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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판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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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 [[독일]]의 [[작곡가]]. 음악사 쪽으로 고전주의~낭만주의 초 에 걸쳐있는 인물. 모차르트와 더불어 바흐에게 비빌 수 있는 몇 안되는 음악가이다. 이 사람이 뭘 만든지 자세히 몰라도, 그의 교향곡을 들려주면 [[부랄]]을 탁치며 아! 이 노래! 를 외치게 만드시는 분. 당장 클알못이라도 5번 운명, 6번 전원, 7번 2악장 , 9번 합창 4악장 은 틀어주면 아~항 하면서 다 안다. ㄴ14번 왜 빼는거냐 ㄴ 위엔 교향곡만 적어놨잖아 14번은 피아노소나타여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그의 교향곡 혹은 피아노 소나타가 나오고있다. 스승충+[[노력충]]의 결정체. 재능도 있었지만 진정한 성공을 [[노오력]]으로 이뤄낸 노력충. 근데 솔직히 재능충이기도 하다. 루트비히의 아버지 [[요한 베토벤]]은 술주정뱅이에 실패한 음악가인데 신동 모차르트의 소문을 듣고 자기 아들 루트비히도 그렇게 만들어서 빨리 돈 벌게 하려고 매일같이 술쳐먹고 집에 와서 루트비히를 몽둥이로 두들겨 패가며 피아노 연습을 시킨다. 게다가 어릴적에 친구들 만나가며 사회성 키우는 시기인데 베토벤의 사회성을 전혀 키워주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베토벤은 성격이 괴팍해지고 사회성도 떨어지게 된다. 그렇게 억압받고 쳐맞으며 피아노를 치면서 정말 억지로라도 노오력을 했고 좋은 스승 살리에리(그 모차르트의 라이벌로 알려진 사람 맞다.) 만나 비뚤어지지 않고 음악가가 된다. 청년기에 당시 대작곡가 하이든의 제자가 되어서 존나 기뻐했지만 하이든이 너무 바빠서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했고 하이든의 교육방식(기본적인 것들은 자신이 가르쳐 주고 세세한 음악 공부는 베토벤이 스스로 하면서 자신의 밑에서 여러 음악가들과 공연을 보면서 음악의 폭을 넓히는 것.)과 베토벤이 바라던 교육방식(무조건 열심히 가르쳐주는 것.)의 차이때문에 얼마 안가 미지근하게 결별한다. 그렇다고 안좋게 끝난건 아니라서 베토벤은 결별 후에도 하이든의 음악을 공부했고 자신의 첫 소나타를 하이든에게 헌정하기도 했다. 더욱이 죽기 20년 전부터 귀머거리가 되었지만 머리로 음악을 듣는(골전도 이어폰의 원리로) 처절한 노오력으로 작곡을 한다. 귀머거리가 된 뒤 지휘자가 되어 지휘한 다음 기립박수를 받는데 지휘자는 관중들과 등을 지고 지휘하는지라 베토벤은 박수 소리 듣지도 못했고 악단 중 한 사람이 뒤를 돌아보게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 1만 시간 노오력을 하면 어떤 분야든 마에스트로가 될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하면서 [[모차르트]]를 데려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로 노오력을 얘기하고 싶다면 베토벤을 들고오도록 하자. ( 단, 모차르트도 상당한 노력충이였다. 재능에 가려서 그렇지.. 실제로 모차르트는 자신을 재능충이라고 여기는 걸 싫어했다.) 나중에는 아예 귀가 안들리기 시작하여 먹통이 되더니 작곡은 무슨 음악도 들을 수 없는 상황. 베토벤은 자살 유서까지 썼었지만 워낙 독한 성격인터라 포기하지 않고 유명한 교향곡들을 작곡하여 전설로 남았다. 또 황금만능주의에 찌들지 않은 [[죽창]] 면역이다. 시골에 작은 음악단이 부탁하자 작곡까지 헐값으로 재능기부한 적이 있다. 오히려 죽창을 들었다고 볼 수 있는데 베토벤은 당시 귀족들을 매우 싫어했다. ㄴ귀족을 싫어하기 보다는 자신이 귀족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다.귀족은 애비에게서 얻은 자산으로 부유해졌지만 자신은 노오력으로 올라갔으니 더 대단하다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그의 후원자를 직접골랐고 오만한 귀족들을 물먹이곤 하는 등의 거만한 태도를 보였으나 귀족들은 그의 음악실력을 인정하며 그에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ㄴㄴ 정확히는 자신의 지위나 부를 과신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부류를 굉장히 싫어했다. 동생 요한과 사이가 안좋았던 이유도 요한이 되먹지 못한 졸부였기 때문.(그래도 나중엔 화해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베토벤이 모든 귀족들을 싫어한건 아니었는데 친구 중 한 명인 발트슈타인은 백작이았다. 베토밴이 쓴 음악들엔 항상 인류의 자유와 평등에 대하여 노래했다. 그는 인종차별과 계급제에 대한 뿌리깊은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로인해 프랑스혁명이 일어났을 때 나폴레옹 장군 제발 유럽을 개혁시켜주세요 하다가 황제가 되자마자 개 씨벌 좆같은새끼 하시며 영웅교향곡 막장을 찢어버리신 건 유명하신 일화 [[괴테]]와도 이 점이 안맞아서 작별했다고 한다. 괴테와 함께 길을가던중 선제후 나으리와 만났는데 괴테는 모자를 벗고 공손히 절을 했지만 자신은 고개를 뻣뻣이 들었고 다음과 같은 말로 따졌다고 전한다. '''저 들은 한세대만 가도 잊혀질 자들입니다. 그런데 선생과 나는 영원히 회자될 사람들인데 어째서 저자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단 말입니까!''' 갓갓갓의 패기에 지렸다. ㅠㅠ 진짜 저렇게 됨. 아버지가 가난에 시달리면서 [[알코올 중독]]으로 가정 형편을 말아먹고 자신을 억압해서 기득권층을 매우 싫어하는 듯하다. 베토벤이 그렇게 살 동안 윗 사람들은 복지는 커녕 과세에 혼자 잘 먹고 잘 살았을 테니까. 그리고 다혈질이라 예를 갖추는 식을 싫어한다. 음악가가; 사실 이는 베토벤이 존나 유명한 대작곡가라서 귀족들에게 뻐길 수 있었던 것이다. 후대에 최고의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는 왕족에게 뻐기고 다녔었음. 베토벤 미들네임의 판이 조상이 네덜란드 귀족이 아니면 못갖는거다. 즉, 베토벤은 이로써 귀족과 뻐길수 있는것, 심지어 제자인 루돌프 대공은 왕족이다. 다만 Van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해도 귀족 혈통인건 아니다. 네덜란드엔 평민임에도 판이라는 이름이 붙은 경우가 많고 베토벤은 태어나면서 평민이다. 다만 베토벤의 할아버지가 네덜란드 귀족이었다. 슈베르트는 교향곡 9번 초연을 보고 지렸다고 하며 죽기 일주일 전 갓갓갓이 그의 작곡을 보고 재능을 칭찬했으나 이제야 만나게 된 것을 한탄했다고 한다.슈베르트는 그에게 답변하려햇으나 곧 뒤질거같은 목소리를 듣고 방을 뛰쳐나와 펑펑 울었다고한다. 그리고 1827년 3월 26일 삶을 마감했는데 이 때 슈베르트도 장례식에 참석해 펑펑 울었다. 베토벤의 딸이 있다! Minona von Stackelberg(Minona van Beethoven이라고도 한다.)라는 사람은 어머니가 요세피네이고, 아버지가 베토벤이다! 물론 결혼을 안 해서 사생아. 베토벤은 죽을 때까지 아들이 없어서 조카를 애지중지하게 키웠다고 한다. 슈베르트, 브람스라는 광팬의 묘지를 자신의 묘 옆에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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