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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백인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냉정히 말해, 아니올시다였다. 전술하다시피 남아공 국민당이 내세운 고립주의, 종교 근본주의적인 정책으로 인해 서서히 백인들 사이에서도 정권에 대해 불만이 많았었다.동성애<ref>이미 이 당시 남아공은 개독이 좌지우지하던 동네라서 많은 동성애자들이 탄압받았다. 어떤 식이였냐면 군대에 강제로 끌려가서 "치료"를 받고 만일 미진하다고 "판정"받은 게이는 강제로 성전환수술 받고 레즈비언은 교정강간을 각오해야 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여당이 된 ANC(아프리카 국민회의)는 국민당에게 탄압받은 모든 이들은 우리의 형제라는 모토로 1996년 동성애 처벌법을 폐지했다. 아, 물론 남아공 내에서 동성애가 딱히 좋게 취급은 받지 못한다. 아프리카 치곤 낫다지만.</ref> , 음란물, 도박<ref>그래서 백인들이 반투스탄에 놀러간 거다</ref>, 낙태<ref>1996년 낙태죄 폐지한 이후 남아공서는 13주 이내에 본인선택에 의해서, 그 이후는 건강상 이상이 있을 경우에 한해 낙태가 허용된다.</ref> 등 사회적, 종교적으로 불온하다 판단되는 것들을 모조리 금지시켰고 일요일에는 안식일이라는 하여 백화점이나 극장 등에 대한 휴무를 강제했다. 냉전시대의 흐름에 따라 극단적인 반공을 내세운 것 땜에 같은 백인이라도 좌파나 흑인과 함께하는 운동가들은 철저하게 탄압받았다. 유신시절의 머한민국을 뺨친다. [[만델라]] 등 흑인 민권 운동가들을 변호했던 브람 피스허르<ref>이 양반은 가히 천룡인급 아프리카너임에도 불구하고 만델라와 함께하다가 체포되었는데 남아공의 거물 정치인의 후손인지라 추방과 망명을 조건으로 석방 제의를 한 국민당 정권에게 답하길 "나는 자랑스러운 아프리카너이고, 나의 조국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다. 내 정부와의 정치적 마찰 때문에 내가 조국을 떠나야 할 이유는 없다." 결국 옥사했고 남아공 내 백인들을 제외한 모두가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겼다.</ref>, 역시 흑인들을 위해 투쟁한 루스 퍼스트와 조 슬로보 부부<ref>루스 퍼스트는 무려[[택배]]를 받고 끔살당하고 조 슬로보는 개처럼 고생하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만델라 아래서 장관이 되었지만 오랜 지병인 암으로 사망했다.</ref>같은 인물들이 그 예. 그 외 딱히 좌파적이지 않은 리버럴한 백인들도 국민당 정권의 감시를 받았다. 애시당초 이 국민당의 정치인들 중 앞서 소개한 다니엘 프랑수아 말란, 발타자르 포르스터 등 거물들이 친나치 조직이던 포장마차파수대(Ossewabrandwag)의 일원으로 활약하면서 나치즘에 빠져들었고 그런 주제에 딱히 이렇다할 처벌도 안 받고 반공 지도자로 변신하면서 권위주의를 내세워가면서 통치했으니 이모양 이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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