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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왕의 말갈토벌 이후 === 빵셔틀도 아니고 이젠 발해가 갈아버렸다. 그런데 발해의 국부 대조영이 죽고 아들인 발해 무왕이 즉위할 때 국제정세가 완전히 바뀌었다. 내부부족이 이탈하고 묵철가한이 지쟈스만나러 가면서 잠깐 쇠퇴하던 돌궐은 후임이었던 비가가한의 신들린 수습으로 예토전생에 성공하고 다시 당을 공격했고, 이때문에 후방안전을 위해 발해에게 고막해와 거란을 공격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말갈을 확실하게 제압시키고자했던 무왕은 당의 요구를 씹어버리고 '발해말갈'이라 불리던 발해내 말갈세력들을 제압하는 쪽으로 갔다. 때문에 원군요청도 씹히고 그동안 했던 말갈선로도 물거품이 되어 분노한 당나라는 후방에서 번성하던 흑수말갈을 통해 뒷치기를 하고자 했다. 그리고 흑수말갈은 726년, 발해에게 아무런 통보도 하지않고 직접 당에게 조공한다. 안그래도 말갈토벌에 열이 올랐던 발해무왕은 이걸로 제대로 빡쳤고<ref>十四年,黑水靺鞨遣使來朝,詔以其地爲黑水州,仍置長史,遣使鎮押。武藝謂其屬曰:「黑水途經我境,始與唐家相通。舊請突厥吐屯,皆先告我同去。今不計會,即請漢官,必是與唐家通謀,腹背攻我也。」(구당서 199권 하 북적 발해말갈전) - 726년, 흑수말갈이 사신을 보내와 조공을 하니 조칙으로 그 땅을 흑수주로 삼아 장사를 두고, 사신을 보내어 진압(鎭押)하게 했다. 발해 무왕 대무예가 부하들에게 이르니“흑수말갈이 우리 국경을 거쳐 처음으로 당과 통했다. 과거 돌궐에게 吐屯(관직)을 청할 때도 모두 우리에게 먼저 알리고 함께 갔었다. 이제 뜻밖에 바로 당에게 벼슬을 청하니 이는 반드시 당과 공모하여 앞뒤로 우리를 치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ref> 주제를 넘었던 흑수말갈을 작살내버렸다. 그리고 월희, 우루, 철리, 불열등 미리 숙였던 발해내부의 말갈세력도 이후에 수도를 불열부의 땅이던 상경으로 옮기면서 지대로 쳐맞고 망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발해내 말갈은 741년, 흑수말갈은 762년의 조공을 끝으로 조공이 끊기다가 나중에 다시 조공을 재개했지만 조공단은 발해왕족이 감시원으로 동행하고 부족의 수령이 좆본으로 가는 사신 따까리역할만 하는 수준으로 좆망했고 발해는 족친 말갈의 땅에 여러 주현을 설치하여 5경 15부 62주 100여개현이라는 행정체제를 정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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