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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에 대한 논란 ==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에 따르면 [[유리명왕]]의 손자인 태조대왕은 서기 53년에 7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146년에 왕위를 [[차대왕|고수성]]에게 물려줄 때까지 무려 93년간 왕위에 있었으며 이후로도 19년을 더 살았다고 하는데 산신령도 아니고 밥먹듯이 정복전쟁하던 양반이 119살을 산다는건 현대의학에서도 말이안되는거고 <후한서>에 따르면 재위기간 68년에 75살(만 74살)에 뒤지고 아들인 [[차대왕]]에게 왕위를 물려줬다고 나오는데 사실 이것도 2000년전 평균수명을 생각하면 존나 오래산거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이건 신라 귀족 출신인 [[김부식]]이 고구려 역사를 줄이려고 장난질 친거고 실제로는 유리왕의 손자가 아니라 [[대무신왕]]의 손자이며 태조왕의 아들인 재사는 유리왕의 아들이 아니라 [[대무신왕]]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삼국사기의 기록이 주작인 결정적인 이유가 태조대왕의 아버지인 고재사에 대한 기록인데 삼국사기 기록대로 고재사가 유리왕의 아들이면 [[대무신왕]]의 동생인데 형인 대무신왕이 서기 4년에 태어났으므로 태조왕이 즉위하던 서기 53년에 고재사의 나이는 아무리 많아봤자 49살이다. 또한 재사의 조카인 [[모본왕]]이 사망한 시기는 53년이며, 이는 [[유리왕]]의 사후 35년이 지난 시기이다. 따라서 재사가 유리왕이 죽은 해에 태어났다고 가정해도 유리왕이 18년에 죽었으므로, 재사의 나이는 적어도 35살 이상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삼국사기에 따르면 [[모본왕]] 사후 고재사가 왕위를 물려받아야 하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7살짜리 아들인 태조왕에게 물려줬다고 적혀있는데 아무리 2000년전 평균수명이 짧다고 해도 49살이 틀딱이라는건 말이안된다. 그러면서 태조왕의 동생인 [[차대왕]]과 [[신대왕]]을 각각 71년과 89년에 낳았다고? 참고로 89년이면 태조왕이 즉위했을때 고재사가 35살이었다고 쳐도 71살 이상이었는데 그렇게 오래 살 양반이 자기가 틀딱이라고 왕위를 거절한다는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일이다. 게다가 <[[삼국사기]]> 내에서도 <태조왕 본기>, <차대왕 본기>, <신대왕 본기>에서는 이 세명을 모두 형제지간이라고 적어놓고는 정작 [[신대왕]]의 아들인 <[[산상왕]] 본기>에서는 산상왕이 태조왕의 증손이라고 적어놨다. 이렇게 되면 [[신대왕]]이 태조왕의 손자가 된다. 참고로 <후한서>와 <[[정사 삼국지]]>에서는 [[신대왕]]이 태조왕의 손자로 나온다. 사실 [[삼국사기]]도 [[김부식]]이 <해동고기>를 보고 참고해서 쓴거라서 이미 그 책에 연도가 잘못 적혀있던건지 아니면 ㄹㅇ 김부식이 주작친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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