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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세계 === ==== 북괴 ==== 김일성이 정권을 장악해나가는 과정에 여러 수뇌부를 숙청하고 심지어 과거 동지들까지 모조리 몰아내면서 군을 장악했다. 또한 성인이 된 [[김정일]]을 후원해 왕위세습을 노렸다. 1967년 5월 25일 5.25 교시를 통해 문화 말살 정책인 [[도서정리사업]]을 개시했다. 김일성을 조금이나마 부정하는 내용은 얄짤없었고 좆도 아닌 걸 가지고 김일성 비판이라고 몰아붙이면서 제거했다. 역사왜곡도 자행되어 한국사의 여러 위인들은 김일성보다 못하다는 것이 북한에서 정론이 되어버렸다. 또한 김일성은 한국전쟁 당시 실책 때문에 생긴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버리기 위해 남한에 여러 간첩들을 투입해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고 이것이 지지기반이 되어버려 김일성은 북한에서 단순 대우받는 위치에서 최고조넘이 되었다. ==== 짱깨 ==== [[대약진 운동]]을 통해 참새도 조졌지, 철도 고물로 만들었지, 산도 싹 다 밀어버려서 온갖 자연재해들이 중국을 덮쳤다. [[마오쩌둥]]의 무책임하고 비상식적인 발언과 이를 받아들이던 무지성 짱개들 때문에 중국의 경제는 나락 끝까지 떨어져버렸고 결국 마오쩌둥은 입지를 잃어버리고 자리도 잃었다. 이후 마오쩌둥의 오랜 동지였던 [[류사오치]]가 주석으로 집권했는데 그는 개방적인 경제 정책을 펼쳐서 망한 중국을 그나마 끌어올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여전히 찌질한 마오쩌둥은 그를 배신자로 규정하고 칼을 갈았다. 그러던 도중 [[1965년]] [[11월 10일]] 중국 만악의 근원 4인방 중 하나인 야오원위안이 명나라 [[해서]]를 주제로 한 연극 해서파관을 마오쩌둥을 감히 비판하는 반동의 연극이라고 주장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쩌둥이는 노를 저었고 1966년 5월 16일 개방주의자들을 수정주의자라고 부르며 이들을 몰아내야 한다며 선동했다. 결국 1966년 8월 쩌둥이의 선동에 동참한 [[홍위병]] 폭도들이 난을 일으켜 [[문화대혁명]]으로 이어졌다. 쩌둥이를 부추긴 건 4인방, 특히 그 중 하나인 쩌둥이의 아내 [[장칭]]이었고 문화대혁명 선동을 부추기면서 온갖 개꿀을 싹 다 빨아먹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홍위병 폭도들은 공자와 만력제의 무덤을 파묘하고 종교 관련 자료 및 도서들을 모조리 불태우며 연극, 영화, 소설 등의 대중매체들도 모조리 탄압했다. 류사오치와 [[덩샤오핑]] 등도 이 시기에 숙청당해 인민재판을 당했다. 하지만 중국과 소련 간 국경 분쟁으로 중소 양국의 관계가 나빠지자 미국이 소련 견제를 위해 중국에게 접근하는데, 그렇게 미제 반동 타령하던 쩌둥이는 미국이 러브콜을 보내자 언제 욕했냐는 듯이 미국의 접근을 받아들이고 데탕트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 소련 ==== 소련은 이때부터 세계 공산 혁명이라는 목표에 박차를 가하는데, 1950년대 후반 쿠바가 적화되자 소련은 지정학적으로 미국을 타격하기 아주 좋은 위치에 놓였다. 이에 따라 소련은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했으나 미국에게 발각되었고, 양국은 3차 대전 직전까지 갔으나 다행히 대화를 통해 상황이 수습되었다. 흐루쇼프 시대에는 스탈린 시절처럼 단순히 쥐어짜는 정책을 포기하고 인민 생활 개선을 주 폭표로 삼았다. 텔레비전, 라디오 등이 이때 대대적으로 소련에 보급되었다. 1961년 소련이 [[유리 가가린]]을 우주로 보내는 데에 성공해 인류가 우주에 진출하게 되었다. 하지만 흐루쇼프는 농업 정책에서 실패했고 결국 대흉년이 일어나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의 쿠데타로 실각했다. 브레즈네프 시대로 넘어오면서 무자비한 숙청과 대학살 같은 것은 거의 사라졌으나 동시에 개혁도 없었고 전체적으로 안정적이었다. 이후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에 접근하면서 [[데탕트]] 시대가 열렸는데 분명히 의도는 소련 견제였지만 미국과 소련 간의 관계도 완화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 발전 속도가 침체되어 잠재적 문제점들이 속속 생겨났으며 지나친 외세 개입을 자행한 끝에 80년대에는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늪에 빠지게 된다. ==== 동독 ==== 지도자는 [[발터 울브리히트]]였다.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소련과 함께 베를린 장벽을 세웠고 이는 서구권의 반발을 사 갈등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서독과 비견할 만한 수준이었던 동독의 경제 상황은 악화되었다. 소련에서 브레즈네프가 집권한 후에는 소련과도 충돌을 벌이며 갈등이 빚어졌다. 이로 인해 [[에리히 호네커]]가 소련에게 차기 동독 지도자로 눈에 띄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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