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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세계 === ==== 북괴 ==== 토지개혁을 시행하고 반공주의자 및 기독교도들, 자본주의자들과 지주들을 학살하고 탄압한 북한 정부는 자만에 빠져 적화통일 계획을 세운다. 이를 위해 김일성은 권력을 미리 축적해놓았으며 남침을 위해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남침 허가 요청을 하지만 71번씩이나 빠꾸를 먹었다. 소련은 전쟁 피해 복구가 최우선이었고 미국과 싸워서 괜히 핵 맞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 회복에는 관심 없고 국제정치에 대해서는 좆도 모르던 [[마오쩌둥]]은 북한의 개소리를 받아들이고 김일성을 돕기로 한다. 이후 마오쩌둥이 스탈린을 설득해 북한의 남침을 용인하도록 꼬드겼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한을 전면 침공하며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한 후 대전, 광주 등을 점령해 대한민국 국군을 낙동강 일대까지 밀어붙였다. 북한이 점령한 남한 지역에서는 [[인민재판]]과 자본가 학살 등이 자행되었다. 그 도가 지나쳐 단 1년 만에 북한의 잔혹함을 모든 한국 국민들에게 각인시키게 되었다. [[다부동 전투]]에서의 북한군의 패배 이후 UN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실행하여 북괴를 역관광시켰고 북한은 [[평양]]까지 남한과 UN에게 먹히고 압록강 일대까지 몰렸다. 이런 북괴를 부활시켜준 희대의 짱개새끼가 바로 마오쩌둥인데, 중국은 북한을 도운 후 영향력을 행사한다 한들 지정학적으로 한국, 일본에 막히기 때문에 자국에 국익도 되지 않고 되려 전후 회복에나 집중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국제질서를 잘 알지도 못한 채 '공산주의 국가니까' 북한을 도와주러 군대를 많이 파견하게 되었고, 그 덕을 본 북한군은 다시 밀고 내려와 1951년 1월 4일 서울을 재점령했다. 그리고 북한군은 또 한번 학살을 벌였다. 이후 국군이 서울을 탈환한 후 38선 부근에서 교전이 지속되고 휴전 협상을 진행하다가 1953년 스탈린이 뒈지자 한국전쟁은 정전(Ceasefire) 상태에 들어가 현재까지 전쟁이 진행 중이다. 이후 북한에서는 종파 간의 갈등이 생겼다. 김일성과 박헌영 간의 사이도 나빠지고 있었다. 결국 박헌영은 패전 이후 숙청당했다. 그 이후에도 노동당 내 파벌 갈등이 있었는데, 소련파와 연안파는 경공업 우선주의를 주장했고 갑산파와 김일성파는 중공업 우선주의를 주장했다. 사실 김일성은 소련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소련은 김일성이 인지도가 높아 북한 지도자로 앉혔을 뿐이었다. 결국 김일성 반대파들이 선빵을 날렸으나 [[최용건]]이 미리 발견하고 김일성에게 찔렀다. 이후 반대파들이 더 큰 목소리로 김일성을 비판하다가 결국 친김일성파들이 역습해 분위기가 살벌해지면서 소련파와 연안파는 소련, 중국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8월 종파 사건]]을 접한 소련과 중국은 북한의 행보에 반발하며 당사자들을 복권시킬 것을 요구했다. 김일성은 소련과 중국을 이길 힘이 없었고 잠시 굴복하지만 1958년 소련과 중국 간 갈등이 빚어지면서 은근슬쩍 시간을 끌며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고 이 과정에서 다른 종파들을 싸그리 숙청하면서 김일성의 권력이 공고해졌다. 그리고 소련과 중국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된 [[김일성]]은 초기 [[주체사상]]에 해당하는 소련과 중국에 휘둘리지 말자는 이념을 갖게 되고 이를 독재에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경제적으로는 1954년 3개년 계획으로 전후 복구를 어느 정도 이루고 김일성이 소련과 동유럽에 찾아가 물자 지원 요청을 했으나 빠꾸를 먹어 인민들의 피를 빨아먹기로 결정한다. 이렇게 [[천리마 운동]]이 개시되었고 8월 종파사건 이후 북한 전체 근로자의 노력 경쟁 운동으로 본격화시키고 전 범위에 걸쳐 확산시켰다. 하지만 성과는 크지 않았다. 애초에 공산주의 체제라는 한계도 존재했다. ==== 짱깨 ==== 중화민국을 몰아내고 중국 대륙을 장악한 [[중국공산당]]과 [[마오쩌둥]]은 중국 통일을 완수하기 위해 애꿎은 [[티베트]]를 침공해 강점하면서 오늘날의 중국 영토를 확정했다. 이후 윈난성의 국민당 잔당들과 하이난 섬까지 점령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 중국은 북한 김일성의 남침 허가 요구를 받아들였으며 자국에서 전후 복구 사업을 제대로 하기는커녕 공산주의 국가라는 이유만으로 괜히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휴전 협정 체결 이후 침략국으로 규정되어 외교적으로 고립당했다. 이후 중국은 기존의 우익 세력과 자본가 세력에 대한 대대적 숙청과 학살을 자행했다. 우파가 아닌 사람을 우파로 몰아 인민재판하여 죽이는 [[반우파 투쟁]]을 자행하기도 했다. 대만의 진먼을 쳐들어가 포격전을 벌이기도 했으나 대만의 강력한 저항으로 대만 정복은 실패했다. 소련에서 [[니키타 흐루쇼프]]가 집권한 이후 스탈린 격하운동을 벌이자 불안함을 느낀 쩌둥이는 소련을 자본주의 세력과 결탁한 부패한 국가라고 주장하며 소련과 갈등을 빚었다. 결국 1959년 중소 합작 사업이 파기되면서 양국의 사이는 매우 나빠졌다. 또한 쩌둥이는 경제 면에서도 희대의 병신짓을 저질렀는데, 미영소를 따라잡겠답시고 [[대약진 운동]]과 [[제사해 운동]]을 벌인 것이다. 대약진 운동 때 숲을 파괴하고 토법고로라는 싸구려 DIY 용광로를 만들어 있는 금속 없는 금속 싹 다 때려넣어 중국의 금속들은 전부 괴랄한 싸구려 합금으로 돌변했고 제사해 운동을 통해 애꿎은 참새들을 해로운 새라며 조져댄 탓에 되려 해충들이 들끓게 되었다. 이런 병신같은 만행에 반발한 사람들은 살해당하고 숙청당하면서 중국의 경제는 밑바닥을 찍게 되었다. ==== 소련 ==== 제2세계의 맹주로 군림한 소비에트 연방은 동구권과 북한, 중국 등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소련은 전후 복구에 힘을 쓰고 있었으나 김일성이 남침하겠다고 떼를 쓰자 71번이나 거절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중국까지 가세해 남침을 요구하자 결국 남침을 허가하고 그렇게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 소련은 무기를 지원했고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하자 휴전 협상이 가속화되어 한국전쟁은 정전 상태에 돌입한다. 이후 소련에서는 [[니키타 흐루쇼프]]가 새 서기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그는 스탈린에 대한 비판에 들어가며 스탈린 격하 운동을 벌였다. 숙청이 끊임없이 이루어지던 스탈린 시대는 종식되었고 일개 독재자에 불과한 인물로 평가했다. 이런 스탈린 격하는 중국의 마오쩌둥에게 위기감을 안겨주었고 결국 이로 인해 중국과 갈등을 빚고 파국까지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흐루쇼프 시대에 들어서 본격적인 미국과의 경쟁이 시작되었는데, 흐루쇼프는 소련의 군사력과 항공 우주 기술을 급격히 발전시켜 미사일 강국으로 올라섰다. 1957년에는 세계 최초의 우주선인 [[스푸트니크]]를 발사해 전 세계에 스푸트니크 쇼크를 주기도 했다. 이러한 기술 경쟁은 서로에게 큰 위협이 되었고 미소 간 대립은 역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 또한 독재자였던지라 공산권의 질서에 반대하는 국가들을 잔혹하게 진압했다. 1956년 헝가리에서 혁명이 일어나 개혁 정부가 들어섰는데, 소련군이 헝가리를 침공해 개혁 정부를 몰아내고 관료들을 처형하는 사건도 있었다. 그동안 진보주의자들에게 공산주의는 옹호받아왔지만 공산주의 세력이 민주화를 잔혹하게 진압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알려지며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진보주의자 즉 신좌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 동독 ==== 1949년 [[독일민주공화국]] 수립 이후 초대 대통령으로 [[빌헬름 피크]]가 집권했다. 동독이 수립된 후 공산권에서는 서베를린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공산당의 집권 아래서 우아하게 발전하는 동베를린과 동독의 위엄에 지려 동독으로 넘어올 것이라는 망상을 했으나 그딴 거 없었고 공산당의 일당 독재 때문에 많은 동독과 동베를린 주민들이 서베를린으로 도망갔다. 그리고 선진국들과의 약속도 약속이었던지라 서베를린을 함부로 막을 수도 없었다. 결국 이 시기 서베를린에 장벽을 세우자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물론 공업 강국인 독일 땅에 세워진 공산국가였다 보니까 공산권에서는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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