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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세계 === ==== 북괴 ==== {{지옥}} 감히 [[김일성]]에게 개긴 기타 세력들은 모조리 숙청당했고 김일성 세력만 남게 되자 김일성은 1972년 주체교라는 사이비 종교를 창시하여 사회주의 헌법이라는 꾸란을 헌법으로 제정한다. 여하튼 레닌, 스탈린, 쩌둥이의 안 좋은 점만 모조리 배워먹은 김일성이는 국가주석 취임 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를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로 격하시켰고 내각도 정무원으로 격하시켜 지 좆대로 해쳐먹을 준비를 마쳤다. 1974년에는 황태자인 [[김정일]]이 후계자로 선포되어 본격적인 부카니스탄의 왕위계승 작업이 시작되었다. 여하튼 갑자가 마이웨이 루트를 탄 북한의 행보를 보고 소련과 중국은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훗날 북한이 이후 대외 의존도가 심각하게 낮아져 경제적으로도 좆망할 위기에 처하자 그럼 그렇지 하며 북한은 다시 사실상의 속국이 되기는 한다. 주체교 선포 이후 안 그래도 사회주의의 한계가 다가오고 있는데 스스로 자력갱생하겠답시고 외부의 지원까지 쌩까버리니 나라가 잘 될리가 만무하다. 이때부터 국력을 대한민국에게 추월당해 몰락하기 시작했다. ==== 짱깨 ==== [[문화대혁명]] 폭동이 점차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마침 소련과 사이가 나빠진 상황에 미국에게 러브콜을 받은 쩌둥이는 홍위병들에게는 자본주의를 배격하라며 선동하면서 정작 몰래 자본주의 종주국인 미국과 싸바싸바를 시도했다. 사실 몰래도 아닌 게 대놓고 탁구 경기도 하고 헨리 키신저와 저우언라이가 만나서 회담까지 했기 때문에 ㅋㅋ 이듬해에는 리처드 닉슨이 직접 찾아와 쩌둥이와 회담했다. 한편 문화대혁명 자체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고 이에 불안감을 느낀 2인자 린뱌오가 소련으로 빤쓰런을 시도하다가 몽골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했다. 이후 그의 세력은 모조리 숙청당했고 중국은 [[4인방]]의 폭도 세력과 [[저우언라이]]의 온건파가 겨루는 구도로 가게 되었다. 한편 홍위병들도 때려부술 만한 것들은 싹 다 때려부쉈는지 할 일이 없어지자 결국 쩌둥이만 개꿀을 빤 셈이 되었고 이 할 일 없어진 홍위병들은 농촌으로 추방해 농사나 짓고 살도록 내쳐버렸다. 그러다가 1976년 1월 짱깨들의 존경을 받던 저우언라이가 사망하자 전국이 애도 물결에 휩싸였는데 눈치없는 4인방의 [[장칭]]련이 저우언라이를 폄하하고 추모를 힘으로 방해하는 등의 병신짓을 벌였고 결국 천안문에서 쩌둥이와 아이들 4인방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으니 이게 바로 제1차 천안문 사태이다. 천안문 사태 이후 4인방은 덩샤오핑을 개새끼로 몰아갔고 가택연금까지 시켰다. 그런데 얼마 후 짱퀴벌레의 수장인 [[마오쩌둥|쩌둥]]이가 뒤졌고 [[화궈펑]]이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4인방은 화궈펑을 호구 취급했고 충분히 그를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호구인 척 하면서 4인방을 날려버렸고 그 중 특히 중국 희대의 악녀인 장칭도 조졌다. 물론 그는 권력욕이 없는 호구여서 덩샤오핑이 복권된 후에는 덩샤오핑의 조종을 받게 되었고 결국 덩샤오핑에게 자리를 물려주며 정계를 은퇴했다. 이후 중국의 주석이 된 [[덩샤오핑]]은 '공칠과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쩌둥이의 중공 수립은 옹호하되 문화대혁명이라는 만행에 있어서는 실컷 까일 필요가 있다 식으로 대응했다. 또한 흑묘백묘론과 실용주의에 입각해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해 폐쇄적인 중국이 국제 사회에 설 수 있도록 만들었다. 1979년에는 덩샤오핑이 직접 미국을 찾아가 지미 카터와 만나기도 했다. 이때 중국 지도층들이 천조국의 위엄을 보고 지려 경제 개발 필요성을 단단히 느꼈다고 한다. ==== 소련 ==== 데탕트 시대를 맞이하면서 정치적 혼란도 잦아들었고 마치 청나라 중흥기의 [[건륭제]] 시대를 연상케 하는 평화의 시대를 맞이했다. 또한 소련 인민들의 생활 수준도 향상되었고 독재도 약간의 체제 비판적인 발언 정도는 허용하는 유화 독재 체제로 완화되었다. 또한 종교 탄압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서방 및 중동 국가들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아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로 인한 오일 쇼크에 의해 큰 타격을 입었고 성장률도 떨어져 침체기를 맞이했다. 또한 수익이 늘어나자 이 돈들을 전부 기존의 우주 개발 대신 군비 확장에 사용했고 그렇게 양성된 군대는 대외 개입에 사용되었다. 결국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늪에 빠지면서 소련은 점차 망테크를 밟게 된다. ==== 동독 ==== 동독의 서기장 발터 울브리히트가 소련 고위 간부들에게 찍힌 후 서기장이 [[에리히 호네커]]로 교체되었다. 그의 치세 동안 조금씩 서독과의 관계가 개선되었고 소련과도 무난한 관계를 유지했다. 동독은 공산권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 하나였으나 공산주의의 한계로 조금씩 몰락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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