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전쟁 발발 === <center>[[파일:Korean war 1950-1953.gif]]</center> 시작하기 전에는 나름대로 평화롭고 훈훈한 분위기였는데<ref>물론 전쟁 전에는 간첩 보내고 1949년부터 국지전도 있었다.</ref>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경 [[김일성|혹부리새끼]]가 인민군을 이끌고 불법 기습 '''남침'''을 한다. 원래 전쟁은 시작 전에 국제 협약인 제네바 협약에 따라서 선전포고를 해야겠지만, 김일성이 했겠냐? 그래서 오늘날까지 북한의 대외적 이미지는 씹창이다. 주한미군 철수하고 애치슨 라인에서 한반도가 제외된 걸 보고 좆나 좋은 타이밍이라고 여긴 김일성이 당시 스탈린과 마오쩌둥에게 지원을 부탁했다. 스탈린은 세계대전이 다시 일어날 스멜을 느껴서 마오쩌둥이 전쟁 좋다고 말하면 자기도 지원하겠다는 정도의 입장이었다. 중국 대륙이 공산화한 지 8개월 가량 지난 상태라서 기분 째진 상태였던 마오쩌둥은 사회주의 진영의 확장을 기대하면서 한편으로는 미국과 국경이 닿으면 안 된다는 계산에 미군 개입하면 우리도 전쟁에 끼어들겠다고 흔쾌히 말한다. 그렇게 북한은 우선적으로 소련에게서 지원 받고 개전했는데... 마오쩌둥에게 언제 전쟁 시작한다고 말도 안 하고 기습적으로 남침을 감행하는 바람에 이때까지 마오쩌둥은 김일성에게 삐져있었다. 그래서 평양이 털리는 순간까지 중공은 김일성 이 새끼 한 번 좆망해보라는 심정으로 그냥 지켜보다시피 했다. 개병신새끼가 지가 쳐들어가라고 김일성한테 바람 집어넣어놓고 뭐라노. 전쟁 직전 박헌영이 엄청난 말을 한다. '''"조선인민군이 남쪽으로 가면 20만 명의 남로당원이 우리 동지들을 반길 것이오!"'''라고 말했지만 막상 개전하니까 한 놈도 안 반겨줌 ㅋ 코딱지도 안 보임 ㅋ 덕분에 휴전 후 박헌영을 필두로 북한에 있었던 남로당원 2000여 명이 책임 덤터기를 쓰고 골로 간다. 물론 박헌영이 믿었던 건 바로 [[대구광역시|박상희가 적화도시로 만들어 놓은 그 곳]]이었지만 박상희는 이미 이승만이 빨갱이 때려잡으라고 내려보낸 반공경찰대에게 1946년에 잡혀서 총살당했다. 그 박상희는 [[박정희|어떤 여색을 밝히는 꼴통 새끼]]의 형이다. 전쟁이 터지자 난리가 났다. 어찌나 급박한 상황이었는지 장정이라면 아무나 막 징병하는 통에 병사들이 [[상투]] 튼 놈, 머리가 허리까지 긴 놈, [[댕기]] 튼 놈, 수염이 [[관우]] 같은 놈 등 징발한 장정들 외모가 민주주의의 진수를 보여줬다. 당시에는 염색약이 대중화되어 있지 않아서... 여튼 머리 깎을 겨를도 없이 징발하자마자 마구 쑤셔 넣어대는 통에 병력들 외형이 아주 가관이었다. 게다가 이때 [[채병덕]]이 너무 급하니까 [[육군사관학교]]가 태릉에 있다는 걸 알고 육사 생도들을 의정부 전선에 바로 투입했다. 그리고 의정부가 함락되면서 육사 생도들이 계속 뒤져나갔고 거기서 겨우 살아남은 육사 생도들에게는 상으로 바로 [[소위]]로 임관시켜준 뒤 소대장 자리에 배치했다. [[로드 넘버 원]]의 신태호가 이런 인원이다. 여튼 이 일을 계기로 대한민국 국군은 종전 후 [[제주도]]에 사관학교 시설만 만들어 놓은 뒤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생도들을 제주도의 사관학교 시설에 몰아넣고 딱 소대장만 할 수 있게 훈련시킨 뒤 바로 전선에 배치하게 했다. 개전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한강 인도교([[한강대교]])가 폭발했다. '[[한강철교]]'라고 얘기하면 곤란하다. 철교를 폭파한 건 미국 공군이 한강 방어선 전투를 준비하기 위한 전략이었으며 인도교는 [[한강대교|한강 철교 옆에 있는 다른 다리]]다. 한강 방어선 전투에서는 졌지만 춘천-홍천 전투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동부 전선이 안정되었고 시간을 번 덕분에 UN군이 한반도에 도착, 정부 요인들은 대전에서 모두 모이게 된다. 서울 사람들은 평양으로 납북 당해서 사상 재교육을 받거나 인민군복을 강제로 입게 된다. 조소앙, 김규식, 안재홍 등 개국 인사들과 감방에서 썩고 있었던 반민특위 인사들은 이때 납북된다. 이 과정이 존나 괘씸한데 한강대교를 폭파시킨 건 [[신성모]]가 시켜놓고 정작 그래서 죽은 800여 명의 피난민들에 대한 책임은 시키는 대로 한 공병감 [[최창식]] 대령에게 뒤집어씌워서 서울이 수복된 이후인 1950년 9월 21일에 서울 한복판에서 최창식 대령을 총살시키고 마치 도마뱀이 꼬리 자르고 튀듯이 죄를 최창식에게 몰빵시켜놓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반인반신]]이 정권을 잡은 이후로 반인반신 덕분에 최창식은 사면 복권되었다. 명령에 의해서 움직였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괴 막으려고 7월에 다소 뒤늦게 지원 부대를 파견했다. 대좆본제국 황군의 정신을 계승한 머한민국 육군의 작전 회의를 옆에서 지켜본 미군에게 전작권을 이때 넘겨주게 된다. 그게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 엄청난 국군 작전 회의를 지켜봤을 당시의 미군 장성들의 반응은 상상에 맡긴다. 막말로 인민군 장교들 중에는 소련군 복무하면서 좆본군에게 죽창 몇 번 찔러본 찌른 군관 출신이나 무장 투쟁 독립 운동가가 몇 명이라도 섞여있었는데, 좆본군 이끌면서 태평양과 만주 벌판에서 미군/소련군에게 마분지처럼 찢겨나가던 친일 군관 장교 출신들이 했던 작전 회의나 전투 지휘 수준은... 더 얘기하면 종북 취급 당할 거 같으니까 여기까지만 얘기한다. 근데 어쩌라고? 존나 일방적으로 털린 건 사실이잖아? 전작권도 결국에는 미국에게 넘겨줬잖아? 근데 인민군 3개 사단을 막으려고 보낸 미군 부대라는 게 고작 수색 대대 1개다. 사실 당시 미국이 북한의 3개의 기계화 보병 사단을 상대로 고작 1개의 수색 대대를 보낸 건 이유가 있었다. {{인용문2|우리는 세계 최강 미군이야. 까불지 말고 얼렁 제자리로 돌아가. 쓸데없는 피는 흘리기 싫으니까 전쟁 멈춰라.}} 이러려고 일부러 대대 규모 병력을 하나만 보낸 것이다. 그러다 쳐발린 찰스 스미스 중령니뮤. ㅠㅠ 당연히 발렸다. 이후 1개 사단을 더 보냈으나 또 쳐발렸다. 사단장 윌리엄 딘 장군이 잡혔다. 이 무슨 망신이냐? 무슨 [[2002년 한일월드컵]]도 아니고... 그 당시 미 24사단이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까지 몰렸냐 하면 '''투스타 사단장이 적과 직접 교전을 벌이는 지경'''까지 갔다. 예하부대는 물론 휘하 참모진들까지 개박살이 나야 사단장이 직접 적과 싸우는 광경이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부산 앞까지 밀렸지만 UN군 월튼 워커가 끝까지 개겼고 마산, 다부동, 영천, 포항 등지에서 적 수만 명을 쓰러트리고 바다에서도 백두산함이 공비 싣고 부산으로 우회 침투 하려던 배 저지하면서 부산을 방어해냈다. 백두산함은 진짜 좆만한 배였는데 존나 개쩌는 활약을 해냈다. 2차 세계대전 참가 경력마저 있다! 노익장 클라스 <ref>자금 문제 때문에 포탄이 100발 남짓밖에 없어서 최대한 근접해서 전투했다고 한다. 근데 다 맞춰서 이김 엌ㅋ</ref> 정말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는데 때마침 타흐신 야즈즈가 이끄는 터키군이 와준 덕분에 겨우 살았다. 그리고 다시 전세를 역전하기 위해서 고군분투를 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인천을 공략해서 인민군의 보급로를 끊는 작전이었다. 그 작전이 바로 [[인천상륙작전]]이다. 물론 북한은 이걸 간파하고 있었다. 맥아더 트레이드 마크가 상륙작전이거든. 필리핀 탈환전도 맥아더의 갓-작품이었다. 그래서 당시 도쿄에 있었던 맥아더가 어디에 상륙하라고 할지 일본인들은 내기 걸고 있었다 카더라. 성동격서라고, 맥아더는 일단 한반도 동부 해안에 폭격 한다고 거짓 무전도 보내고 할 짓 못할 짓 다했다. 당연히 인민군은 병력을 동쪽으로 빼게 된다. 처음에는 이 상륙작전을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왜냐면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상당히 심하고 요새화가 되어있던 지역이라서 자칫하면 시간 잘못 맞추고 썰물 때 갯벌에서 병사들 벌집되고 배들이 모조리 수장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인천상륙작전이 9월 15일, 서울 수복은 그로부터 2주가 지난 뒤였다. 솔직히 군인 체력으로 시간 내서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라도 갈 수 있는 멀지 않은 거리였는데 2주나 걸린 이유가, 당시 인천이 고향이었던 인민군 장교 리승엽이 인천 지리를 잘 알고 있었던 덕분에 꽤 선전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간이 좀 들었지만 싹 밀고 서울까지 수복한다. [[김일성|혹부리우스]]는 적화통일을 코앞에 뒀다며 싱글벙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인천과 서울이 뚫리는 바람에 [[하삼도]]에 있는 인민군에게 전달할 보급로가 차단되면서 신나게 털리고 연합군은 북진을 성과적으로 이뤄내면서 혹부리우스는 뒷목을 잡게 된다. 이때 남부에 있던 인민군들은 포로가 되어서 거제도로 보내졌는데 거기에 있었던 17만 명<ref>1951년 6월에 최대로 수용한 숫자다. 그중에서 중공군이 2만 명 정도 있었다고 한다.</ref> 가량의 포로가 둘로 나뉜다. 이 중에서는 소속만 공산군인 반공 성향의 청년층이 꽤 섞여있었는데 공산군 점령지에서 미처 튀지도 못했는데 자기 머리통에 총구가 닿으면서 "동무 죽고 싶네, 인민군복 입을 거네?"라는 질문을 듣고 인민군복 입은 장정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ref>이런 이유로 끌려간 인민군 상당수는 대한민국 땅이었던 38선 이남 출신이었지만, 고향만 북한이었는데 빨갱이들이 끌고 가서 억지로 끌려온 사람들도 있었다.</ref> 그들은 반공 포로, 나머지는 친공 포로로 갈려서 포로 수용소에서는 개판 오분전의 패싸움이 매일 열렸다.<ref>이 반공포로 vs 친공포로 시빌 워는 [[중공군]] 개입 이후 더 심해졌다.</ref> 당시 미쿸군 수용소 감독관은 이때 싸움에 휘말려서 포로의 포로가 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수감자 생활 개선 조건을 들어주는 것으로 포로의 포로는 목숨을 건졌다.) 어쨌든 거제도 상황은 그렇고, 한편 전선이 역전되자 혹부리우스 새끼는 평온한 척 평양에서 {{인용문2|조국의 촌토를 피로써 사수하자|병신 혹부리우스}} 라는 방송을 한 뒤 [[덕천군]]으로 런하고 만다. 지가 일으켜놓곤 내빼는 수준; 거기의 한 터널에 숨어지내며 존버하다가 [[평안북도]] [[창성군]] 동창면의 대유동<ref>이곳은 일제시대때 유명했던 금광촌이었다.</ref>이라는 동네로 런한다. 거기에서 몰래 팽덕회를 만나서 회담을 나눴으며 거기서 짱개군 개입의 약속을 얻은 뒤 짱개군 응디 뒤에 숨게 된다. 그러면서 박헌영한테 니가 말한 남쪽의 빨치산 동지들은 어디에 갔고 왜 인민봉기가 안 일어났느냐라며 질책했다, 그러자 박헌영은 그러는 니는 왜 후방에 예비 병력을 왜 안 둬서 이 전쟁을 말아먹느냐고 일침을 갈기자, 혹부리우스는 빡쳐서 박헌영한테 잉크병을 던지곤 "야, 이 자식아! 만약에 전쟁이 잘못되면 나뿐만 아니라 너도 책임이 있어!"라며 적반하장을 하며 서로 오십보백보 말싸움만 해댔다. 그리고 국군이 평양까지 올라가자 혹부리우스는 [[강계군]]의 지하 벙커로 런하곤 그곳을 임시 수도로 규정한 후 울며불며 뗑깡을 부리며 중국 바짓가랑이 붙잡고 뒤질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와중에... 1950년 10월 19일, 결국 미국과 국경 닿기는 존나 싫었던 마오쩌둥이 송시륜과 팽덕회라는 씹새끼들을 시켜서 개떼를 몰고 '''불법침략'''했다.<ref>참고로 짱깨들은 이 군대를 '중국 인민지원군'이라고 명명하는데 알다시피 그건 중국 공산당이 불법개입 하지 않았다는 뻥카를 치기 위한 개소리다. 그냥 중공군이다</ref> 얘네들도 사실 처음에는 한국 전쟁 참전을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20년대부터 국민당 정부군과 싸우고, 좆본 새끼들과 싸우면서 전쟁했는데 또 전쟁터 나가라고 하는데 싸우고 싶은 새끼는 없다. 게다가 당시 중국은 100년전 [[태평천국운동]]부터 시작해서 [[중일전쟁]]으로 초토화되었지, 이제 공산화 막 하고 공산당 간부들은 남은 평생 꿀 빨면서 살려고 했는데 또 전쟁터 나가라면 파시스트 새끼라도 나가기 싫어할 거다. 실제로 훗날 문혁 때 모텔똥의 충실한 개노릇을 했던 [[임표]]나 나름대로 제정신이었던 [[주은래]] 같은 거물급 빨갱이들도 전쟁개입 반대, 신중론을 외쳤다. 하지만 중공에서 모텔똥의 권위는 [[정풍운동]] + [[국공내전]] 더블콤보 때문에 ㄹㅇ 반인반신에 가까웠고 [[팽덕회]]가 야야 좆반도 지형빨 보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다. + 항미원조 드립치면서 이건 중국혁명의 연장이다 드립을 쳤기 때문에 결국 모텔똥의 뜻대로 가게 되었다. 어떻게든 빼려고 했는데 어쩌겠나, 다른 장정들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벌써 발 뺐는데 얘네들은 변명 늘어놓을 타이밍을 놓쳐서 혹부리가 평양 털렸을 때 압록강으로 결국 오게 되었다. 게다가 마오쩌둥 아들 마오안잉이 젊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기어이 북조선 돕겠다고 대륙 곳곳에서 떠들고 다닌 터여서 중공군 장병들은 핑계 대기 더 애매해졌다. 처음에 이들은 죽어도 전쟁터에서 죽기는 싫었으니까 압록강 둔치에서 계란볶음밥 볶으면서 뺑끼 치고 있었는데 그걸 본 미군 폭격기가 네이팜탄을 떨구면서 마오안잉이 이때 뼈까지 재가 되어 그대로 사라졌다. 폭격에서 살아남은 중공군들에게 선택지라고 남은 건 공산당에게 총살 당하기 or 전쟁터에서 싸워서 공로를 하나라도 건져서 목숨 건지는 것뿐이었는데 팽덕회와 송시륜이 이끌던 중공군은 후자를 선택했다. 그때부터 중공군은 존나 열심히 싸웠다. [[맥아더]]가 이때 중국군을 너무 만만하게 본 상태에서 [[운산 - 영변전투]] 이래 여러 병크를 터뜨리면서 [[청천강]] 전선을 말아먹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서울까지 함락된다.([[1.4 후퇴]]) 흥남 부두에서 배 타고 남쪽으로 피난 간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ref>영화『국제시장』초반에서 이 얘기를 다룬다.</ref> 이때 이 피난선에 있던 사람들이 도착한 곳이 거제도다. 그 피난민 중에서 어느 부부가 거제도에 정착하고... 여기서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이 태어나게 된다. 흥남에서 피난민들이 배 타고 튈 시간을 번 전투가 [[장진호 전투]]였기 때문에 이 [[문재인|머통령]]이 재임하면서 천조국에 처음으로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장진 전투 참전 용사 위령비 방문하기였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립서비스도 남겼다. [[문재인|"당싄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슙니다."]] 송시륜과 팽덕회 휘하 개떼새끼들이 방해해준 덕분에 1년, 아니 6개월이면 이겼을 전쟁을 지금까지 질질 끌게 만들어줬다. 씨발새끼들 여담으로 중공군은 무기가 워낙 병신이라서 전략, 전술적으로 매우 유리했던 전투들에서도 많이 패했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무장한 군대와 만났다면 패잔병이 될 수도 있었던 놈들이 영웅이 됨 ㅋㅋㅋ 채명신 장군에 의하면 삼인일총을 쓰거나 어린아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구체적 사례로, 제8 아일랜드 C 전차 중대가 있는데, 상황은 걍 몰살각이었는데 중공군 무장이 워낙 개병신이라 영웅이 되었다. 니미, 불리한 지형에서 포위 당하고 중공군 보병이 전차 위로 개떼처럼 올라타서 무겁게 하기를 시전하거나 아예 전차 위에서 기관총까지 갈기고 있는 개판국(이 새끼들 쓸만한 무기가 제대로 없어서 이런 위험한 짓거리를 함. 대미지는 금속 피로도 덕분에 1씩 박히나? 니들은 전차 위에 타서 기관총 갈기지 마라. 뒤질 수도 있다. 그리고 현실은 그깟 보병의 기관총 따위에 뚫리기는커녕 땅크 기관총으로 서로를 쏴서 위에 탄 새끼들 몰살했다.)이었으나 중공군의 박격포와 대전차 수류탄(?) 따위론 영국군 전차가 거의 뒤지질 않아서 망함 ㅋ ㅋ ㅋ. 하나는 막혀있는 길로 차체 막고 대가리쇼하면서 밀고 갔는데 그 어떤 짱깨도 막지 못했다. 그래서 센츄리온은 짱깨 군인 몇 마리를 파.괘.햇.따 심지어 저 전투에서 어떤 센츄리온은 위에 짱깨 5마리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집에다가 쳐박아서 짱깨를 병신만들어주기도 했닼 ㅋㅋㅋㅋㅋㅋ 뭐, 그래도 워낙 애미 뒤진 지형에서 매복에 걸렸고 중공군한테도 쓸만한 무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라서 졸라 위기긴 했다. 워커가 갓이다. 워커 차냥해 마지막에는 중공군이 길이 4000km의 지하 만리장성을 파서 버텼다.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805241023001 이 지하장성이 적 포병과 공군의 화력을 막아서 미군도 결국 공세를 포기할 정도로 극혐 방어력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근데 사실 이건 중공 정부에서 [[린뱌오]]가 대만 원정을 위해 [[복건성]] 일대에 때려박던 제4야전군을 짬시키기 위한 빅픽처였다. 제4야전군은 중공 내부에서도 가장 반공 기질이 강한 녀석들이었다. 이놈들을 싸워서 이기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놈들 자체를 짬시켜버리기 위해서 중공 정부는 이 제4야전군 병력들에게 장진호가 뭐하는 곳인지 일절 설명하지 않고 보극도 전혀 개선하지 않은 채로 그냥 무턱대고 투입시킨 것이다. 그래서 제4야전군은 열대화를 신고 [[장진호 전투|희대의 한랭지에서 싸우다가]] 동상 괴사로 발목을 절단하는 게 다반사일 정도였다. 존나 놀라운 사실이지만 필리핀 군대도 미군과 UN의 지원을 받아서 여기에서 활약했다. 참고로 김일성 병신은 전쟁 도중에 지 병력 아끼겠다고 짱개군 남기고 인민군만 퇴각시키는 야비한 짓거리하다가 짱개들한테 단단히 찍히게됐고 심지어 팽덕회한테 뺨싸다구 쳐맞게 됐다라는 썰까지 나오게 됐다. 물론 짱개새끼들도 매한 같은 쓰레기들이기 때문에 동정해줄 필욘없다 ^^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