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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르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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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 = 대표적인 저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쇼펜하우어의 중심 개념은 의지(Wille)이다. 이거 말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거 말고는 다른 게 없는데 당연한 거지. 이 당시 독일 철학에서 칸트가 얘기한 현상과 물자체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의 문제는 핵심적인 것이었다. 당시 피히테, 셸링, 헤겔 등의 독일관념론 철학자들은 이 물자체 개념에 대해 강한 반발을 보이면서 물자체를 어떻게든 인식 가능한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헤겔에 이르러서는 물자체가 절대정신에 의해 원칙적으로 인식 가능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그의 칸트 해석이 상당히 괴랄한데, 먼저 순수이성비판 A판을 선호하면서 B판은 칸트가 A판 내고 노망이 들어서 멀쩡한 A판을 개악한 것이라고 했다. 사실 A판 선호하는 건 하이데거를 비롯해서 학자마다 견해가 갈리기 때문에 그렇다 치고, 칸트와 플라톤이 매우 비슷하다는 주장을 하면서 둘의 철학 모두 자기 논지 하에서 상당히 변형시킨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물자체를 인식 가능한 걸로 바꿔버리려던 철학자들, 특히 헤겔을 칸트도 제대로 안 읽고 헛소리나 씨부리는 야바위꾼이라며 있는 욕 없는 욕 다 해 가며 조오오온나게 깠다. 그래서 쇼펜하우어 철학은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세워 놓은 인식론적 토대와, 현상과 물자체의 구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미결로 남은 물자체의 문제를 이론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실천 이성의 영역에서 해결한 반면, 쇼펜하우어는 이 실천 이성을 거부하고 직관적이고 미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저서 <충족이유율의 관한 네 겹의 뿌리>에서 칸트를 비판할 때 주로 칸트의 도덕적 현상론, 인간 인식의 12가지 범주나 양립가능론을 비판한다. 이러한 세 가지 요소는 모두 칸트가 물자체적인 부분을 경험적인 부분과 분리하여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실질적으로 내놓은 텍스트에서 나타나는 내용이 칸트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그 둘을 접목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정초한 12가지 범주를 모두 경험적 인식의 기초가 되는 직관을 무시한 결과라고 하며 모두 거부하고, 인과법칙과 직관 자체만을 남겨둔다. 그에게는 직관으로서 표상 자체가 성립하며,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인과법칙을 통해 직관이 작동하는 것이다. 도덕적 현상론과 양립가능론도 여기서 비판받는다. 경험적이라 할 수 있는 부분과 물자체적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을 연결시켜 도덕적 토대를 만드려한 칸트는 사실상 눈속임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물자체에 해당하는 의지는 칸트식의 도덕적인 의지가 아니라 맹목적인 의지이며, 물자체와 현상 모두 의지의 결과로써 동전의 양면과 같이 본질적으로 같되 세부적으로 다른 부분일 뿐이다. 물자체와 현상 모두 의지로서 우리 앞에 현존하며, 우리는 이 의지로서 촉발되는 현상으로 고통받는다. 이 세계의 원리인 맹목적 의지에 의해 우리는 불쌍하게 고통을 무릅쓰고 쾌락만 좇다 뒤지는 것이다. 우리처럼 스케일 작게 헬조선이 아니라 무려 헬세계를 주장한 통큰 철학자임을 알 수 있다. 이후 우리가 어떻게 탈세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미학적 주제들을 건드리다가, 나중에는 우파니샤드나 불교 철학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쇼펜하우어는 우파니샤드나 불교를 비롯한 동양 철학 (인도에 국한된) 을 학문적으로 정제된 형태로 서구에 소개한 초기 학자들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쇼펜하우어는 동시에 불교 철학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도 해석되곤 하는데,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철학으로 만들어낸 개념, 즉 '물자체적 의지'를 부정함으로써 윤리학의 정초를 세우는 등 다소 허무주의적 경향을 띄었기 때문이다. 이는 불교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현대에 불교학자들에게 끊임없이 비판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유념해야할 것은 쇼펜하우어가 불교 신자도 아니고, 불교학자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불교나 우파니샤드 등의 인도 철학 사상을 이용한 것의 의의는 쇼펜하우어 자신의 사상에 일관성과 풍부함을 더한 것이지, 단순히 이러한 사상들 자체를 해석하는 데 그치려고 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의 사상이 비판받아야 한다면 사상의 외적 부분이 아닌 사상 자체로 비판받아야 한다. 웃긴 게 얘 철학대로면 인간 새끼들 사이에서 유명해져봤자 무슨 소용인가. 그냥 '어휴 ㅄ들 ㅉㅉ' 하고 열반에 이르는 길을 걸어나갔으면 됐으나, 사실은 자기 철학이 주목을 받지 못하자 강단 철학자들이 키배에 발리니까 쫄려서 무시하고 튀는 거라고 욕을 하다가, 나중에 가서 유명해지자 강단 철학 교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이새끼도 언행불일치 ㅅㅌ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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