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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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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서울 한복판인 중구 회현동에서 태어났다. 다만 본적지(아버지 고향)는 [[경상북도]] [[군위군]]이다. 중학생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외국의 유명 락밴드(딥퍼플) 음악에 심취하여, 그 때부터 뮤지션의 꿈을 키웠다. 10대 시절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 앨범을 들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아서 이틀간 학교를 안 가고 음악만 들었다."라고 회상한 적도 있다. 보성고등학교 재학시절 이미 음악계에서 활동 중인 락밴드들을 따라다니며, 음악에 대해서 배우기도 했다. 그 때 따라다니던 밴드 중의 하나가 부활이다. 그래서 신해철은 김태원을 스승님이라고 불렀다. 김태원도 신해철을 아끼는 제자로 여겼다. 대학 입학 학력 고사를 아주 기똥차게 치뤘다. '''수학은 그냥 쿨하게 X자로 그어버리고 0점을 맞아버리고 나머지 과목들을 겁나 잘해서 서강대학교 철학과에 합격'''하고 입학했다. 문과 어쩌고 지랄 떠는 [[지잡대]] 공대생들은 이 '''슈퍼문과'''인 신해철을 보며 존경심을 가지고 본받아야 한다. 공부는 서울대쯤은 껌일 정도로 겁나 잘했지만 특정 과목을 강요하는 획일적인 교육에 대해 불만이 극에 달했기에 수학이라는 과목 자체를 개무시한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생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음악을 했다. 서강대에서 최고의 밴드라고 자랑하고 다니는 밴드 킨젝스의 오디션을 보기 위해 앉아서 기다리면서 [[담배]]를 피우며 기타를 치다가 [[에디 반 헤일런]]의 트레이드 마크인 기타 헤드에 담배를 꽂는 것을 따라했는데 버릇이 없다며 오디션도 못 보고 탈락한 경력이 있다. 물론 신해철은 그렇게 됐고 그 밴드는 아직도 학교 중앙 밴드. 킨젝스 관찰하고 '아기천사'라는 밴드에 들어가 강변가요제에 출전하나 3차 예선에서 탈락. 이 때 불렀던 노래가 훗날 그의 솔로 데뷔곡이 되는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이다.(강변가요제 출전 당시의 곡명은 '그리움은 기다림의 시작이야'였다.) 참고로 그때 강변가요제 대상받았던 사람이 [[담다디]]의 [[이상은]]이다. 이 경험으로 신해철은 나름 가요제에서 대상받는 법을 연구하고, 이후 자기 동창들과 '''[[무한궤도]]'''라는 대학가요제 올타임 레전드 밴드를 결성하여 대학가요제에 나가 화려하게 대상 수상. 멤버 * [[서울대학교]] 김재홍 - [[신디사이저]]. 현직 치과의사 * 조현문 - 신디사이저. 전 효성그룹 부사장, 현 [[변호사]] * [[연세대학교]] 조현찬 - [[드럼]]. 015B를 거쳐 세계은행 산하 국제금융공사(IFC) 국장을 지내고 현재 IMM인베스트먼트 아시아 인프라펀드 대표돌이사. 이 분도 대단한 게 쌍용그룹 창업주 김성곤 회장(1913~1975)의 외손자에 아버지는 한국 광고마케팅 업계의 시초인 나라홀딩스의 회장이었던 조해형 회장(1934~2017). * 조형곤 - [[베이스]] 기타. 015B 활동중이던 1993년 버클리 음대로 유학 후 [[백석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중 2020년 7월 25일 작고했다. 처음에는 신해철의 같은 과(서강대 철학과) 동기 '양두현'(신해철 말로는 윤상 닮았다고 한다)이 베이스를 맡고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유학을 떠나버렸다고 한다. 양두현 땜빵으로 들어온 멤버가 조형곤. 이 때 대상 먹은 곡이 바로 초딩들 치어리딩할 때 자주 쓰는 노래인 '''그대에게'''다. 참고로 김재홍, 조현문, 조현찬, 조형곤, 신해철 모두 학업성적이 비슷했으나 신해철 혼자만 수학을 포기하다 못해 개무시했다. 신해철이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이유가 뭐냐 하면 '''그대에게라는 이 대단한 노래를 고작 [[문방구]]에서 개당 2만원에 파는 [[멜로디언]] 한개만 갖고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1집 내고 잘 활동하다 멤버들의 음악적 견해 충돌이라든가 신해철의 [[흑역사]]인 [[대마초]] 흡연 사건이 터지면서 무한궤도가 해체된다. 무한궤도 해체 후 무한궤도의 후기 [[키보디스트]]였던 정석원은 세션 [[기타리스트]] 정기원(=장호일)과 [[베이시스트]] 조형곤과 [[드러머]] 조현찬을 데리고 '''[[015B]]'''를 만들게 되고, 그는 [[아이돌]]을 거쳐 [[넥스트]]를 만들어(중간에 군대에서 '''또''' 대마초 피워서 매장당할 뻔하지만) 국내 [[락]]밴드의 레전드가 되고, 넥스트 해체 후 [[영국]] 유학, 그리고 프로젝트 밴드였던 모노크롬, 비트겐슈타인 활동을 하다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또 하나의 레전드를 만든다. 이후 가끔씩 백분토론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유명 뮤지션들이 흔히겪은 그 흔한 표절시비 한 번 겪은 적 없었으며, 오히려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한 외국 뮤지션인 [[주다스 프리스트]]가 신해철의 음악을 표절한 적이 있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후배 밴드들에게 영향을 줬다. 서태지랑 절친한 사이였다. 서로 친척이기도 했고... 90년대 서태지와 신해철이 활발히 활동할 당시, 신해철과 서태지의 가사나 음악의 내용을 비교 분석하는 전문가나 일반인, 그리고 잡지칼럼 등이 많이 있었다. 원래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3살 때 [[녹용]]을 잘못 먹어 생긴 [[다한증]] 때문에 보컬로 전향했다고 한다. 무한궤도 영상 보면 기타 잘만 치던데 [[731 부대]] 출신 매드 사이언티스트 [[강세훈|강모]]씨에게 잘못걸려 의료사고를 가장하여 살해당했다. 강 아무개는 병원 이름 바꾸고 영업하고 있다. 그 강 아무개 돌팔이 새끼는 이후 외국인도 살해하는 바람에 징역 1년 먹고 깜빵에 갔으며 '''의사면허를 몰수당했다.''' 아래는 <민물[[장어]]의 꿈>의 가사. 신해철은 살아생전, '민물장어의 꿈'은 자신의 장례식에서 울려퍼질 것이며, 이 노래의 가사는 자신의 묘비에 적힐 것이라고 하였다. 다만 실제 신해철의 묘비에는 Here I stand for you의 가사가 적혀 있다. 이는 유족의 뜻이라고 한다. <pre>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 하는 저 강물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익숙해 가는 거친 잠자리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 그 마저 두려울 뿐인데 부끄러운 게으름,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저 강들이 모여 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pre> 또한 [[길티기어]] XX #Reload 한국 발매 때 자신의 밴드와 함께 메탈느낌 물씬 나는 한국판만의 오리지널 OST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것도 은근 띵곡이라서 의외로 유튜브에서 양덕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테스타먼트]]의 성우를 맡기도 했는데 [[연예인 더빙]] 치고는 퀄이 많이 나쁘진 않다. ㄴ참고로 테스타먼트의 유래는 스래시 메탈 테스타먼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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