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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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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 === 독립운동사에서 개신교신자가 많다. [[유일한]], [[안창호]][http://www.kaedc.org/library_15.htm], [[여운형]][http://www.christiantoday.co.kr/news/266077], [http://lectio.tistory.com/1059|남궁억], 남강 [[이승훈]], [[장준하]], [[양기탁]], [[이회영]]-[[이시영]] 형제, 이갑, [[조만식]], 전덕기 목사, 유동열, 이동휘, 이동녕, [http://mpva.tistory.com/3916|문용기], 강우규 전도사, [[이재명]], 김상옥, 김마리아, [[유관순]], 김규식, 반민특위의 창설자 김상덕, 구연영(의병) 등 독립운동가들은 개신교인이다. 이 분들이 인터넷에서 무가치한 글이나 쓰며 지내는 디시인들이 자기 종교와 하나님을 비난하는 걸 보면 뭐라고 생각할까? 일제 강점기에 개신교는 구한말 신문물과 새로운 사상의 유입을 가져왔고 이는 민족의식을 가진 지도자들을 대거 배출하면서 반일의 집결지가 되었다. 1911년 105인 사건의 경우 개신교인이 92명이었고, 사실상 일본은 개신교단을 탄압 대상으로 삼았다. 3.1운동 때도 가장 참여율이 높았다.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에서 16인이 개신교측 인사였고, 이 당시 개신교의 교세는 전체 인구의 1.1~1.3%에 불과했다. 이 중에서 운동 당시 모인 것은 29명, 고문으로 순국 1명, 대부분 석방 뒤 망명하고 일부는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이 중에 국회의원도 났다. (안 모인 4명은 도망친 게 아니다... 제발 풀발기해서 뭣도 모르고 욕하지 말자. 다른 지역에서 시위를 지도하고 있었을 뿐이다.) 일제 강점기에 개신교는 구한말 신문물과 새로운 사상의 유입을 가져왔고 이는 민족의식을 가진 지도자들을 대거 배출하면서 반일의 집결지가 되었다. 3.1운동 이후 6개월 동안 체포된 19,525명 중 기독교인이 17.6%이었고, 당시 한국의 인구가 2,000만 명으로 기독교인의 수가 그 1%인 20만 명이었다는 점에서 일반 국민보다 18배 정도 많이 체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전체 운동의 20% 이상의 역량을 기독교에서 발휘할 정도로, 1919년 장로교 총회의 보고서에 의하면 체포된 자가 3,804명인데 그중에 목사와 장로의 수가 134명, 기타 기독교 관련 지도자로 수감된 자의 수가 202명, 사살된 자가 41명, 그날 현재 수감 중인 자가 1,642명, 매 맞고 죽은 자가 6명, 불타버린 교회수가 12개소이고 참살된 자가 함북노회만 26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국 개신교의 일제강점기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문제다. 그러나 당시 이 문제에 가장 거세게 항의한 종교 역시 개신교였으며, 신사참배에 거부하여 2천 명의 신도들이 체포되고 200여 개의 교회가 강제로 폐쇄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50여 명의 신자가 순교했다. ==== 개신교의 신사참배 ==== 이 당시 신사참배를 거부 많은 사람들이 투옥되어 고문을 받고 순교하거나 불구자가 되었다. 결국 1936년 5월 18일에 가톨릭이 먼저 꺾였는데, 교황청은 일본의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신사참배에 참여해도 된다는 훈령을 내렸고, 일본 주재 교황 사절 마렐라 대주교가 한국 천주교회에 <국체명징에 관한 감상>이라는 통첩을 내리고 신사참배를 직접 권고하였다. 이후 1938년 2월부터 총독부 경무국에서 기독교지도대책을 마련하고 친일화를 독려함에 따라 9월 10일에 조선예수교장로회 교단 차원에서 개신교 역시 신사참배를 공식적으로 결의했다. 이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 홍택기는 국가신토의 신토 비종교론에 근거해 '신사 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애국적 국가의식이므로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하신 그리스도교 신앙에 전혀 어긋날 것이 없다.'는 해괴한 논리를 내세워 교계 차원으로 신사참배 의결을 강제로 밀어붙였다.[http://www.naewa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7855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89047&code=23111111&cp=du #] 실제로 한국의 개신교 교파 기준으로 신사참배에 동참하지 않은 교단은 손으로 꼽아도 될 정도이다.<ref>아예 강제해산당한 침례회, 장로회에서는 당시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감옥에 갔다가 나온 사람들이 모인 예장고신이나, 아예 일제강점기 이후에 들어온 루터교회 등이 있다. 예장고신은 광복 이후 신사참배를 회개하라고 주장했다고 오히려 쫓겨났다. </ref> 목숨을 걸고 저항했던 교단들은 진짜로 교단 자체가 사라진 경우가 많은데, 전체 기독교 비율로 보면 이들은 결국 소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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