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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국왕}} <center> {| class="wikitable" ! colspan="10" style="text-align: center;" style="color: white;background-color: ;" | [[신라|신라의 역대 왕]] |- | style="text-align: center;" | 4대 | rowspan="2" style="text-align: center;" | → | style="text-align: center;" | 5대 | rowspan="2" style="text-align: center;" | → | style="text-align: center;" | 6대 |- | style="text-align: center;" | [[탈해 이사금]] | style="text-align: center;" | [[파사 이사금]] | style="text-align: center;" | [[조분 이사금]] |} </center> {| class="wikitable" ! colspan="10" style="text-align: center;" style="color: white;background-color: gold;" | '''재위기간''' |- | [[80년]] ~ [[112년]] |} [[신라]]를 본격적으로 영토국가로서 발전시킨 군주. 재위기간은 삼국사기 기록상 80년~112년. 신라 제5대 임금으로 제3대 임금인 유리 이사금의 둘째 아들이다. 원래 유리 이사금의 맏아들인 일성이 왕위에 오르려했지만 누군가가 '파사가 더 현명하고 위엄이 있으니 파사가 왕위에 올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받아들여져 형 일성을 제치고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ref>일성은 훗날 조카인 지마 이사금의 사망 이후 왕위에 올라 7대 이사금인 일성 이사금이 된다.</ref> 근데 이건 기록상 이랬다는 거고 실제로는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권력다툼이 있었을 듯. 위에서도 적어놨듯이 치세 동안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다. 먼저 재위 23년인 기원후 102년에 실직곡국<ref>지금의 [[강원도]] [[삼척시]].</ref>과 음즙벌국<ref>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ref>에서 영토분쟁을 중재해달라고 요청한 일이 있었는데, 파사 이사금이 고민하다가 금관국(금관가야.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시]].)의 국왕 [[수로왕]]에게 중재를 맡겼다. 수로왕이 분쟁지역을 음즙벌국에게 주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일이 해결되자, 신라에서 6부에 축하잔치를 벌여 수로왕을 접대하라고 명했다. 그런데 6부 중 하나인 한기부(漢祇部)가 나머지 5부가 조선시대 2품 정도라 할 수 있는 이찬급이 축하잔치를 베풀게 했을 때 혼자 직위가 낮은 사람에게 잔치를 주관하게 했다. 화가 난 수로왕이 종 탐하리를 시켜 한기부의 장이었던 보제를 죽이게 했다. 그러자 탐하리가 음즙벌국으로 튀었고, 그 나라 왕이었던 타추간이 그를 보호해주다가 파사 이사금이 군사를 보내자 항복했다. 그 때 신라의 위엄을 본 실직곡국과 압독국<ref>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ref>도 신라에 항복한다. 2년 뒤에 실직곡국이 배반하긴 했는데, 다시 군사를 보내서 제압했다. 재위 29년인 기원후 108년에는 다벌국, 비지국, 초팔국을 정벌하였다. 각각 순서대로 지금의 [[대구광역시]], 경상남도 [[창녕군]],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으로 비정된다. 파사 이사금이 영토를 대거 확장한 이후 신라는 진한의 소국을 조금씩 합병하는데, 이 정복사업은 11대 조분이사금 시대까지 이어진다. 물론 사량벌국<ref>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ref>이 12대 첨해 이사금 시기에 이탈해서 [[백제]]에 붙는 사건이 일어나긴 하지만 금방 진압된다. 이때의 지배방식은 위에서 실직곡국이 배반했다는 기록으로도 알 수 있듯이, 직접지배라기보단 현지세력을 인정하고 자치를 허용하는 형태의 간접지배의 형태를 띈 것으로 보인다. 재위 22년인 기원후 101년에 월성을 쌓고 그곳에 옮겨 살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고고학적으로 월성의 초축시점은 기원후 3세기 이전에서 더 올라가질 않아서 파사 이사금의 실제 생존시기는 기원후 3세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서기]]에는 파사매금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신공황후가 신라를 정벌하러 오자 그 기세에 눌려 항복했다고 한다. 근데 일본서기 신뢰성 알지? 그냥 소설이라 생각하고 거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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