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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태어나서 고등학생 때까지 살았다. 집에 전깃불이 안들어올정도로 지독한 흙수저 출신이다. 한때는 빚쟁이가 집에 칼을 들고 찾아오기도 해서 가난을 뼈저리게 느끼고 존나 공부해서 시험이란 시험은 죄다 1등을 하고 당시 [[1982년]] [[학력고사]] 전국 1등을 차지해서 제주도 서귀포시 개깡촌에서 튀어나온 말 그대로 개천에서 용난 수재였다. 그리고 학력고사 1등 인터뷰에서 그 유명한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라는 전국 급식충들을 뒷목잡게 만든 명언을 내뱉게 된다. 실제로 원희룡은 집이 가난해서 과외한번 받아본적이 없다. 그리고 본인이 밝히길 사실 이 인터뷰는 [[전두환]] 정권이 사교육 비중 줄이려고 의도적으로 읽으라고 준 쪽지를 그대로 읽은거라고 했다. 물론 당연히 교과서만 보고 공부했을 리는 절대 없고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수단은 자기 경제상황에 맞는 한 최대한 이용했을 것이다. 여하튼 몇십년에 한번 나올법한 수재인건 확실하다. 그리고 원희룡은 당연하게도 서울대 법대에 수석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전두환]] 정권의 폭압을 깨닫고 서클에 가입하게 된다. 특히 [[전투경찰|전경]]이 여학생 성추행을 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본격적으로 시위를 하게 되었고 학교로부터 유기정학을 당했다. 이렇게 원희룡은 한때 운동권에 몸담으면서 빨갱이 사상에 물들뻔했지만 [[1989년]] 동구권이 차례로 붕괴하는걸 보고 사상적으로 전향하여 [[주사파]]를 손절하였다. 아무튼 이렇게 정신차린 원희룡은 직접 돈을 벌어야겠다고 깨닫게되고 [[사법고시]]를 준비하게된다. 그리고 2년만에 수석으로 합격하게 되고 사법연수원에서도 5등으로 졸업했다. 한편 군대는 안갔는데 5살때 리어카에 발가락이 잘려서 접합수술하는 과정에서 장애인이 되었다. 지금도 발가락을 보면 두번째 발가락이 휘어져있다. 아무튼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검사가 된 원희룡은 서울지검, 부산지검 등에서 온갖 깡패들과 경제사범들을 잡아넣었지만 1998년 돌연 검사를 때려치고 변호사 개업을 한다. 그러다가 1999년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각각 젊은 신인 정치인들을 구하기 위해 러브콜을 하자 "민주당의 따까리가 되느니 차라리 내가 보수를 개혁해서 머리가 되겠다!"라는 심정으로 한나라당에 입당한다. 그렇게 원희룡은 제주도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으면서 한나라당이 중앙정치에서 온갖 개판을 부릴때도 유유히 제주도에서 나와바리를 건설해서 선거 치트키로 활동했다. [[자유한국당]]이 지방선거에서 TK빼고 다털렸을때도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개인기로 제주도지사로 당선됐다. 제주도민 자체는 민주당을 더 지지했으나 워낙 원희룡의 신망이 높아서 지사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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