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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세계 === ==== 미국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 임기 종료 후 대통령 선거에서 리처드 닉슨을 제압하고 [[존 F. 케네디]]가 당선되었다. 그는 상당히 진보적이었으나 국제 분위기는 갈수록 경직되어갔고 냉전도 극에 치닫고 있었다. 1962년 급성장한 소련이 같은 공산국가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면서 미국을 위협했는데, 이 당시 미국 전체가 엄청난 [[쿠바 미사일 위기|위기]]에 빠졌고 미국과 소련은 핵전쟁 직전까지 갔으나 결국 이런 위기 분위기에 질린 소련이 먼저 gg쳤으며 쿠바의 미사일을 철수시키며 치킨 게임이 끝났다. 하지만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11월 22일 암살당했다. 이후 부통령 [[린든 B. 존슨]]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끝났지만 냉전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4년 베트남의 통킹 만(박보 만)에서 북베트남 어뢰정이 미 해군을 공격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를 명분으로 미국은 북베트남에 선전포고해 베트남 전쟁에 개입했다. 이후 존슨은 상대 후보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 득표율 61.1%로 대선에서 압승하고 다시 대통령이 되었다. 하지만 미국은 베트남이라는 함정에 빠져서 많은 인력을 소모하고 있었고 갈수록 반전 여론이 커지면서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이런 반전 운동은 여러 인권 성장에 기여했고 1960년대 미국 사회는 크게 변화했다. 다만 내치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는데 민권법을 제정해 흑인들에게 법적인 평등을 보장하는 등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 1968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968년은 [[68혁명]]과 [[프라하의 봄]]으로 한창 시끄럽던 시기였으며 반전 여론도 강력해지면서 냉전 분위기가 사그라들고 [[데탕트]]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닉슨도 데탕트 분위기에 편승해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그는 훗날 [[워터게이트|큰 사고]]를 치게 된다. 그 외에 미국은 [[아폴로 계획]]을 진행시켜서 1969년 7월 20일 사상 최초로 인류가 달에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 1957년 소련이 미국에 준 충격을 역으로 되갚는 데 성공했고 이는 미국의 최전성기를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다. 1969년은 미국 문화가 가장 융성한 시기이기도 했고 최초의 인터넷인 [[아파넷]]이 등장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 일본 ==== 패전 이후 1950년대 한국전쟁 특수로 경제성장을 이룬 일본은 경제 위주 정책을 밀어붙여 고도성장기를 이어나갔다. 기존 전범국 이미지는 [[1964 도쿄 올림픽]] 개최로 씻었으며 이때 여러 전자제품들을 선보여 일본이라는 나라의 경제력을 세계인들에게 각인시켰다. 서독을 제치고 세계 경제 규모 3위에 도달할 정도로 강력해졌다. 한편 일본의 좌파들은 시위가 자주 실패하자 폭력적인 방식으로 테러를 감행하기 시작했다. ==== 중화민국 ==== 중화민국은 국공내전 패배를 극복하고 경제성장을 이루기 시작했다. 1960년대 중국에 큰 혼란이 일어나자 장제스는 이것을 기회로 여겨 자신의 패배 원인을 재분석하고 교훈으로 삼으면서 의무교육 시행 및 부패 척결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1969년에는 컬러 텔레비전 방송까지 성공하면서 대륙 중국을 비웃을 정도로 강력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장제스의 독재는 지속되어 민주화 운동 탄압은 심각했다. 그리고 데탕트가 세계적으로 찾아오며 미중 관계가 개선되자 대만의 외교적 입지도 갈수록 불안해졌다. ==== 서독 ====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가 대통령 [[테오도어 호이스]]와 갈등을 빚는 등 여러 실책을 저질렀고 1961년 소련과 동독이 베를린 장벽을 건설하자 베를린 위기가 발생했다. 아데나워는 강경하게 나가려 했으나 케네디의 베를린 시민 드립으로 실패했고 1963년 실각했다. 다음 총리로는 [[루트비히 에르하르트]]가 취임했다. 미국이 유럽에서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이자 독일도 프랑스식 유럽주의, 드골주의에 편승하자는 여론이 있었는데 총리가 이를 쌩까자 기민당 내에서도 비판이 일었고 결국 66년에 실각했다. 이후 기민당-사민당 연정을 이뤄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어가 총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나치 부역 경력 때문에 싸다구를 후려쳐맞는 일까지 당했고 결국 68혁명이 세계적으로 퍼지자 키징어는 [[빌리 브란트]]에게 총리직을 넘기고 날아갔다. ==== 이탈리아 ==== [[1960 로마 올림픽]]을 개최해 이미지를 개선하고 제1세계의 대표 국가 중 하나로 자리잡았으나 이탈리아에 전통적으로 이어져오던 부정부패는 개선되지 않았고 세계적으로 반전 운동과 68 혁명이 퍼져나가자 이탈리아 내에서 좌익 테러단체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 프랑스 ==== 프랑스는 1961년 1월 8일 국민 투표를 거쳐 알제리의 독립을 가결시켰으며 에비앙 조약을 체결해 알제리 독립전쟁이 종식되고 알제리가 독립했다. 대통령인 [[샤를 드 골]]은 대선을 직접선거로 전환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통과시켰다. 그는 강력한 프랑스를 주장했고 미국의 간섭이 심해지자 유럽은 유럽대로 살아야 한다는 드골주의를 주장했다. 이런 배경에서 프랑스는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식 문화에 심취한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윗세대들에게 노골적인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좌익 반전주의 학생 시위대가 들고일어나며 [[68혁명]]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는 세계적인 열풍이 되었고 비록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급진적인 행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학을 떼게 만들었으나 문화적으로는 자유주의가 더 널리 퍼지게 할 수 있었다. 어쨌든 68혁명은 결과적으로는 실패했고 이를 막아낸 드골 또한 너무 늙어 정부 관료 및 의원들에게 지지를 잃고 사임했다. 이후 [[조르주 퐁피두]]가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는데, 그는 드골주의자였기에 드골 지지자들에게 표를 얻을 수 있었고 68혁명 당시 요구들을 받아들여 사회 전반을 개선했다. 미국과 프랑스 간의 나빠졌던 관계도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 ==== 영국 ==== 1956년 수에즈 전쟁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물러난 영국은 비록 대영제국으로서의 영예는 잃었지만, 문화적으로는 미국을 다시 따라잡을 정도로 강력해졌다. 영국의 음악 발전은 1960년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전설의 [[비틀즈]]가 나타나며 영국 음악은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통해 세계에 퍼졌다. 비틀즈 열풍은 신세대 문화를 전 세계에 퍼뜨렸고 대중음악의 주류가 록 음악이 되는 데에 기여했다. 한편 식민지 독립 열풍에 따라 여러 식민지들을 독립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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