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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아즈텍]]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의 건의로 에스파냐의 국왕 [[카를 5세]]가 만들어볼 생각은 해봤지만, [[오스만 제국]]과 [[프랑스]]와 전쟁을 하고 있던 상황이라 돈이 없어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1880년 [[수에즈 운하]]를 완공한 바 있는 [[프랑스]]의 페르디낭 드 마리 레셉스가 처음으로 건설을 시도했으나, 인부 21,900명 가량이 요단강을 건너가는 참사만 남기고 실패했다. 이 실패로 레셉스는 파산하고 비참한 말년을 보내게 된다. 레셉스의 참담한 실패로 파나마 대신 [[니카라과]]에 운하를 지어야한다는 말이 나왔지만, 카리브 해에 있는 마르티니크 섬에서 몽펠레 화산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이 말은 쑥 들어갔다. 결국 이 운하의 필요성이 절실했던 [[미국]]이 나서서 1900년대 초부터 건설을 시작, 1914년 8월 15일에 완공한다. 미국은 프랑스가 실패한 까닭이 [[모기]] 때문이었음을 알아내고, 공사 지역 내의 건물에는 살충제를 뿌려댔고, 모기가 알을 깔 수 있는 고인물들에 모조리 석유를 갖다부었다. 심지어 성당에 있는 성수까지도 엎어버릴 정도로 철저했다. 프랑스가 건설할 당시엔 [[말라리아]]의 매개체가 [[개미]]라고 여겨서 숙소 침대 다리마다 그릇에 물을 담아놓는 헛수고로 오히려 모기를 더욱 불려버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미국도 프랑스만큼은 아니지만 피해가 없지는 않아서 5,600명 가량의 인부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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