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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이후 === {{인용문|서울의 잘 알려진 가문에서 [[평양]] 출신의 사위를 맞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조롱과 비난, 심지어는 욕을 먹게 될 것이다.|[[윤치호]]}} {{인용문|신사적 기호, 비열한 서북(평안도, [[함경도]]). [[지역감정]] 하나만 봐도 조선은 독립할 자격이 없다.|[[윤치호]]}} {{인용문|[[안창호]] 曰 "[[일본인]]들을 최근의 적이지만 기호파는 500년 동안의 적이기에 먼저 기호파를 박멸하고 독립해야 한다.|[[윤치호]]의 일기}}<ref>다만 이건 주작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쨌든 그만큼 지역감정이 심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지만.</ref> 그 지역 감정은 [[일제강점기]] 때도 이어졌고 결국 [[한국전쟁|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조선 왕조]]가 망했는데도 불구하고 남쪽에서는 여전히 [[소중화사상]]에 빠진 [[유교탈레반]] 씹[[선비]]들이 [[만동묘]]를 만들고 [[정신승리|정신 딸딸이]]나 칠 때 [[북한]]쪽은 차별을 심하게 겪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때 자강운동이 발달했고 근대화에 적극적인 편이었다. 실제로 [[함경도]] 다음으로 잘 사는 곳이 이곳이었다. 평균 신장도 [[함경도]]가 [[동북 아시아]]에서 제일 컸고 그 다음이 [[평안북도]]였는데 믿기 힘들겠지만 이때 평안도를 비롯한 북부 지방의 별명이 동양의 [[덴마크]]였다. 물론 그렇다고 이걸 가지고 [[식민지 수혜론]] 같은 개소리에 빠지지 말자. 기독교도들에게 미친 듯이 빨리던 곳이었다. 주로 [[평양]], [[개천]], [[안주]], [[선천]], [[신의주]] 등 도시 지역에서 돈 좀 있는 개화파들만 믿어서 1949년 북괴의 종교인 인구 조사 기준으로 20만도 채 안 되기는 했지만... 그 조사에 따르면 실제 평안디언들이 가장 많이 믿은 종교는 [[천도교]](150만), [[불교]](35만)이었다. 기독교는 20만, 천주교는 12만 5천에 불과했다. 하지만 [[빨갱이]]들이 원래부터 기독교를 극도로 혐오했고<ref>[[소련|쏘오련]]부터 공산화 직후 [[러시아 정교]]를 무자비하게 탄압했을 정도로 빨갱이들의 혐기독교 정서는 무시무시했다.</ref> 평안디언의 반인반신급이었던 애국보수 [[조만식]]이 혹부리우스랑 반목을 텄기 때문에 개독, 천주교 인사들은 북괴 치하에서 가혹한 탄압을 받고 [[1.4 후퇴]] 때 대다수가 월남했다. 하지만 천도교도들도 빨갱이가 좆 같은 건 마찬가지라서 1.4 후퇴 이후에도 북한에 남은 기독교도들과 함께 [[치안대]]로 활동하면서 혹부리우스의 암살을 노리기까지 하는 등 공산군과 치열하게 싸우다가 [[8월 종파사건]] 때 모두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 끔찍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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