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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인기 부진과 흥행 폭망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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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규제와 어용리그의 태생적 한계? === 1983년 리그를 처음 만들 때는 1년 먼저 출범한 프로야구처럼 유공-서울/인천/경기, 대우-부산/경남, 포항제철-대구/경북 등 대도시 광역연고제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당시 정부규제로 인해 홈앤드어웨이로 경기를 가지지 못하고 1986년까지'''4시즌 동안 순회경기를 펼치는''' 기가 막힌 운영을 선보였다. 이건 애초에 프로리그가 탄생하기 전에 쇼케이스로 리그에 참여 예정인 실업팀들을 데리고 해야 할 일이다. 리그를 출범시켜놓고 2년간 연고지도 없이 순회경기를 한다는건 프로리그에서 말이 안되는 일이다. 대체 초창기 수퍼리그 위원회나 축협 인간들 머가리 속이 어떻게 되어 먹었던 건지 전기톱으로 썰어보고 싶을 따름이다. 프로야구는 아예 논의 단계부터 정부가 지역감정 심화를 우려하는데도 연고제 허락 안해주면 우리도 안하겠다고 강하게 나가서 승락을 받아내고 시작했는데 프로축구는 그것을 못 해내었다. 또, 프로야구는 시설투자는 각 구단에서 하면 된다면서 융자혜택 등만으로 협상을 끝낸 반면, 프로축구는 애초에 100억이 넘는 돈을 조명시설 투자에 써야한다면서 달라고 하니 정부에서도 좋아할리가 없다. 그나마 억지로 1983년 일단 슈퍼리그를 시작하긴 했는데 프로2팀 실업3팀으로 리그 돌리는것만 봐도 야구처럼 구단이 알아서 투자할 상황이 아니라는것은 쉽게 알수 있다. 프로야구는 광역연고제 홈 앤드 어웨이 제도로 재미를 보고 있던 상황인데 축구행정가들은 정말 뭘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실업리그도 이런 식으로는 안 한다.''' 그나마도 멀쩡한 프로리그조차 아니고 프로 2팀에 실업 3팀이라는 이도저도 아닌 기가 막힌 구성이다. 축구장 빌리는것도 힘들어하는데 야간조명 설치비를 정부든 모기업이든 제대로 받아내겠는가? 출범 이후 연고지를 바탕으로 홈&어웨이 경기를 하겠다는 말은 매년 나왔지만 실행되지 못했고, 막상 해보려고 요청해도 체육부는 "프로야구 보니까 지역감정 때문에 자꾸 싸우더라" 하면서 허락도 안해줬다. 이걸 풀어내는게 능력인데 정치력도 없고 각 구단들의 전체적인 힘도 떨어지다 보니 힘도 못써보고 끌려 다녔다. 결과적으로 '''한국 프로축구의 진정한 출범은 전구단 프로화와 광역지역연고제로 홈앤드어웨이 시스템이 시작된 1987년'''이라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이 때 프로야구는 이미 원년 최고 스타 박철순을 시작으로 이만수 장효조 김성한 등의 야수들과 , 최동원 선동열 김시진의 3대 투수부터 시작해서 온갖 스타들이 나타나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이다. 원년 대전에서 우승을 하며 리그 출범 전 약속한대로 3년을 채우고 서울로 이동한 OB, 광주의 해태, 부산의 롯데, 대구의 삼성이 각 1회 이상 우승을 하며 프로야구는 서로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치열하게 발전해갔다. 또 프로축구는 1994년에 전북 들어오기 전까진 축구판에 아예 호남팀이라는 게 없었는데 이건 그냥 축구계가 병신이었다는 것 외에 설명할 방도가 없다. 프로야구도 출범전 호남팀 창단이 매우 어려웠지만 결국 해태 타이거즈를 창단 시키지 않았던가? 심지어 먼저 출범이 확정된 롯데는 같은 제과업계가 들어오는것은 안된다고 해태합류를 반대 했는데(무조건 반대는 아니고 사실 부산 대신 서울 연고지를 얻으려는 전략)권력 실세들을 구워 삶아서 해결했다. 똑같이 1981년 봄부터 청와대 비서관들이 3S 전략을 위해 프로스포츠를 만들려고 야구 축구 관계자 불러서 시작된것인데, 한쪽은 처음부터 이 때가 프로화의 적기라면서 지역별 연고팀 분배에 운영기업까지 완편한 상태에서 출발하고, 한쪽은 형식적인 연고지만 설정하고 프로팀보다 실업팀이 더 많은 유랑리그로 운영하는 등 프로리그라고 부를 수없는 출발을 하였다. 이미 [[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295&aid=0000000580|"기사"]]도 있지만, 빠따는 프로야구 출범을 위해 능동적으로 구성안 마련하고 팀 창단하고 참가기업 끌어모으며 전두환한테 보고서 만들어 갖다 낸 [[MBC]]라는 강력한 주체가 있었고 그 이전에도 프로화를 추진한적이 있었을 정도로 어느정도 프로리그 출범을 위한 토대가 갖춰져 있는 상태였다. 프로리그를 만들 생각도 없는데 강제로 신군부가 만들라고 한것이 아니라, 야구계 내에서 찬반도 갈리고 고민도 하고 추진도 하다가 3S정책과 맞아 떨어지면서 결실을 맺은 것이다. 반면 프로축구야 뭐, 위에서 출범 초기 뭔 일이 벌어졌는지 설명한 대로다. 완전 프로화가 된 1987년 참가 구단들만 봐도 고작 5개 팀들 중에 국영기업인 포항제철이 떡하니 들어가 있고(유공은 이름만 유공이고 선경그룹 산하로 편입됨), 기독교 선교구단을 자처한 원년(1983년) 참가팀 할렐루야 같은 경우는 뭐.... 프로야구도 반관반민 성격의 MBC가 주도하고 참가했다고는 하지만 나머지는 명백한 민간기업들이고 그나마도 1990년 [[MBC 청룡]]이 [[LG 트윈스]]로 넘어가면서 한국 프로야구에 공기업 혹은 반관반민기업은 자취를 감췄다. K리그는 태생부터가 그야말로 축빠 군바리 머통령이 내려먹이지 않았으면 애초에 출범이 불가능한 리그였던 것이다. 아니 애초에 육사 시절에 골키퍼까지 보던 '''축빠 군바리 머통령이 강제로 리그를 만들려면 축구를 먼저 만들겠나 야구를 먼저 만들겠나''' 머가리가 있으면 생각을 좀 해보자. 어째 여기에 의문 가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수가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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