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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 활동=== [[여운형]]과 아주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3.1 운동 직후 일본에 대한 국제 사회의 여론이 안 좋아지자 이를 환기하고 일본과 조선은 매우 우호적인 관계라고 선전하기 위해서 여운형을 일본으로 초청했을 때, 이동휘는 일본과 타협하는 일이라면서 극구히 반대했지만 안창호는 오히려 노잣돈까지 따로 챙겨주면서 그를 믿었다. {{인용문|안창호: [[서북 방언|적을 알아야 하니까니 가서 니야기를 들어보라우. 이거 얼마 되딘 않지만.]]<ref>당시 30원을 줬다. 조선 노동자들이 받는 월급이 5원(많아야 10원)이었던 걸 생각하면 적은 돈은 아니었다.</ref><br> 여운형: 허나 임정 안팎에서 야단들입니다.<br> 안창호: 괜티않아. 나라 팔아먹는다구 야단들이디만, 팔아먹을 나라가 이시야 팔아먹디? 하하하.}} 그리고 여운형은 이때 도쿄 호텔에서 조선 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외교적 1승을 챙겼다. 안창호는 이동휘처럼 급진전쟁론 수준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준비한 다음에 전쟁을 하자는 점진전쟁론을 내세웠다. 그 외에도 남탓할 시간이 있으면 자기의 부족함부터 탓해야 한다면서 이승만에게 일갈하는 발언도 임정에서 활동하는 동안 많이 냈다. 위임통치 청원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때는 안창호도 여기에 어느 정도 가담했던 사실이 있었기에 당시만 하더라도 이승만을 변호하는 입장이었겠지만 미국에서 3.1 운동 소식을 접한 이후 본격적으로 독립운동 노선을 갈아탄 탓인지 이승만과 마찰을 많이 빚었다. 이승만이 당시 법적으로 제정되지도 않은 대통령 직함을 달고 대통령 행세를 하면서 구미위원부에서 활동하는 모습에 그러지 말라고 전보를 보내기도 하였지만 이승만은 이에 대해서 떠들지 말라며 무시한다. 국민대표회의가 열릴 적에 그는 개조파로 있었는데, 덕분에 현상유지파였던 김구와도 사이가 썩 좋지 못했다. 윤봉길 의거 때 피신하라는 얘기도 안 건네는 덕분에 안창호가 체포된 일이 있었는데 이게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그런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지금도 간혹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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