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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7대 대통령 선거]] 당시 김대중이 내세운 이론. 당시 신민당에는 무기력하고 매너리즘에 빠진 노인들이 너무 많았고, 이런 신민당의 무능한 행보에 질린 국민들이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에 힘을 실어줬다. 1969년 [[3선 개헌]]이 이루어진 후에도 박정희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지 않자 위기감을 느낀 신민당은 71년에 들어서 비로소 김대중, 김영삼, 이철승 같은 신선한 40대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뭉쳤고, 김대중을 대선 후보로 내세운 신민당은 박정희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게다가 박정희와 민주공화당은 완전한 하나가 아니기에 민주공화당 내에서 대선에 나가고 싶어하던 [[김종필]] 같은 인물들이 박정희만 자꾸 대선에 나가는 꼬라지를 좆같아하던 것도 있었기에 박정희에게 가는 위협은 더 컸다. 결과적으로 김대중이 패배하고 박정희가 승리했지만, 적어도 윤보선이 계속 출마하다가 신민당으로 가는 표가 떨어지던 시절에서 전세를 역전하고 박정희를 위협하는 것에 성공하자 이후 [[삼김]] 중 김대중과 김영삼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으며 실제로 70년대부터 야권을 주도하는 인물은 김대중과 김영삼이 되었다. 그리고 이때 김대중에게 위협을 느낀 박정희는 1년 만에 [[유신 헌법]]을 통과시키며 김대중을 본격적으로 조지려고 시도한다. [[분류:정치 이론]][[분류: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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