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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문면 ==== {{석기시대}} 면적은 64.83㎢, 인구 1,777명. 1914년 승도면, 동음면의 일부, 감천면의 일부를 스까해 본면에 있던 보문사라는 절의 이름을 따 보문면이 되었다. 내성천 이북지역은 사실상 서로 월경지이고 내성천 이남의 경우 남쪽에는 학가산, 보문산의 산악지대로 구성되어있다. 내성천외에도 지류인 옥계천이 흘러서 남서쪽경계에 집단범람원을 이루고 있지만 전체면적에서 경지면적은 20.4%밖에 안되고 임야가 68.2%이다. {{인용문|도진순에 의해 학계에 소개되어 진실화해위원회의 심도 깊은 현지조사가 실시된 경북 예천군 보문면 산성동 폭격에 대한 연구논문과 조사보고서, 경북 예천 · 충북 단양 · 경기 · 강원 지역 폭격사건 조사보고서 등은 초토화작전의 남한지역 확산과정을 속속들이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을만하다. ... 폭격기 조종사들이 남한 내 작전구역 내에서 발견되는 모든 "흰옷을 입은 사람들"을 사실상 적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적잖은 전폭기 임무보고서의 적정 항목에는 '흰옷을 입은 사람들'(people in white)이 기록되어 있었고, 이 같은 지역에는 어김없이 대규모 네이팜탄 폭격이 진행되었다. 산성동 폭격의 정찰관 중 하나였던 조지 울프는 "많은 사람들이 흰옷을 입고 있었다. 우리는 적으로 간주할 수 밖에 없었다"고 증언했다. 산성동 폭격에 관여한 또 다른 정찰관 네빌은 "우리는 지상의 움직이는 모든 사람이나 물건은 아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51년초, 미 공군은 적 점령하의 남한지역 민간인들을 사실상 적 병력과 동일시하고 있었다.|김태우, 폭격중}} 1951년 1월 [[미국|갓조국]]의 [[에드워드 알몬드]]쉐프님은 보문면 산성리에 공산군이 진격할 것이라 예상, 초토화작전을 목적으로 18대의 폭격기를 산성리에 보냈다. 이 18대의 폭격기는 [[네이팜탄]]으로 산성리를 고온의 열기로 불살라주셨고 이에 130명의 민간인을 [[지쟈스]]곁으로 보내주었다. 하지만 문제의 공산군은 산성리 근처에도 가지 않아 애먼 양민들만 죽는 꼴이 되었다. 이로인해 알몬드 쉐프님의 부하였던 7사단장 데이비드 발 장군이 중지를 날리고 [[뉴욕타임스]]도 어 이건좀...하고 미 8군과 제5공군도 자체조사를 할 정도로 대형사고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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