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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록 == {{명언}} {{친한파}} {{눈물}} {{인용문|중국혁명 최후 목적의 하나가 [[대한민국|조선]]을 도와 완전독립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 일은 아주 힘든 일이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한국 혁명동지]]들은 일심단결하여 [[광복군|복국(復國)운동]]을 완성하기를 희망한다 확실히 [[영국]]과 [[미국]]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니 장래 필경 쟁의(爭議)가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 한국(독립운동 세력) 내부에서 성심성의로 통일된 모습을 보이기 위한 노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중국도 이 문제(한국의 완전독립)를 쟁취할 수 있고 이 일에 착수하기도 쉽지 않겠는가.|카이로 회담 전 [[김구]]와의 회담}} {{인용문|조선 혁명당 영수 [[김구]] 등을 만났다. 그들한테 내부 단결에 힘써 달라고 권하고 격려하였고 우리 정부가 주장하려 하고 있는 전후 조선독립 주장을 실현하는 데 협력해 달라고 했다.|장제스 일기, [[카이로 회담]] 직전}} {{인용문|조선 독립 문제에 대해 나는 특별히 [[프랭클린 D. 루스벨트|루스벨트]]의 중시를 끄는 데 힘을 넣었다. 나는 루 씨한테 (조선 문제에 관한) 나의 주장에 찬동하고 도와줄 것(贊助)을 요구했다.|장제스 일기(1943.11.23)}} {{인용문|한국 혁명당 [[김구]]에게 불화(佛貨) 1억5000만 프랑, 미화(美貨) 20만 달러를 지원함 ~(중략)~ 우리 정부가 비록 가난하기는 하나 한국에 대해 어찌 후하게 대하지 아니하랴.|장제스 일기(1월 4일 ‘전번 주의 반성록’)}} {{인용문|[[대한민국 임시정부|한국의 혁명당원]]들이 오늘과 같이 조국에 돌아갈 날이 왔으니 이것은 내가 (그들을) 받들고 세워서(扶掖) 이루어진 일이어늘 그 영광이 어찌 하느님을 빛내지 아니하랴. 그냥 기도할 뿐이오니, 그들이 하루라도 빨리 독립하기를!|장제스 일기(1945.11.12)}} {{인용문|우리가 대륙을 아직까지 갖고 있었다면 그까짓 5만 톤이 아니라 55만 톤 정도는 거저로 주었을 것...한국 같은 각별한 나라에게 쌀을 돈 받고 팔아야 하는 것이 애석하다.|1963년 대한민국의 대흉년으로 쌀을 사러 온 [[김신]]과의 회담}} {{인용문|내 나이가 이제 80이 다 되어가니 아시아의 반공 지도자는 [[박정희|박 대통령]]이 이으시오|1965 한중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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