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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흥해읍|흥해]]에서 살았는데 [[북괴군]]이 왔다가 후퇴하면서 여러 사람 [[납북]]시키거나 모가지 따버리는 거 알지? 이때 자기 아빠가 북괴군에게 납북당했는데 지금의 [[휴전선]] 근처까지 끌려갔다가 운 좋게 탈출에 성공해서 겨우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리얼로 좆될까봐 몰래 산 타고 물 타면서 돌아왔고 북괴에게 납치당했기 때문에 지금도 동네 사람들에게 공산당으로 놀림을 받는다고 한다. 5.우리 할아버지는 원래 파주 파평면에 살고 계셨는데 공산군이 남침 할 때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가시다가 [[한강 인도교 폭파|서울 한강 인도교가 폭파된 걸 증조할아버지께서 보시고]] 서빙고에서(몇 시에 가셨다고 말했는데 까먹음) 한강을 헤엄쳐서 가시다가 못 돌아오시고 증조할머니는 1년 후 병으로 돌아가셨고 큰증조할아버지 두 분 중 한 분은 공산당 하다가 돌아가시고 한 분은 피난가다가 돌아가셔서 완전히 가문이 박살 나버렸다고 하셨다. 휴전 후 할아버지는 서울에 형제 분들과 정착하시고 판매원 일로 시작해서 자수성가하셨는데 초등학교 졸업장이 없는 거랑 증조할아버지 시신을 회수하지 못한 게 아직도 한이라고 나에게 말씀해주신다. 6.우리 할아버지는 충북 제천에서 사셨는데 중공군에게 잡혀서 북한 수용소로 끌려가려고 하는데 아픈 놈은 나오라고 했다고 함. 그런데 제일 처음 나온 사람한테 총으로 쏴서 죽였다고 함. 그 다음에 똑같은 질문을 한 뒤에 할아버지가 나왔는데 진짜 아픈 줄로 알고 북으로 보내려고 하는 중에 탈출하셨다고 함. 근데 우리 할아버지 참전 증명서 들고 집으로 돌아오셨는데 보름 동안 굶어서 쓰러졌는데 가족들이 영어로 쓰여있어서 뭔 내용인지 모르고 버렸다고 함. 그래서 우리 할아버지 군대 한 번 더 가심. 광광 우럭따ㅠㅠ 7.우리 외할아버지가 당시 지금의 여의도 대지주셨는데 전쟁이 터지니 돈을 못 가져가서 빈 김치독에 돈을 묻으셨는데 나중에 돌아와서 보니깐 김치만 홀랑 파먹고 돈은 그대로였다더라. 그 덕분에 벽돌 공장하셨는데 납품업자 씹새끼들이 민물 모래 말고 바다 모래 팔아서 공장망함 시발. 땅만 안 팔았어도 난 ㅂㄷㅂㄷ....← ㅋㅋ 사기 당해서 공장 망한 건 우리 할아버지랑 똑같네 8.우리 할머니가 말씀하셨는데, 이태원쪽(용산 미군기지근처)에 사셔서 남산 경삿길이 힘들어서 미군들 트럭같은데에 동네 어린이들이 태워달라고 하면 태워주기도 했다고 한다. 동네 어른들이 위험하다고 타지 말라고도 하셨다. 전쟁 중에는 북한군에 관한 이야기는 없으시고 친척 어른이 징병될까봐 산에 숨어 있는 얘기랑, 민간인이 모여있는 마을에 미군부대가 오면 동맹군일지라도 동네에 여자는 전부 숨었다고 했다. 전시 강간이 군법으로 엄히 다스려서 자주 행해지는 않지만 혹여 무슨 일이 생길까봐 피했지만 중공군이 오면 걔넨 잠시 쉬다가 갔다고 했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상부에서 군율 잘 지키라고 해서 그런가 했다고... ← 사실 백선엽이 칭찬한 중공군도 의외로 군율을 잡지 않으면 막장이었다고 한다. 근데 사형을 하도 자주해서 여간한 짓거리들은 잘 하지 않았다고. 9.창녕에 사시던 외할머니 밀양으로 피난 가셨는데 전쟁통에 식수가 어디 있겠노? 낙동강 핏물 마시고 밥해먹고 하셨다더라 10.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부산에서 사셨는데 전쟁 터지니까 부산 끄트머리 쪽으로 가서 존버하셨다더라 11.울 할배 헬중공군이 판 지하 만리장성 위에서 백병전 벌였다는데, 리알 지옥이었다고 하시더라. 화력지원 받으며 싸울 때는 뒤에서 포탄이 날아와서 다 죽여주니까 참호나 엄폐물에 숨어서 총 쏘면서 싸워서 전쟁 뭐 생각보다 별 거 아니네 ㅋ 이따구로 생각하고 있다가 백병전하니까 중공군 새끼들이 사방에서 막 튀어나오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개나 소나 어리바리 쩔었다고 했다. 아군도 잘못하면 아군 총에 맞고 뒤질 수도 있어서 위험했다고... 후임은 말할 것도 없고 선임들도 심심하면 옆에서 뚝배기 깨져서 피 철철 흘리며 죽고 좀 뛰다가 뒤지기 싫어서 기면서 막 총 쏘다 누가 죽인건지는 모르겠지만 할배 앞에 있던 중공군 2명 뒤지고 탄 떨어졌는데, 좆같게도 옆이 다 뒤지게 싸우고 있어서 신경 안 쓰고 있을 때 중공군 한 명과 1대1 다이를 까게 되었다고 하심. 순간적으로 서로 눈치보다 중공군 새끼가 먼저 착검된 총 꼬나세우며 덤볐대. 할배는 개머리판으로 존나게 때렸다고 하시더라. 서로 죽기살기로 존나게 싸워서 장갑이랑 방탄판마저 누더기가 될 정도였대. 처음엔 그래도 둘다 군인답게 싸웠는데 나중엔 너무 고통스러워서 서로 눈물 콧물 다 흘렸다고 하시네. 그러다 할배 왼손에 칼빵 맞아서 뒤질 뻔했는데 오른손으로 죽을 힘을 다해 어퍼컷처럼 때렸더니 싸우던 중공군놈이 그거 맞고 죽어버림. 할배도 온몸과 손이 너무 아파서 땅바닥 기면서 진짜 자기가 죽어가고 있는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 그러다가 전투가 끝나고 걍 복귀하고 후방에 가서 치료 받으니까 왼손에 심심하면 통증 생기는 장애 생기시고 몸에 흉터만 좀 남고 살아남으셨대. 솔까 제대로 죽인 건 그 한 놈뿐이었는데, 나머지 2명 죽였다고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3명 죽인 걸로 대대 내에서 인정받고 영웅 취급 받았다고 하시더라. 근데 웃프게도 다시 전쟁 나면 절대 참전하지 않겠다고 하심. 걍 자살하겠다고 하셨다... 12.한창 전쟁 중이었는데 울 할머니 집에 빨치산들이 쳐들어옴. 근데 그때가 할머니가 태어난 지 겨우 3일째된 날이라서 증조할머니 기절하고 난리났다고 하셨다. 13.전쟁이 터지자 할머니는 짐을 어느 정도 싸시고 진할머니와 항구로 갔다. 사족 붙이면 진외할아버지는 린민재판에 끌려가서 돌아가셨다. 어쨌든 할머니는 진외할머니와 배를 탔다. 근데 하필 배의 밑바닥 부분이다. 그때에 피난민이 너무 많아서 숨을 쉬어야 하니 코를 배 틈새에 박아야 했다. 그렇게 도착했다. 거기가 어딘지 모르지만 할머니는 인천에 도착한 거 같다고 했다. 14.외할머니가 들려주셨는데 경남 함안이었는데 매일같이 미군 병사들 시체가 물 반 시체 반으로 떠내려왔다고 하셨다. 15.울 외할머니가 당시 4살이셨는데 외증조할아버지랑 외증조할머니랑 지금 살고 있는 머전에서 존버 타셨음. 근데 문제는 [[B-29]]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전투기에서 [[커티스 르메이#한국인 요리|폭탄이 존나게 떨어졌는데]] 이 폭발음 때문에 외증조할아버지 귀가 안 들리게 되심 ㅠㅠ 광광 우럭따 16.[[국제시장]] 같은 영화에서 기브미 쪼꼬렛 하는 거는 팩트다. ㄹㅇ 거짓말 안 보태고 지프나 M3 하프나 트럭 지나가면 난리가 났고 맞다이도 뜸. 17.교수가 풀어준 자기 부모님 이야기인데 부모님은 함흥 출신이고 아버지는 의사, 어머니는 간호사였단다. 흥남철수때 의사 면허, 청진기만 챙겨서 탈출했고 거제도의 포로 수용소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했는데 북괴군 포로들이 '니는 북한출신인데 왜 국군 소속으로 일하냐?' 라며 변절자, 반동분자라며 온갖 협박에 해댔고 이에 시달린 아버지는 정전 직후 고향에 그나마 가깝고 거제도와 멀리 떨어져 보복 위험이 적은 강원도에 정착했다고한다. 18.울 외할아버지가 북괴군한테 잡혀서 노무자로 징집당했는데 북괴군 장교가 지리산 쯤에서 모조리 풀어줬다함. 자기들이 전쟁에서 질 것 같다고 풀어줬다던데 꽤 신사적인 사람이었다함. 19.우리 증조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 순사였다가 광복 이후, 전쟁 났을때도 인민군 헌병 장교로 있었다는데 이런 경우도 가능하냐? 아직도 궁금함.. 참고로 강원도 분이셨음 20.우리 할아버지는 징집되서 제주도에서 훈련받는 도중에 정전협정이 체결되서 그대로 전역하셨다고한다. 근데 나중에 군사정부 들어서고 재조사 들어가는 바람에 6주 훈련 다시 받고 오심 21.우리 할아버지는 49년에 입대하셔서 6.25 개전초기부터 참전하셨는데 당시에 너무나도 격렬하게 싸우는 바람에 싸우다가 나중에 후퇴하는데 당시 할아버지가 속해있던 소대? 중대? 그 정도의 병력이 나중에 후퇴하고보니 분대급도 안남을 정도로 전멸한 뒤라고 했음 이후 끊임없이 전투에 참여하시다가 휴전되고 전역을 해야하는데 부대에서 전역처리를 안해주니까 빡치셔서 그냥 직접 나오셨다고 했음 22.내 아빠한테 들은 얘기인데 그 때 할머니 집에 북한군 2명이 왔다고 했다고 함. 그 때 북한군이 했던 말이 "밥 안주면 죽여버릴거야!"가 아니라 "제발 밥 좀 주세요 ㅠㅠ.. 며칠 째 밥을 못 먹었어요 ㅠㅠ.." 이랬다더라. 그 때 할머니는 북한군이 나쁘다는 걸 아셨지만 정말 군인들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고 해서 몰래 밥 준비해서 북한군한테 차려줬다고 함. 23.우리 외할머니 집은 경상북도의 봉화군이였는데 인민군이 집 바로 앞까지 찾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강 하나를 끼고 있고 집에 아무도 없는 척해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24.우리 조부모님이 사는 마을을 인민군이 점령했었을때 졸라 무서웠다함 당시에는 지주들을 무조건 패죽였다고해서 인민군이랑 빨간완장찬 새끼들이 길거리를 활보해도 눈도 못 마주쳤다고 함 다행이 당시 마을에 살던 할아버지 한분이 처세술이 좋아서 국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역전하기전까지 인민군들이 마을사람들을 건들지 않았다고 함 놀라운 점은 그 처세술 좋은 할아버지가 바로 그 지주셨다 함 25.우리 외할아버지는 전쟁 당시 징집 연령을 넘기신 상태라 징집을 당하진 않으셨지만 당시에 할아버지 집에 북괴군이 쳐들어와서 할아버지를 의용군으로 끌고 가려 하셨는데 할아버지가 당시에 끌려가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 같으셔서 북괴군들이 총 들고 위협하는 그 때에 냅다 뒷문으로 도망치셨음 당연히 북괴군이 죽이려고 총을 갈겼는데 할아버지가 당시에 몸이 재빠르신 분이셔서 허벅지에 총상만 입으신 상태로 간신히 도망치셨음 26.친구의 썰임 친구 할아버지의 형이 당시에 공산주의를 지지하셔서 전쟁 당시 혼자 스스로 북괴로 넘어가셨음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한창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하던 당시 자식분들이 그래도 형님분 얼굴을 보셔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는데 할아버지는 "지가 좋아서 넘어간 걸 가지고 뭐하러 만나냐" 하시면서 극구 거절하셨음 27.할아버지가 7살때 전쟁이 터졌는데 당시 집에서 가까운 산에 놀다가 인민군을 3명을 보고 아저씨 배 안고프냐고 묻고 고프다고 하니까 밥가지러 간다고 친구랑 같이 밥 싸들고 찾아갔는데 신고하러 마을에 간 줄알고 인민군이 이미 튀고 없었다고 하셨다. [[분류:전쟁]][[분류:냉전]]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