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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랍, 팔레스타인 ===== 1970년 9월 28일 가말 압델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이 사망하자 [[안와르 사다트]]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기존의 이집트 대통령들과 다르게 서양 국가들과의 관계를 일부 개선했고 이스라엘과도 관계 개선을 시도하지만 이스라엘이 수에즈 운하에서의 철수를 거부하자 사다트 대통령은 술책을 쓴다. 바로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여러번 뇌절하듯이 구라를 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여기에 속아넘어가서 사다트가 계속 전쟁 협박을 해오자 그냥 허풍쟁이 취급을 했다. 그런데 1973년 10월 6일(욤 키푸르)에 이집트가 정말로 쳐들어오면서 [[욤 키푸르 전쟁]]이 발발했다. 이번에는 이집트가 각 잡고 이스라엘을 쳐들어온 것이었기에 이스라엘이 의외로 초기에 밀렸다. 결국 궁지에 몰린 이스라엘은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당시 미국의 외교를 담당하던 [[헨리 키신저]]는 이스라엘을 돕는 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걍 내버려뒀으나, 이스라엘이 너무 불리해지자 결국 닉슨 대통령이 직접 이스라엘을 지원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전세를 회복해 이집트와 시리아 연합군을 역관광시켰으나 시리아 전선에서는 소련이 시리아 다마스쿠스를 점령하지 말라는 강요를 하자 일단 멈췄고, 이집트도 제압하면서 이스라엘은 전술적 승리를 거뒀다. 다만 이집트도 초기의 강력한 공세 때문에 이스라엘을 압박할 카드를 얻은 셈이 되었고 이들은 1974년에 수에즈 운하를 다시 얻어내면서 전략적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시리아는 그냥 얻은 것 앖이 날라갔다. 여하튼 두 나라는 향후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다. 진짜 문제는 전쟁 동안 아랍 국가들이 담합을 벌여 석유 가격을 올려버렸고, 이로 인해 전 세계가 기름 부족이라는 큰 타격을 입어 제1차 오일 쇼크가 일어났다. 이는 한국의 경제 개발을 방해했고 일본의 발전 속도를 침체시켰으며 프랑스, 미국, 영국 등의 나라들의 정치에 영향을 끼쳤다. 한편 팔레스타인 외의 아랍 지역에서는 영국령 아랍 에미리트가 독립해 7개 토후국이 뭉친 아랍 에미리트가 건국되었다. 여기서도 석유가 발견되었고 아랍 에미리트는 아무것도 없는 나라에서 석유 산유국으로 지위가 올라가 두바이 등의 초고속 성장에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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