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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카낭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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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원래 브라질의 유니폼은 다음과 같았다. *상의: 흰색 유니폼에 어깨에 파란 세로줄이 그어져 있었다. *하의: 흰색 *양말: 흰색 그런데 마라카낭의 비극을 당한 유니폼이 저주받은 유니폼이라면서 유니폼을 이렇게 갈아치웠다. *상의: 노란색 *하의: 파란색 *양말: 파란색 그리고 선수들 전원을 물갈이했고 특히 이 경기에서 브라질 골키퍼로 뛴 [[모아시르 바르보사]]는 '''패배를 부르는 선수'''라는 오명 때문에 제대로 된 팀에서 뛰기 힘들어졌다. 은퇴 후에도 감독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스포츠 해설자 자리마저 거절당하는 우여곡절을 겪였다. 바르보사는 이 경기 이후 딱 50년을 더 살았는데 '''그 기간이 징역이나 다름없었다'''고 회고했다. 1950년 월드컵에서 뛴 브라질 엔트리멤버는 니우통 산투스 1명을 빼고는 다시는 국가대표에 들어가지 못했다. 니우통 산투스는 엔트리멤버에 올라가는 있으되 이 월드컵에서 단 1초도 뛰지 않았다. 물론 니우통 산투스는 2년 넘게 국가대표에 뽑히지 못하고 있다가 1953년에서야 비로서 국가대표에 다시 뽑혔다. 실제로 마라카낭의 비극때 뛰지 않고 벤치만 뜨겁게 달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그 니우통 산투스는 [[펠레]]를 도와서 1958년 스웨덴 월드컵과 1962년 칠레 월드컵을 우승하면서 마라카낭의 비극때 당했던 치욕을 완벽하게 씻어내고 명예롭게 은퇴했다. 참고로 1962년 월드컵 당시의 니우통 산투스의 나이는 2014년 월드컵 당시의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나이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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