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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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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9 혁명의 발생 === [[1960년]]이 되며 4대 대선이 다가왔고 자유당은 또 런승만을 내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승만이 하필 [[1875년]]생이라 85세라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아무리 무지한 국민들이라지만 대통령 나이가 저 정도면 슬슬 안 뽑으려고 한다는 걸 자유당도 눈치챈 것이다. 그리고 이승만이 임기 중 죽으면 부통령에게 권력이 넘어가는데 부통령이라도 장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일단 이승만을 당선시키되 자유당의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여기서 모순에 부딪치는데 부통령을 이기붕으로 내세워야만 자유당이 살 수 있지만 4년 전에 부통령으로 장면이 당선된 상태라서 이번에도 망할 게 뻔했다. 대통령 후보는 이승만과 조병옥 2명이었는데 마침 민주당 후보 조병옥도 죽으면서 후보는 이승만만 남았고 선거 결과에 상관없이 이승만 100% 확정이었다. 문제는 부통령 선거이다. 신익희도 대선 전에 갑자기 죽었지 조봉암은 사형당했지 거기에 조병옥도 느닷없이 죽어버리니 국민들이 자유당에 아주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정당한 방법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자유당은 이제 헌법을 바꾸거나 악법을 만들거나 하는 것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 사상 최악의 위기에 몰렸고 결국에는 부정선거를 저지르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3.15 부정선거]]였다. 여기서 투표함 바꿔치기, 3~5인조 투표, 완장 감독관 배치 등 별의 별 괴상망측한 방법을 부정선거 하는 데 쏟아부었고 자유당은 '부정선거 좀 한다고 저 멍청한 개돼지 국민놈들이 난리가 나겠어? ㅋㅋㅋㅋㅋ' 하며 비웃었다. 하지만 이 때가 1960년이었다. 이놈들이 횡포를 저지르던 1950년대와 다르게 민주주의를 배우고 자란 학생들이 투표권까지 얻은 어른이 되면서 부산과 마산 등을 중심으로 항쟁이 일어났다. 이승만 정권은 총과 칼을 학생들에게 내밀며 항쟁을 진압했다. 그리고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자유당은 대놓고 선을 넘었다. 결국 [[1960년]] [[4월 19일]] 전국적으로 반자유당 시위와 항쟁이 일어나며 [[4.19 혁명]]이 개시되었다. 처음에는 학생들 위주로만 진행되었으나 추후에 국민학생들과 대학 교수들, 일반 시민들까지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의거를 벌였다. 결국 [[4월 26일]] 상황을 더 질질 끌기 싫었던 이승만이 하야 선언과 함께 [[내각책임제]] 실시, 선거 무효화를 알리며 항복했다. [[4월 28일]]에는 이기붕의 아들이자 이승만의 양자인 이강석이 이기붕 일가를 몰살하고 자신도 자살했다. 이후 대한민국에는 허정 과도내각이 들어섰다. 그 이후 이승만은 하와이로 빤쓰런하고 내각책임제 개헌이 이루어져 [[대한민국 제2공화국]]이 수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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