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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인기 부진과 흥행 폭망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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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고의식에 대한 몰이해와 전지적 개포터 관점의 억지 연고의식 강요 === 요약하자면 K리그는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을 상대로하는 스포츠 리그이지만 국내 환경과 국민 정서(국민성)을 무시한채 K리그 행정가들이 인위적으로 설정한 연고지와 연고의식을 강요하다 망한 것으로 상술하자면 아래와 같다. 우선 K리그 조직한 새끼들이 벤치마킹한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면, 일본은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되게 연고의식이 강하고 지역감정이 세분화되어 있는 나라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한국에서 영호남이 통구이 홍어 이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 정도 수준의 감정을 거의 지역구별 시군별로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한다. 역사의 대부분이 통일왕조였던 한국과 다르게 지역별로 세분화되어 전국 시대를 겪은 일본은 행정구역별로 영웅화해서 모시는 지역의 위인이 있고, 전승이 있고 또 계승되어 온 연고의식이 있다. 일본의 프로스포츠들은 이 연고의식을 흡수하고 대리표출시키는 것을 주 마케팅 포인트로 삼아왔고 이 연고의식들은 긍정적으로 승화되어 다수의 일본의 체육을 활성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어 왔다. 심지어 마라톤이나 배구 같은 종목에서 약간의 활약만 보여도 '고슈 무사 다게다 신겐의 후예다'라며 지역적으로 푸시하고 또 그 영웅적 전승을 대리만족하는 그런 구조가 확립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스포츠들 중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것은 간토 지방의 요미우리 자이언츠 그리고 간사이 지방의 한신 타이거즈 구도로 가장 큰 연고의식과 지역대결 의식을 흡수한 프로야구이다. 그러나 최대 14개, 현재 12개 구단 규모인 NPB 구단만으로는 모든 지방 대도시의 프로스포츠 욕구를 해소해줄 수 없었다.<ref>'중소도시'가 아니다. 2004년 오릭스와 긴테쓰가 합병하고 새로 라쿠텐이 창단되고, 닛폰햄이 홋카이도로 가기 전까지 NPB의 구단 배치는 도쿄 및 수도권 6개(!), 오사카 및 킨키권 3개(!), 큐슈 1개, 추쿄권 1개, 추코쿠권 1개라는 심각한 지역 불균형 상태였기 때문에, 실제로는 인구가 꽤 되는데 프로스포츠팀이 없는 도시가 굉장히 많았다. 홋카이도와 센다이에 프로야구단이 생긴 지금도, 인구 70~80만이 기준인 정령지정도시들 중에서 2017년 현재 NPB 구단이 없는 도시는 사이타마(라이온즈는 도코로자와 시), 카와사키, 사가미하라, 니가타, 시즈오카, 하마마츠, '''쿄토''', 사카이, 코베, 오카야마, 키타큐슈, 쿠마모토로 무려 12곳이나 된다. 한국으로 치면 빠따 없는 청주 이상 되는 도시가 12곳이나 된다는 소리다. 참고로 이 도시들 중 쿄토는 쇼치쿠 로빈스의 연고지였지만 쇼치쿠가 성적 폭망으로 망해버렸고, 카와사키는 타이요 훼일즈와 롯데 오리온즈의 연고지였으나 둘다 관중 없다고 타이요는 요코하마로, 롯데는 치바로 런해버렸다. 코베도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연고지였지만 잘 알다시피 오릭스가 긴테쓰를 흡수합병하면서 오사카로 가버렸다.</ref> 이 수요를 적극적으로 해소하는 걸 사업 포인트로 삼아 만들어진 것이 야구보다 작은 규모로 많은 팀을 창단하여 출범한 J리그이다. 즉 중소 규모의 시민구단을 앞세워 출범한 일본의 J리그는 일본의 환경과 그에 따른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기획을 통해 성공한 것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한반도 내부투쟁보다는 중국, 일본 등 외부세력과의 투쟁에 초점이 맞춰진 역사 인식(사실 영웅호걸이 날뛸 전국 무장쟁패 시대라는 게 거의 없기도 했고), 천년이 넘는 중앙집권의 역사, 급속한 산업화로 등으로 인해 국내 여타 지역과 배타적인 역사인식, 지역정서 등을 갖춘 도시가 거의 없다시피 하며,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적극적인 연고의식을 표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나마 있는 게 현대사의 비극 속에 배타적 연고의식이 나타난 광주 호남지역 정도지만 이 역시 유구한 역사적 전통을 통해 성립된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아예 현대에 새로 건설된 성남시의 영웅이나 성남시의 역사에 대해 깊이 알고 감동을 느끼는 성남시민이 있나? 갯벌 메워 생긴 안산, 포항, 울산, 광양, 창원, 이런 동네로 가면 답이 없다. 한국에서 지역감정이 생기는 최소단위는 '시'가 아니라 '지방 혹은 도'이며(서울/경기 지방, 경상지방, 전라지방, 충청지방, 강원지방)이며 여기서도 거점 역할을 하는 대도시에 빅클럽을 만들어야 그나마 지역감정이나 애향심으로 인한 프로스포츠 흥행을 기대할 수가 있다. 한국이란 나라가 다른 나라처럼 전국적으로 대도시가 무수하게 많은 것도 아니고 위에 열거한 6개 지방의 거점 대도시(서울, 인천, 부산, 대구, 광주, 대전)에 인구와 영향력이 집중되어 있으며, 그나마도 이런 감정이 생겨난 것이 전체 역사로 보면 극히 최근이기 때문에 이 6개 대도시만 효과적으로 공략을 해도 전국을 커버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스포츠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법원이나 국세청, 병무청 같은 국가 행정관서, 심지어 방송국이나 민간기업 지사 배치만 봐도 대한민국 전체가 지역별 거점 대도시인 5대 혹은 6대 대도시 위주로 굴러가고 있고 이런 한국 사회의 시스템을 간파하여 대도시 연고지로 흥행을 극대화 시킨 것이 프로야구다. 즉 프로야구는 대도시만 잡아도 전국적인 국민 스포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 점을 잘 반영하여 영호남의 지역감정을 흡수해 기아 타이거즈는 광주 뿐만 아니라 전북,전남을 아울러 전라도 즉 호남을 대표하는 팀이 되었고 롯데도 부산 뿐만 아니라 경남 전체를 아우르는 팀이 되었다.''' 예) 대한민국 국세청 조직도<br/> 서울지방국세청 -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에 위치[12]. 서울지역 26개 세무서를 관할한다.<br/> 중부지방국세청 - 경기도 수원시 파장동에 위치[13]. 경기도, 인천광역시, 강원도의 32개 세무서를 관할한다.<br/> 부산지방국세청 -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2동에 위치.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경상남도, 제주특별자치도의 15개 세무서를 관할한다<br/> 대구지방국세청 -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곡동에 위치. 대구광역시, 경상북도의 13개 세무서를 관할한다.<br/> 광주지방국세청 - 광주광역시 북구 오룡동에 위치. 광주광역시, 전라북도, 전라남도의 15개 세무서를 관할한다.<br/> 대전지방국세청 - 대전광역시 대덕구 법동에 위치. 대전광역시, 충청남도, 충청북도, 세종특별자치시의 16개 세무서를 관할한다.<br/> 그러나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처럼 이런 한국 사회의 시스템과 아예 정반대로 대도시는 일단 제쳐두고 아무 영향력도 없고 지역감정도 없는 중소도시 위주로 운영한 것이 K리그의 패착이었으며 특히 1990년대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오는 그런 시점에 시류와 정 반대로 아예 서울 연고 3팀을 모두 지방으로 보내버리는 저능아스런 행정을 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이런 프로야구팀이 들어가 있는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말고도 프로스포츠 소비를 원하는 인구 100만급 대도시들이 여럿 있어서 그쪽을 발판으로 삼아 저변을 확대해 나갔으면 케이리그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그래도 K리그 제3기<ref>일단은 서울연고 공동화~2002년 월드컵 시기를 설정했다. 여기서 1기는 출범~완전프로화(1983년~1987년), 2기는 완전프로화~서울연고지3팀 시대(1987~1995년), 3기는 서울연고공동화~2002월드컵(1996~2002), 4기는 2002월드컵~단일리그 종료(2012), 5기는 승강제 시기(2013~현재)로 설정했다. 작성자 개인의 자의적 구분이니 많은 앰생들의 열렬한 토론을 기대한다. 좆같다고 삭제해버리면 뭐.... 별 수 없고....</ref>에는 머한 부동의 제2도시인 부산, 그리고 전통적인 거점 대도시는 아니지만 인구 70만에서 80만 정도의 언저리의 준광역시급 도시였던 울산, 수원이나 원래 인기가 좆쩔던 포항 등을 기반으로 그럭저럭 리그를 유지하면서 2002년 이후 나름대로 포텐을 터뜨려볼만한 여건은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2002년 월드컵 이후 축구계는 이런 한국 상황은 무시하고 J리그가 성공했다고 무조건 베껴다가 인구 50만이면 축구단이 성공할 수 있다며 좆민구단을 존나게 쳐늘리는 것이었으니 안 망하는 게 이상한 노릇이었다. 하기사 포텐이고 나발이고 서울에도 신규팀이 안 들어오는 판이니 답이 없긴 마찬가지였네(쑻) 중요한 사실은 K리그가 벤치마킹했던 J리그에서도 정작 인기 팀들은 도쿄, 오사카, 요코하마, 사이타마, 나고야, 가타 같은 대도시권에 있으며 그 외 히로시마, 센다이, 고베, 지바, 삿포로, 교토, 후쿠오카 같은 대도시권의 팀들 역시 우리나라의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연고팀들처럼 무존재감에 대부분의 경기를 무관중 징계중인 그런 팀들이 아니다. 참고로 이 일본의 대도시권이라는 걸 한국의 대도시권과 동일하게 생각하면 여러모로 곤란하다. 일본은 급행이 잘 정착된 통근전철 시스템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한국에 비해 개별 지자체의 면적이 작아 시가지간 거리가 멀지 않기 때문이다. 덧붙여 다른 파트에도 서술되었지만 중소도시 연고지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을 부추기는 사례로 J리그가 이용되고 있는 경우가 있지만 실상은 J리그 역시 중소도시 구단들의 흥행으로 리그 전체 인기가 견인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 프로야구와 겹치는 대도시 연고지에 위치하는 아래와 같은 전통적인 대도시 연고지의 대기업 구단들의 흥행이 있었기 때문이며 우라와레즈, FC도쿄, 요코하마F마리노스는 2015시즌 나란이 평균관중 2만명을 넘고 흥행 1위에서 3위를 마크하였다. 도쿄(FC도쿄-도쿄가스), 오사카(감바오사카-마쓰시타전기), 오사카(세레소오사카-얀마), 요코하마(요코하마F마리노스-닛산자동차) 사이타마(우라와레즈-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나고야그램퍼스-도요타자동차), 히로시마(산프레체히로시마-마츠다자동차) 분명 반포레 고후, 가시마 앤틀러스 같은 일본 소도시 연고구단이 흥행 성공도 분명 존재하지만 이것은 대한민국과 환경과 국민정서가 다른 일본 내에서도 예외적이고 특이한 경우인데 이걸 한국에 가지고 와서 본받자는 것 보다는 같은 대한민국 영토내에서 똑같은 대한민국 국만 상대로 대도시 연고지에서도 흥행에 성공하는 빠따 사례를 더 연구해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그리고 한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J리그의 탄탄한 연고의식과 자금력이 어디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JR이 국철의 후신이듯, J리그도 JSL, 즉 실업축구 체제의 일본 사커 리그를 프로화시켜서 출범 한 것이다. 물론 한국도 K리그, 정확히는 슈퍼리그 출범 이전부터 실업축구연맹전이 있긴 있었지만 막상 이 둘의 참가구단 구성은 전혀 달랐다. 1982년 실업축구 코리언리그 참가팀이 포철, 대우, 현대를 제외하면 정부기관<ref> 서울시청, 철도청</ref> , 군팀<ref>해룡, 웅비, 성무</ref> , 금융사<ref>국민, 제일, 기업, 조흥, 주택, 서울신탁, 한일, 상업, 외환</ref> 로 떡칠이 된 데 반해 1991년 JSL 1부 참가팀은 대기업들<ref> 요미우리, 닛산, 혼다, 토시바, 토요타, 마츠시타, 아나, 야마하, JR동일본, 미츠비시, 히타치, 마츠다 등</ref>이 망라되어 있었고, 2부 참가팀은 규모는 크지 않아도 엄연한 기업팀들<ref>후지타, 스미토모 금속, 얀마, NKK, 후지쯔, 오츠카, 도쿄가스, 카와사키제철, NTT칸토, 코스모, 추요방범, 토호티타늄, 타나베제약 등</ref>이 대다수였으며 그 와중에 고후, 쿄토시코 등의 순수 클럽팀까지 존재했다. 게다가 이 실업팀들은 프로만 아닐 뿐이지 엄연히 연고지와 홈구장까지 갖추고 운영되었다. 이정도의 기반과 인프라가 닦여있으니 스미토모 금속 축구팀을 전신으로 하는 카시마가 이바라키현 43개 기업의 합자로 아낌없이 투자해 해안가 소도시에 처박혀서도 저기가 우리동네 팀이라며 사람들이 현 경계 넘어 경기 보러 찾아와 J리그 최고의 인기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지, 뭐 일본인들의 축구 사랑이 머한 찜쪄먹어서 몇만명씩 대인원을 유치한 게 아니다. 다른 구단들의 경우도 모기업 하나가 온전히 팀을 꾸리기보다는 프로로 넘어오면서 다른 지역 기업들의 합자를 통해 프로팀 법인을 출범시키는 방식을 택했다. 한국에서도 야구는 1970년대 지역별 거점 대도시의 명문 고등학교들이 참가하는 [[고교야구]]를 통해 연고 지역민들의 자랑거리이자 애향심을 발산하는 수단으로서 기반을 다졌고, 1982년 프로야구를 출범시켰을때 이런 기반을 살려 지역별 거점 대도시 위주로 연관된 대기업들을 잘 배치하고 해당 지역 고교팀 선수 위주로 선수를 뽑아 우리 고장 팀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자연스럽게 영호남 갈등을 비롯한 당시 지역갈등이 프로야구판에 투영돼서 야구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어도 '우리 고장 XX팀이 다른 지역 XX팀에게 지면 되나' 이런 생각에 프로야구를 보며 자연스럽게 지역연고 정착에 성공했다.<ref>웃기게도 5공정권은 국민의 관심을 돌리고 싶어 프로스포츠를 만들었지만 지역연고제를 정착시키면 지역감정이 격화되는게 아닌가 하며 걱정했다.</ref> 한국 축구도 사실 지역 대표나 클럽 축구의 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 전조선축구대회만 봐도 서울 평양 등 주요 대도시의 내로라하는 축구팀들이 모두 모여 성황리에 치러졌고, 아예 서울과 평양 대표팀이 정기적으로 맞붙는 경평축구대항전이라는 걸출한 더비까지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런 축구붐을 이끌었던 평양, 함흥, 청진 등 북부지방 도시들이 분단으로 한국 축구의 영역에서 벗어나면서 한국 축구는 서울 외 지역에서의 연고의식을 새롭게 다져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하지만 남부지방에서는 이미 일제강점기부터 고교야구가 큰 인기를 끌고있었고<ref>단 고교야구의 인기는 1970년대 이전엔 주로 수도권과 영남권에 집중되었다. 호남과 충청권에서 고교야구 붐이 일이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ref> 국가대항전이 적은 특성상 주로 국내 경기를 즐기는 형태로 발전해왔다. 반면 축구는 해방 이후 국가대항전으로 일본, 북한 등 다른 나라를 이기고 국제대회에 참가해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데에 축구인과 일반인 할 것 없이 이목이 집중되어 자연히 국내 팀간의 대결과 여기서 비롯되는 연고의식 형성에는 소홀한 면이 있었다. 단적인 예로 1968년 신설된 대통령금배 전국고교축구대회는 '''미래에 국가대표가 될 청소년 축구선수들의 실력향상'''이 목표였다. 지역 학원팀들이 지역사회와 일체화 될 기회 자체가 대단히 적었다. 이렇게 [[프로야구]]와 달리 기반이 없었던 프로축구는 원년부터 [[프로야구]]와 비슷하게 거점 대도시 위주로 연고지 분배를 하고 유랑극단 시대 이후 1987년부터 광역연고제를 시행하여 [[부산 아이파크|대우 로얄즈]]-부산/경남, [[포항 스틸러스|포항제철 돌핀스]]-대구/경북, [[제주 유나이티드 FC|유공 코끼리]]-인천/경기, [[FC 서울|럭키금성 황소]]-대전/충청의 각 연고지에서 홈경기를 하였다. 하지만 이미 빠따가 20년 넘게 씨를 뿌리고 선점한 거점 대도시에서 3년 정도 시간으로 정착하기가 힘든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했고 좀 더 시간을 두고 밑바닥부터 거점 대도시 연고지 정착에 힘을 기울여야 했다. 그러나 1990년부터 거점 대도시 위주의 광역연고제를 포기하고 [[포항 스틸러스|포항제철 돌핀스]]는 TK의 핵심도시 대구 대신, 경북 포항으로 스스로 연고지를 축소하고 [[FC 서울|럭키금성 황소]]와 [[제주 유나이티드 FC|유공 코끼리]]는 서울로 올라오는 등 도시지역연고제가 시행되면서 1차 연고지 재편이 일어났다. 그 후 월드컵 유치 때문에 일본과 경쟁이 붙고 [[J리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고 하자 이번에는 J리그를 모방해서 구단명에서 기업명 대신 지역명을 붙였다. 그리고 '[[프로야구]] 연고지와 안 겹치는 중소도시 연고지로 가면 상대적으로 문화적 시설이나 혜택이 부족한 해당 지역민들이 프로축구장에 올 것이고 이러다 세월가면 연고지 정착에 성공할 것이다'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중소도시 연고지가 대안이라며 [[서울연고공동화정책]] 등을 시행해서 K리그를 완전히 중소도시 위주로 돌아가는 구조로 고착화 시켰다. '''여기서 스포츠구단 지역연고의 선후관계를 명확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 지역 연고가 확립된 스포츠 구단은 연고의식의 형성 수단이 아닌 표출 수단이다. 즉 지역 연고 의식은 정치, 경제, 문화, 역사적 배경의 산물로 아무리 프로 구단들이 지역명을 붙이고 엠블렘에 지역을 상징하는 동물 등을 넣고 개포터 몇백명이 지역명 들어간 응원 구호나 노래를 부른다고 생산되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가스렌지에 불을 붙여서 라면을 끓여야 하는데 끓는 라면 냄비 올려놓으면 가스렌지에 불이 붙을거라고 생각하는 수준의 심각한 사고력 결핍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짜 이렇게 지역 연고의식이 정착되는거라면 K리그가 프로야구의 연고의식을 압도하고도 남았을것이다.''' 참고로 K리그 개포터들은 유럽과 남미 응원가는 불러도 지역 상징하는 대중가요는 촌스럽다고 거의 안 부르고 있다. ㄴFC서울은 서포터들이 서울의찬가 부르는데? ㄴㄴ 그래서 그나마 개리그에서 FC서울이 가장 인기 있잫아...그리고 한두가지 예외가지고 반박하는 것은 역시 케뽕충 주특기 반면 빠따는 동네 노래 찾다 찾다 한화는 '내고향 충청도', 삼성은 '능금꽃 피는 고향' 부르고 없으면 NC '마산 스트리트'처럼 아예 하나 만들어서라도 부른다. 촌스럽다고 놀림은 받을지언정 우리 동네를 상징하는 이런 노래가 있다는 건 야구단 없었으면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유럽축구도 각 나라의 지역주의 질서와 결합돼 그 질서가 생산하는 지역연고의식을 축구로 내뿜게 함으로써 우리가 부러워하는 '축구클럽과 연고지역의 깊은 유대와 밀착'이 생긴 것이지 유럽 축구클럽들의 특별한 마케팅이나 노력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유럽에서도 축구리그 잘 나가는 나라들은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하나같이 지방자치 역사가 길고 지방색이 강한 나라들이다. 유럽에서도 중앙집권 역사가 독보적인 프랑스가 축구실력이나 역사와 별개로 리그가 흥하지 못하는 게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K리그는 그나마 지역민들의 애향심을 이용해 연고의식을 형성하고 프로스포츠 흥행을 기대해 볼 수 있는 대구, 인천, 광주, 대전이나 가장 큰 서울을 외면하고 중소도시 위주로 기업팀 보내거나 혹은 스스로 연고를 선택햇다. 대도시 지역민들은 가난한 시민구단들의 마케팅에는 감흥을 못느끼고 있으며, 투자가 적어 주전선수조차 이적해버리는 상황을 보면서 연고의식은 커녕 관심조차 주지 않고 있는 상황. 기업팀의 기업명을 빼고 [[개포터]]들이 방방 뛰고 점핑하면서 지역명 들어간 응원가 좀 외치면 지역민들에게 연고의식이 생겨서 흥행성공을 이룰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구현한 것이 현재의 K리그이다. 사실 애향심 활용 측면에서도 서울팀을 몇 개 유지하는 게 존나 중요했다. 잠실경기에서 기아 롯데팬 얼마나 오는지, 문학경기에서 한화팬 얼마나 오는지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개넥센은 아예 원정팀 장사가 주 전략인 판이다. 머한은 산업화 과정에서 진심 개노답좆노답씹노답수준으로 수도씹집중화 크리가 터져서 '''지방연고지 현지팬 모으는것보다 서울에 거주하는 지방연고지 출신 팬들 끌어모으는 게 더 쉬운''' 개막장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그나마 지방팀 경기 구경할 원정팬 쉽게 모을 수 있는 수도 서울을 한순간에 휘리릭 하고 날려먹은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라는 희대의 개병크는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동대문에서 [[FC서울|LG 치타스]]랑 대우 로얄즈랑 붙으면 붓싼 출신들이 '어 마 붓싼 팀 한달에 한 번 보기도 힘들다 아이가 응원하러 가자 안카나!' 하면서 몰릴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싸그리 날아가버렸단 말이다. 하기사 부산 빼면 지방팀이라는 게 죄다 포항 전주 광양 이런 중소도시 연고구단들이니 마냥 서울연고팀이 있다고 해서 지방팀 응원팬들이 그렇게 많이 몰릴지 의문이긴 한데 적어도 기회 자체가 종범인것보단 낫지 않겠나? 게다가 서울 야구팀만 봐도 팬덤이 그냥 마구잡이로 뒤섞여있는 게 아니고 20~30대 & 50~60대 두산/ 30~40대 LG<ref>두산의 팬덤은 세대간 간극이 좀 큰데, 이는 1994년 이른바 신바람 야구로 서울 저연령 팬덤이 일거에 LG로 몰렸고 두산은 아재들이나 빠는 투박한 팀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두산이 이 형국을 역전한 것이 바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었다.</ref> / 서남권 & 언더독 성향-넥센 하는 식으로 어느정도 구도가 잡혀 있다. 프로축구도 이와 비슷하게 초창기에 일화, LG, 유공이 동대문운동장을 같이 사용하면서 일단 서울 연고팀으로 기반을 잡고 서울 각 지역 운동장으로 퍼져나가는 식으로 했더라면 서울이라는 천만 거대시장에서 꽤 재미있는 구도를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ref>실제로 일화-동대문, LG-잠실, 유공-목동 이런 식으로 서울 연고 3개 구단이 서울 내에서 각각 지역을 분할해서 운영하는것이 검토되기도 했었다.</ref> 만약 특정 구단이 연고지 이전을 생각한다면 한 지역 - 그것도 대한민국 유일의 천만도시 - 에서 아무리 못해도 10년 정도는 상황을 지켜본 후에 더 이상 답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 때 가서나 결정을 하는게 정상이다. 빠따 현대가 하루아침에 인천에서 야반도주했다고 욕먹지만 이쪽은 [[삼청태현]] 합쳐서 무려 17년간 인천에 붙어있어봤고 그 결과 시장성이 좆망이라는 판단 하에 연고이전을 감행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전후사정을 보면 현대가 야반도주 직후에 갑자기 그룹이 병신돼서 붕 떠버린 게 문제지 서울 이전이라는 방향 자체는 이상할 것이 없었고 그 직후 창단된 SK도 가능한 한 최대의 시장을 찾아 처음 연고지로 준비하던 수원을 버리고 광역시인 인천을 찾아갔다.<ref>이 인천 결정도 꽤나 모험이었다. 인천시의 스포츠구단 지원은 정말 한심하기로 악명이 높았고 유공과 현대가 인천을 떠난 데에도 꽤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뭐가 됐든 가장 큰 시장을 선점하고 보자는 SK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았다.</ref> 반면 축구의 경우 일화 천마가 1989년, LG 치타스 1990년, 유공 코끼리가 1991년 서울 연고팀이 되었고 서울연고공동화정책이 결정된 1995년이면 각 구단이 서울에서 정착한지 겨우 5년 내외 정도, 겨우 연고지에서 씨 뿌리기 정도만 한 수준에 불과했다. 그것도 한 구단 정도만 남겨둔것도 아니고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완전 리셋시킨것은 정말 머가리를 폼으로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싶은 병신행정이 아닐 수 없다. 전용구장까지도 필요없고 셋 중에서 하나만, 예를 들어 유공이 부천이 아니라 목동운동장에 자리잡고(실제로 이전 초기엔 부천에 쓸 구장 없어서 2000년까지 목동운동장 씀) 조금만 팬 모으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해봐라, 넥센처럼 어느날 갑자기 뚝 떨어진 애미애비 없는 팀도 몇 년 아등바등 하니까 적어도 목동에서만큼은 나름 세력 갖췄다.<ref>참고로 2016 총선때 언론사가 재미삼아 조사했는데 양천구는 넥센이 인기 1위 했다. 근본없이 서울 비집고 들어온 10년도 안된 팀인데도.</ref> 이런 기회를 다 날려먹은 게 현재의 K리그다. 위에서 전조선축구대회나 경평축구대항전 얘기 했지만 그 조선 축구붐의 사실상 남방한계선이 바로 서울이었다. 막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북쪽의 축구붐과 남쪽의 축구붐이 만나는 일종의 점이지대였는데 거기서 축구는 하루아침에 싹 빠져버리고 야구만 지배하는 시기가 무려 10년이었다. 하긴 생각해보니 그놈의 좆포터즈들이 살아있는 한 원정팬들이 몰려오면 가꾸목 들고 와서 전쟁 나겠네 ㅋ 프로야구와 안 겹치는 중소도시 대기업 구단들이 관중이 조금 들어온다고 하지만 웃프게도 인근 대도시 부산 연고 롯데자이언츠가 울산에서 홈경기를 하고 대구 연고 삼성라이온즈가 포항에서 홈경기를 할 때 울산 시민, 포항 시민들이 더 좋아하고 오히려 지역색과 애향심이 강한 대도시에서는 [[좆민구단]]들이 지역명 달고 지역 망신 시키는 수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수원 역시 [[kt 위즈]]가 들어와 첫해에 이거 망했네 어쨌네 하더니 결국에는 제법 안착해서 순항중이다. 여담으로 K리그 [[개포터]]들은 개포터들이 생기고나서 지역명 부르는 구호나 응원가 생겼으니 1990년대 후반 [[개포터]]들이 나온 후 한국 프로축구에 연고의식이 생겼고 프로야구는 아직도 기업명 부르고 있으니 연고의식은 프로축구가 더 앞선다며 개소리를 하는데, 자기 고장팀이라서 응원한다는 아주 간단한 연고의식은 축구 개포터만이 깨우칠 수 있고 이걸 깨우친 개포터들이 한국 프로축구에 연고의식을 전파시켰다니 어디 이런 전지적 개포터 관점이 있다냐.... 1994년 스포츠신문 개막특집 기사에 가수 남궁옥분이 '서울 태생인 나는 서울을 연고로 하는 LG치타스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라고 한 인터뷰 내용이 실렸으니 차라리 한국 프로축구의 연고의식은 가수 남궁옥분이 전파시킨걸로 해야 맞지 않을까 본다. 당시축구행정가, 축구팬 등등 아무도 생각지 못한 자기 고향이나 사는 지역 연고팀을 빤다는 이런 고차원적인 개념을 단 한마디로 정리하여 가르쳐 주신 남궁옥분니뮤.... [[파일:K리그연고의식선구자-남궁옥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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