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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했는데 이 추세가 지속되면서 일본은 경제 불황인 [[잃어버린 10년]]의 시대를 맞이했다. 그나마 90년대 중반에 회복세를 보이나 했더니 1990년대 후반부터 아시아를 휩쓴 외환 위기의 여파에 휩쓸려 다시 좆망했다. 이런 가운데 38년 간 이어져오던 [[55년 체제]]도 자민당의 내분으로 1993년 무너지고 군소정당들의 연정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연정이 얼마 가지 않아 붕괴되면서 다시금 자민당의 시대가 열렸다. ==== 중화민국 ==== 국민당의 [[리덩후이]]가 정식으로 총통 자리에 취임하고 민진당의 정책을을 수용하면서 대만의 민주화 개혁이 이루어졌다. 1991~1992년에 독재 정치를 주도하던 국민대회와 입법원이 해산되고 재선거가 실시되었고 헌법 또한 수정되었다. 또한 대만에서 일어났던 학살 사건인 [[2.28 사건]]의 진상조사를 실시했으며 책임 인정 및 사과를 표했고 반세기 전 [[시안 사건]]을 일으켜 가택연금을 당한 후 이때까지 용케 잘 살아있던 [[장쉐량]]을 석방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보수파들은 반발을 통해 탈당하고 신당을 창당했다. 리덩후이 정부 3기에는 경제 위기 여파로 지방 선거에서 민진당이 국민당을 이기는 일도 있었으나 1998년 총선 및 지선에서 국민당이 이기며 다시 국민당이 권력을 잡게 되었다. 그리고 이맘때부터 리덩후이 총통이 대놓고 중국을 분열시키지고 하는 등 대만 독립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 독일 ==== 베를린 장벽이 파손되자 동독 정부는 공권력을 행사할 수 없을 정도로 붕괴한 상태였으며 1990년 3월 동독에서 최초이자 마지막 선거가 실시되었는데 이때 급진 통일을 주장하는 독일 연합이 승리했고 1990년 10월 3일 동독이 5개 주로 분해된 후 서독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독일이 통일되었다. 하지만 독일은 급진적 통일에 의한 후유증으로 경제적 피해를 입었는데, 동독은 경제적으로 부실해 많은 동독 출신 기업들이 망했으며 서독은 동독을 위한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이 생겨 그만큼 손해를 입었다. 이후에도 [[헬무트 콜]] 총리는 자리를 지켰으나 1998년 총선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사민당이 이기면서 총리 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미 동구권 붕괴로 구좌파가 몰락한지라 서유럽 사회주의 정당들은 우파 요소들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 제3의 노선을 주장하던 추세였다. 새로 취임한 슈뢰더 총리는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처럼 이런 분위기 속에서 총리로 취임하게 되었다. ==== 이탈리아 ==== 부정부패와 정치인-마피아 간의 결탁 문제가 아주 심각했으나 양심이 있던 몇몇 법조인들이 깨끗한 손(마니 풀리테) 운동을 시작해 마피아들을 대거 감옥으로 보낸 일이 있었다. 이에 앙심을 품은 마피아들이 몇몇 판사들을 폭탄 테러로 암살하면서 이 사건이 세계에 알려졌고 결국 시민들이 마피아에 대한 제보를 이어나가면서 이탈리아에서 판치던 마피아들은 대거 소탕당하게 된다. 하지만 부정부패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되려 언론플레이로 입지를 쌓아가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라는 양반이 나타나 국민들을 선동하고 총리로 집권했다. 이후 북부동맹과 사이가 나빠져 총리직에서 물러났고 1996년 총선에서 참패한 후 좌파가 집권했으나 좌파 정권의 통치도 무능했다는 평을 받자 다시 국민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1년에 재집권했다. ==== 프랑스 ==== 1990년대 초반 각료 비리 및 경기 침체로 인해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인기를 잃었고 1993년 총선 이후 에두아르 발라뒤르를 총리로 한 동거 정부가 수립되었으며 딱히 큰 마찰 없이 임기를 이어나가다가 1995년 임기가 종료되며 퇴임했다. 이후 [[자크 시라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경기 침체로 인해 지지율이 하락했고 조기 총선을 실시했으나 여기서도 발렸다. 이후 [[리오넬 조스팽]]이 총선 승리로 인해 총리로 집권했고 실권을 잃어버렸다. ==== 영국 ==== [[마거릿 대처]]가 인두세 도입을 시도하자 각지에서 반발이 쏟아져나왔고 대처에게 반발한 영국 보수당 의원들이 당대표 선거를 1990년에 실시했다. 대처는 4표 차이로 1차 투표에서 떨어졌고 결국 보수당 대표와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존 메이저]]가 보수당 대표로 선출되어 총리가 되었다. 1991년 걸프 전쟁에 참전해 30억 파운드의 빚을 졌고 지난 80년대의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에 해체당한 산업들을 대체할 산업이 부족해 경제가 악화되었다. 그리고 1992년 검은 목요일로 인해 파운드화의 가치가 대거 폭락했다. 하지만 존 메이저 총리는 마거릿 대처 지우기 등을 통해 보수당의 이미지를 개선하면서 1992년 4월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 이후 보수당은 여러 스캔들에 시달렸고 마스트리흐트 조약으로 인해 내분이 일어났고 1995년 스코틀랜드 자치 선거에서 참패했으며 1997년 5월 총선에서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에 의해 참패하면서 존 메이저는 총리직을 사임했다. 토니 블레어가 총리로 취임한 이후 1997년 8월 31일 영국의 왕세자비인 [[다이애나 스펜서]]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영국 왕실의 행보가 엄청난 욕을 먹었는데 이런 상황에 총리가 왕실을 압박해 왕세자비를 추모하게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제3의 노선을 추구하며 노동당의 우클릭을 주도했는데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는가 하면 보수당 시대의 정책을 일부 도입해 현대 영국 복지 체제를 확립하고 경제 성장을 이뤘다. 또한 1998년 4월 10일 아일랜드와 벨파스트 협정을 체결해 테러 위협을 막아냈다. ==== 스페인 ==== 구 스페인의 식민지로 구성된 이베로-아메리카 공동체를 형성해 에스파냐 국왕이 수장을 맡게 되었다. 독재 세력은 거의 사라졌으며 그 대신 스페인 기업들이 중남미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 동구권 === ==== 북괴 ==== 공산권이 망하면서 북한에서도 붕괴의 조짐이 보였지만 일성이의 신격화 작업이 성공했는지 체제가 무너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주변국들의 자본주의화 때문에 정상적인 교역이 불가능해져 타격을 입었으며 점차 망해갔는데, 이 도중 1994년 [[김일성]]이 뒤지고 [[김정일]]이 북한 2대 돼지 새끼로 즉위했다. 신과 같은 취급을 받았던 김일성이 뒤져버리니 큰 혼란이 찾아왔고 북한은 유훈 통치라는 이름으로 인민들을 갈취하기 시작했다. 지난 7년 간의 경제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으며 경제적 혼란은 [[고난의 행군]]이라는 북한 역사상 최악의 위기로 다가왔다. 설상가상으로 자연재해까지 북한을 덮쳐서 [[재앙]]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정상적인 국가였다면 빨리 회복했을 터지만, 끝까지 어거지로 자존심을 부리며 독재를 이어나가고 주변국의 지원도 만류하고 핵까지 개발하려고 해 국제적으로 욕을 쳐먹는 위치에 오르자 그냥 좆망했다. 이로 인해 북한은 그냥 망해가는 나라에서 세계 최악의 빈민국이 되었고 인민들은 생존을 위해 보급해주지도 않는 보급소에 가느니 지들끼리 물건을 거래하면서 암암리에 [[장마당]]이라는 시장이 형성되었다. ==== 짱깨 ====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지명된 [[장쩌민]]의 시대로 상하이 시장 출신인 그는 상하이 시장 당시의 인사들을 정계에 진출시켜 중국 공산당의 주요 파벌 중 하나인 [[상하이방]]을 형성했다. 이 시대에는 도광양회(조용한 국가 성장 추구)와 유소작위(강대국으로써 책임있는 자세를 가지는 것)에 입각한 정책이 추진되었다. 장쩌민 시대의 인권 탄압으로는 [[파룬궁]] 탄압이 있는데 물론 파룬궁 자체도 논란이 많은 단체이지만 파룬궁이 급성장하자 1999년 7월 20일 파룬궁을 사이비로 지정해 대대적 탄압을 하고 장기적출을 자행하기도 했다. ==== 소련→러시아 ==== 동유럽에서 연쇄 혁명이 일어나 공산권이 붕괴하고 공산권의 맹주인 소련마저도 고르바초프가 사실상 역적 취급을 받으면서 붕괴 수순을 밟고 있었다. 이미 발트 3국 국가들은 1990년에 실질적으로 탈퇴했으며 이후 조지아가 1991년 4월에 탈퇴했다. 고르바초프의 실패한 개혁 이후 반발한 보수파가 1991년 8월 18일에 쿠데타를 일으켜 고르바초프를 연금했으나 이들은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보리스 옐친]]이 나타나 쿠데타 세력들을 몰아내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렇게 고르바초프는 살아났으나 그의 여론이 좋아진 건 아니라 실권은 옐친에게 넘어갔고 쿠데타 실패 이후 우크라이나, 몰도바,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순서대로 독립해나갔고 벨라루스, 러시아, 카자흐스탄만 소련으로 남게 되었다. 고르바초프는 소련 해체를 끝까지 반대했으나 이미 독립 물결은 막을 수 없게 되었고 결국 벨라루스가 1991년 12월 10일에, 러시아가 1991년 12월 12일에, 카자흐스탄이 1991년 12월 16일에 탈퇴하면서 소련 구성국은 완전히 사라졌고 1991년 12월 26일 소련은 공식 해체되었다. 이후 새 공화국인 러시아 연방에서는 보리스 옐친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소련 해체의 영향으로 1인당 GNP가 무려 5% 수준으로 급락해버렸다. 더군다나 옐친의 무능한 경제정책으로 나라가 더 작살나면서 재앙 그 자체가 되었다. 1993년에는 러시아 공산당이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옐친을 탄핵하는 사태가 일어나자 옐친은 국회의사당을 탱크로 밀어버리는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후 체첸과의 전쟁에서 큰 피를 봤으며 1996년 이미지 메이킹으로 겨우 재선하기는 했으나 1998년 정부가 재정 부족으로 모라토리움을 선언해 옐친에 대한 평판은 최악이 되었다. 결국 옐친은 새로 떠오르던 신인인 [[블라디미르 푸틴]]을 총리로 임명했다. 그리고 1999년 12월 31일 사임하며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 ==== 베트남 ==== 개혁개방 정책을 펼친 후 제1세계 국가들과 대외교류를 하며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돈을 벌러 떠나기도 하고 자국으로도 여러 기업들의 공장이 들어왔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에 의해 자행된 학살들을 인정하면서 과거 베트콩 세력들에 대한 안 좋은 재평가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 동남아 === ==== 미얀마 ==== 신군부 집권 이후 1990년에 총선을 실시했으나 아웅 산 수 치의 국민 민주 연합이 선거에서 압승하자 선거를 무효화하고 아웅산 수치를 가택연금한 다음 군사독재를 개시했다. 1996년 군벌인 쿤사를 무너뜨리고 1997년 11월 군부 SLORC를 SPDC(국가평화발전평의회)로 개편했다. ==== 태국 ==== 1991년 수친다 끄라쁘라윤의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국왕인 [[라마 9세]]가 수친다를 꾸짖으면서 쿠데타군이 물러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는 태국에서 국왕, 그 중에서도 라마 9세의 위치가 어느 수준인지를 보여준 일화로 유명하다. 이후 태국은 일시적으로 민주화되었지만 1997년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외환 위기가 일어나며 태국도 그 여파를 피할 수 없었다. 민주화 이후 난립하는 수많은 정당 때문에 연정이 어려워졌으며 내각이 여러 번 교체되는 등 혼란을 맞이했다. ====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 말레이시아에서는 신 개발정책을 실시하며 빈곤 퇴치와 산업 및 상업 발전 등의 정책을 실시했고 1997년 아시아 외환 위기가 다가오자 적절한 대처로 경제적 피해를 막았다. 싱가포르에서는 리콴유의 뒤를 이어 고촉통이 독재자로 집권했다. ==== 인도네시아 ==== [[수하르토]]가 독재를 이어나가다가 1997년 동남아 전역에서 경제 위기가 불어닥치며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반화교 폭동이나 동티모르 독립운동 등 혼란스러운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1998년 수하르토가 퇴진하면서 정권이 끝났다. 이후 1999년 자유선거 실시로 압두라만 와힛이 대통령이 되었다. ==== 필리핀 ==== 민주화를 이룩했다는 업적만으로 대통령에 오른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은 정치 능력 부족으로 대책이 없는 정책을 남발하고 더군다나 아직 남아있는 기득권 세력의 견제까지 겹쳐 실적이 엉망이었고 결국에는 1992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마르코스의 측근 자리에서 마르코스의 퇴진을 이끈 피델 라모스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역시나 필리핀의 민주화 사업을 이끌어나갔으며 경제 성장을 어느정도 이루기도 했으나 역시 1997년 외환위기로 타격을 입었다. 이후 조지프 에스트라다가 대통령으로 취임했으나 사생활 문제로 인기를 잃었다. === 인도 === 압도적인 인구를 바탕으로 급성장했으며 1998년 파키스탄이 핵을 개발하자 파키스탄과 큰 갈등을 빚었다. 이는 미국의 지정학적 전략과도 얽혀 미국은 초기에는 파키스탄을 제재하고 2001년 9.11 테러 후에는 묵인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 중동 === ==== 이란 ==== 하메네이가 이란의 샤로 즉위했고 이 시기에 이란은 저유가 등의 문제로 경제 불황을 겪었다. 또한 하메네이 시대에도 호메이니 때처럼 강력한 신권 독재가 지속되었다. ====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에서는 오슬로 협정 체결 이후 PLO가 자치정부로 승격했다. 하지만 하마스와 파타 간에 내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북아프리카 ==== 이집트에서는 호스니 무바라크가 친미 및 친이스라엘 정책을 펼치며 독재를 했으며 리비아에서는 강력한 반미 독재를 펼치는 무아마르 카다피가 소련 붕괴, 저유가, 미국의 제재 등으로 인해서 개기지 않고 짜지면서 지냈다. === 아프리카 === 이 시기 아프리카에서는 르완다 일대에서 큰 분쟁이 일어났는데 르완다는 후투 족과 투치 족이 오랜 기간 갈등하던 나라였다. 그러다가 1994년 4월 6일 후투 족 출신인 르완다 대통령 쥐베날 하뱌리마나와 옆나라인 부룬디의 대통령 시프리앵 은타랴미라가 비행기 요격으로 인해 사망하자 후투족과 투치족 간의 갈등이 폭발해 서로가 서로를 학살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후 초기에 이 모든 갈등을 부추겼던 벨기에가 병력을 파견해 초를 쳤으며 프랑스는 아예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며 중앙아프리카 일대 전역을 뒤덮는 분쟁으로 커졌다. 그리고 1998년 제2차 콩고 전쟁이 발발하면서 아프리카판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요약: 조무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CC BY-SA 4.0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조무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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