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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리 == [[연기론]] :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서로 의존적으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게 뭔뜻인지 모르겠으면, 사전을 찾아보자. 한 단어의 뜻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항상 다른 단어를 사용해야만 한다. 즉, 개념이란 필연적으로 다른 개념들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도덕경>에선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있음"이라는 개념이 있기 위해서는 "없음"이라는 개념이 있어야 한다. 하이데거식으로 말하면, "희다"는 개념을 위해서는 그와 대립되는 다른 개념인 "검다"는 개념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대승불교에선 이걸 공(空)으로 표현한다. 모든 존재나 개념은 어떤 자존적인 실체없이 의존적으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성철스님(맞냐? 잘 아는놈 고쳐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ㄴ성철스님 맞다. 존나 수련하다 내려온 성철스님에게 기자들이 마이크잡고 무슨 깨달음을 얻었냐 물었더니 아래와 같이 대답하고 인터뷰를 끝냈다 한다.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다." 이건 그것들이 존재하는 양태를 표현한 말이다. 그것들은 본래적인 개념에 의거한다기보단, 다른 무언가에 의존적으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북미 인디언식으로 말하면 미타쿠예 오야신이다. (류시화가 쓴, <나는 왜 네가 아니라 나인가>읽어봐라) [[무아론]] : 불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자아라는 개념은 망상에 불과하다. 달리 말하면, 변하지 않는 항상적이고 영구적인 자아라는 건 망상이다. 무엇이 '나'인가? 육체인가 정신인가? 육체와 정신은 다시 여러가지 감각과 감각기관으로 나뉜다. 그렇다면 그러한 감각기관(감관)과 감각의 지각 중 어떤 것이 '나'인가? 뭐 이딴 식의 질문들을 던지면서 자아 개념을 파괴하는 것 같다. 난 잘 모르니까 잘 아는 놈은 수정해랑. :ㄴ 전통적으로 인도철학에선 육체와 정신을 나눠서 보지 않았음. 영혼을 물질의 일종으로 생각했고 감각을 느끼는 6근에도 눈, 귀, 코, 혀, 몸에다가 따로 수용기관도 없는 마음을 넣었고. 불교에서도 계승하긴 했는데 인도 유물론은 그냥 원시적인 학문임 감각은 육체의 집착으로 인해 생기는 것(지각도 뇌 때문에 생기는 거긴 한가). 어느 경전인진 기억 안 나는데 "재목을 모은 것을 수레라 일컫듯 모든 온(육체와 육체의 인식작용)이 모인 것을 거짓으로 존재(나, 아트만)라고 한다."라고 한다. ㄴ 불가에선 사람을 색(육체,육체의 지각인식),수(지각인식의 느낌).상(표상작용),행(의지,생각),식(의식,기억,수상행과 서로 의지하여 존재하고 이 네가지는 육체의 지각인식과 의지하여 존재하고 육체와 지각인식 또한 수상행식에 의존하여 존재한다라고 주장하는게 오온설인데 이놈들이 시시각각 변한다는 사실을 관찰하고 과도한 감각적쾌락과, 성냄, 미신(힌두교적 윤회론,영혼의 존재, 사주팔자 관상과 같은 미신)에서 자유로워졌을때 꺠닳았다라고 말함 윤회론 : 불교 수행의 이유. 삶은 고통으로 가득한데, 죽어도 끊임없이 환생하기 때문에 불교도들은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위의 무아론과 모순되는 부분이 있음. "나"라고 할 만한 게 없는데 무엇이 윤회한다는 것인가? :ㄴ 힌두교도 그렇고 불교에서는 윤회를 '고통의 지속'으로 규정한다 이번생 죽고 다음생 태어나서 새로운 몸 받는다는 것은 윤회를 이해시키기 위한 것이며 진짜로 다음생에 새로운몸받고 다른 삶을 사는 것이라면 '영혼'같은 불사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러면 불교의 무아론에 어긋나고 '유신견'이 되어버린다. 결론은, 윤회는 고통의 지속적 흐름이니 해탈할 놈들은 윤회가 뭐니 하고 망상 일으키지 말고 고통 끊게 마음공부나 하라는거다. ㄴ 원시불교에서는 그냥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육체가 죽으면 뇌를포함한 육체가 인식하는 세상도 사라지는것과 마찬가지이므로 세상이 내육체에 의지해서 존재한다고 보기도함 또 제법무아라고해서 도덕관념을 포함한 모든게 상대적이라 절대적으로 좋고 나쁘다 할수있는게 없다고보기에 윤회도 안믿고 신도안믿음 근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종교에 인생갈아넣는 애들은 무지하니까 윤회한다 하는거고 이런거 불교씹덕들만 관심있으니까 정토종에선 걍 희한한거 안믿고나무아미타불만 외치면 윤회안하고 성불한다고봄 또 이렇게 상대적인 내용만 쳐넣으면 도덕성 개판되니까 절대적으로 지켜야할 5계같은걸 만들어놈 윤회는 석가모니가 창시한 개념이 아니라 힌두교의 전신인 브라만교에서 따 온 것이며, "나" 개념(아트만. 유럽으로 치면 영혼)도 브라만교에서 따 온 거고 애초에 석가모니와 제자들이 살았을 때의 인도는 브라만교가 서서히 쇠퇴하고 있던 일종의 르네상스 시대여서 브라만교에서 따 온 게 많음. 윤회나 업 사상 같은 건 인도인들에게는 현대로 치면 "지구는 둥글다" 수준의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는데, 그래서 석가모니도 걍 그렇게 생각한 건지 아님 뭐가 있는데 내가 모르는지 거기까진 모르겠다. :ㄴ브라만교에서 따왔다기보다 당시 인도에선 종교와 무관하게 인도인들 사이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개념들 아니었냐? 윤회, 업, 아트만 뭐 이런거. 단지 그것에 대한 해석이 종교별로 달랐던 방식인걸로 아는다. 하지만 불교와 힌두교의 윤회는 어느정도 차이가 있다. 힌두교에서는 전생에 쌓은 공덕이나 지은 업보로 인해 다음 생에 높은 계급으로 태어날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날지가 결정된다면 불교에선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고 해도 그 전전생에 업보를 많이 저질렀다면 수라도나 아귀도, 축생도에 떨어질 수도 있다. 이는 석가모니가 살아있을 때 브라만의 귀족화, 타락화와 연관이 있다. 당시 인도에선 수행자(브라만)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공덕을 쌓는 지름길이었는데 브라만들이 점차 배가 부르기 시작하자 전생에 업보를 저질러 낮은 계급으로 태어난 바이샤와 수드라의 음식은 오염되어 있으니 거절하고 크샤트리아들 하고만 놀게되어 하층민들이 공덕을 쌓기가 힘들어 졌다. 반면에 석가모니는 그런 윤회관을 부정하며 먼 전생에 쌓은 공덕이나 지은 업보는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기에 현생의 계급은 전생의 공덕이나 업보만으로는 평가해선 안된다고 하였다. 때문에 석가는 계급 상관없이 대접한 음식을 먹고 하층민들을 위해 축사를 읊어주거나 덕담을 나누며 모든 인간들을 소중히 여기고 공평하게 대할 것을 주창해 브라만들의 귀족화, 타락화를 비판했다. 윤회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논의는 옛날부터 있었던 모양이지만 "아트만은 아닌 어떤 것이 있다." 수준의 말만 몇천 년 우려먹었다고 한다. :ㄴ 그럼 아트만은 무엇입니까? :ㄴ 윤회의 주체는 용수보살의 중관사상에 빗대어 말하자면 '없다' 이다. 주체도 없고 주체의 대상도 없다. 자기의 주체를 인식하는 실체없는 '아(俄)' 라는 강력한 환상에 속아서 윤회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 실체없는 '아(俄)' 에서부터 욕망을 대한 갈망이 시작된다. '아(俄)' 가 자기의 것을 인식하는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실체없는 '아(俄)' 를 분명히 인식하고 이 강력한 환상을 부순다면 부처가 되어 윤회의 종지부를 찍는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윤회의 원동력이 되는 '아' 는 실체라는 본질이 없기 때문에 윤회 또한 실체가 없게 되는 것이다. 팔정도 : 그럼 깨달음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 에 대한 대답. 올바르게 보기 / 바르게 생각하기 / 올바르게 말하기 / 올바르게 행동하기 / 올바르게 살기 / 올바르게 노력하기 / 올바르게 뜻을 세우기 / 올바르게 집중하기 우리 디시하는 앰창인생들은 이 중 하나라도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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