소나타를 하이든에게 헌정했다. 오페라로는 별로 재미를 못보았다. 오페라는 단 1개인 '피델리오' 뿐. 이것도 나름대로 좋은 작품이지만 작곡 과정에서 하도 시달린 점이 많아서 베토벤은 자신과 오페라는 맞지 않는다고 여겨서 이후엔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았다. ㄴ 맥베스를 쓰려 했다가 때려치고 그 곡의 모티브는 귀신 트리오에 사용, 2001년에 맥베스 서곡 복원되기까지 버로우. 파우스트 쓰려다가 갓갓갓 사망. 9번 교향곡 합창(환희의 송가) 은 오늘날 [[유럽연합]] 찬가(국가)로 쓰고 있다. 그리고 그 9번은 당시 기술로 연주가 존내 어려워서 욕을 오지게 쳐먹었다. 거진 연주자들 끝판왕 격이었다고. (이걸 실감하려면 존 엘리어트 가디너가 원전 악기와 베토벤 지시에 100% 맞춘 템포로 연주한 9번 교향곡을 들어보면 된다) 겨우 화성학 발달로 [[바그너]]때 완벽하게 연주가 가능하게 되었다. 대푸가는 더한것이 20세기에야 곡을 이해했을 정도. 초기 낭만곡의 최종보스라 봐도 좋음. 또한 나치스가 존나게 빨아재낀 아재이다. 근데 베토벤 성향상 나치를 안다면 존나 싫어했을 것이다. 실재론 히틀러 개인적으론 바그너 오페라를 더 좋아하긴 했지만 서도. 하지만 나치는 베토벤의 삶이나 음악을 불굴의 의지의 독일인의 이미지로 만들어 버렸다. 어느정도였냐면 심지어 술주정뱅이 막장인 베토벤의 애비의 행패또한 갓 독궈 게르만족의 상남자라고 빠라댔다고 한다. 하지만 베토벤이 히틀러 시대에 살았으면 작곡하다 또 찢어버리고 "명예 유태인" 누명 쓰고 강제수용소 끌려가셨겠지. 많은 사람들이 Beethoven을 Bee Tho Ven으로 띄워서 베토벤으로 읽는다던데 정작 독일에서는 Beet와 hoven으로 띄워서 비트호픈으로 읽는다. 전형적인 문과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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