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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 좆망한놈들은 발해에 바로 흡수됬고 안망했던 놈들은 발해의 빵셔틀이 되었다. 고구려가 망하면서 말갈중 기존 6개부족은 고구려유민과 함께 영주로 압송당하거나 어딘가로 이주했다. 영주로 끌려온 고구려의 옛 장교 [[대조영]]은 고구려유민과 말갈잔당을 이끌고 돈화현으로 이주하여 발해를 건국했다. 한편 고구려가 멸망한 뒤 30년동안 기존 부족중 용케도 살아남았던 불열부, 그리고 씹듣보였다가 갑툭튀한 철리부, 월희부, 우루부는 동모산에서 발해가 건국되자 발해에 편입되기 시작했다. 근데 뱃지만 바꿨을 뿐이지 발해 중앙정부와는 대등한 위치를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발해의 속사정은 뤼순에 있었다가 [[러일전쟁]]때 [[좆본군]]이 슬쩍해서 지금은 고쿄 건안부(建安府)앞 뜰에 있는 '홍려정석각(鴻臚井石刻)'에서 잘 드러난다. 홍려정 석각은 당나라의 관료 최흔(崔忻)이 발해 대조영에게 좌효위원대장군발해군왕(左驍衛員外大將軍渤海郡王)으로 봉하면서 또 '''선로말갈사(宣勞靺鞨使)'''로 파견되었던 것을 기록한 비석이다. 본래 말갈이 자체적으로 조공할 때 현대기준으로 조양(朝陽)찍고 통요(通遼)의 시라무렌강 찍고 조아하찍고 송원(松原)찍고 말갈까지 갔다.<ref>去洛五千里。自和龍北二百餘里有善玉山,山北行十三日至祁黎山,又北行七日至如洛瓌水,水廣里餘,又北行十五日至太魯水,又東北行十八日到其國。國有大水,闊三里餘,名速末水(낙양에서 5,000리 떨어져있는데, [[요령성#조양|화룡(和龍)]]에서 북으로 200여리를 가면 선옥산(善玉山)이 나오고, 그 산에서 북으로 13일을 가면 祁黎山에 이른다. 다시 북으로 7일을 가면 강폭이 1리 남짓인 여락양수(如洛瓖水, 現 시라무렌강?)에 이른다. 거기서 다시 북으로 15일을 가면 태노수(太魯水,現 조아하?)에 이르고 다시 동쪽으로 18일을 가면 그 나라에 도달한다. 나라에는 폭이 3리 남짓인 큰 강이 있는데 이름은 속말수(速末水)이다. - 위서 물길열전</ref>그런데 먼저 찍고가야할 조양이랑 시라무렌강지역의 도로가 거란, 해족, 돌궐때문에 털렸다. 그런데 발해는 또 족쳐야겠으니 발해가 통합하려던 우루, 월희, 철리, 불열등의 말갈로 후장을 뚫어보겠다는 실로 [[북괴]]나 [[중화인민공화국|중공]]스러운 생각을 해서 선로말갈을 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최흔은 대조영을 책봉하는 임무도 맡았으니 부업으로 바로 처리하면 될일이었다. 암튼 이런 의도로 시작된 최흔의 말갈선로는 발해의 지원아래 별일없이 조용히 끝났다고 한다. 이런이유로 발해국왕은 월희, 불열, 우루, 철리등의 말갈세력들을 빵셔틀로 거느린 담당일진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한동안 '''발해말갈(潑海靺鞨)'''로 불리게 되었다. 하지만 발해의 [[무왕]]은 아래 후술할 흑수말갈토벌이후 인근 말갈들을 다시한번 담구면서 지역집단을 붕괴시키기 시작했고 결국 철리, 월희, 불열, 우루등은 740년대를 기점으로 독자적으로 조공단을 보내는 세력에서 읍락 추장들이 좆본으로 가는 사신 따까리나 하는 발해인으로 완전히 편입시켰다. 한편 지리적 문제때문에 독자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흑수말갈의 경우,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부족사회가 붕괴되기는 개뿔 부족이 더 번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호재에서도 정치적 통합이나 부족국가에서 고대국가로 나아가는 개혁따윈 없었다...<ref>唯黑水完强,分十六落,以南北稱,蓋其居最北方者也。人勁健,善步戰,常能患它部。(오직 흑수부만이 완강하여 땅을 16개부락으로 나누고 남부, 북부로 일컬었으니, 이는 그 위치가 가장 북쪽이었던 탓이다. 사람들이 거세고 전쟁을 잘하여, 늘 다른 부족의 걱정거리가 되었다.)- 신당서 219권 열전 제 144 북적 흑수말갈</ref> 하지만 흑수말갈을 방치하다시피했던 고구려와 달리 발해는 외교활동을 할때는 아예 못하게 막거나 설령 하더라도 통보하고 발해사신도 같이 따라가 감시하는 방식으로 흑수말갈을 통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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