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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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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시절 == {{야알못}} {{물방망이}} {{만년유망주}} 병신이었다. 통산타율이 1할대 후반으로 500경기 이상 출전한 타자 중 역대 최악의 성적. 커리어하이라는게 1994년의 .212였다. 2할6푼까지도 까긴했는데 이때는 규타를 못채웠다. 근데 고교시절에는 장타자였다고 한다. 이때 고향친구가 [[김기태]] 눕동이고 고교 후배가 [[이종범]]으로, 사실 중학교때 유급해서 염감이 1살 형이다. 그 이후로 눕동은 형 염감을 위해 감독 부임 후 승수를 아낌없이 퍼주었다. 불알친구니뮤ㅠ 그래도 염감이 훗날 눕동한테 [[서동욱]]을 조공했다. 이점에서 고교시절 엄청나게 갈굼을 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호성이랑 원래대로라면 친구인데 유급해서 후배가 되었으니깐. 김기태야 원래 동생인데 염경엽은 엄청 짜증났을거같다. 하지만 그 4번타자께서 일찍 뒈졌으니 진실은 알길이 없다. 롯데와의 악연도 있다. 1993년에 [[박정태]]의 다리를 부러뜨려 시즌아웃시켜 그 해 롯데를 폭망시킨 장본인이다. 원인이라고 한다면 충돌 때문이었지만. 타격이 시망인데도 중용된건, 초창기 태평양-현대가 디립게 못치는 물방망이였고, 이 와중에 그의 수비와 주루는 쓸만했기 때문이다. 지금 넥센으로 치면 [[유재신]]+[[김지수]]. 그러나 1996년 고교 최고 유망주 [[박진만]]이 오면서 백업으로 밀려났고, 2001년 전해 우승은 하고 [[정명원]] 은퇴식에 꼽사리 껴서 은퇴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소위 오렌지족 내지는 야타족이었는 듯 옷도 잘 입고 돈도 차도 있고 해서 연습 게을리하다 백업신세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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