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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E 1915 쇼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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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 미국의 [[존 브라우닝]]이 1906년 완성한 레밍턴 모델 8형 반자동 소총에 적용된 '''롱리코일 방식'''과 여기에 '''가스작동식'''을 추가했다. 프랑스군의 기존 제식 탄환인 '''8x50mm 르벨(Lebel)탄'''을 사용했는데, 1908년 프로토타입(초기) 모델이 완성되었다. '''새롭게 등장한 [[경기관총]]은 유효사거리가 약 200미터로 그다지 긴 수준은 아니었고, 분당 200발 수준인 둔한 발사 속도도 기관총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해결을 했다고 본다. 무게가 기관총으로는 상당히 가벼운 약 9.1킬로그램 정도라서 각개 병사가 휴대하여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발들이 탄창을 이용하여 부사수의 도움 없이도 사격을 할 수 있었고, 숙련된 사수라면 돌격하면서 난사도 가능했다.''' 그러나 작전에 투입되려면 탄약을 휴대하는 별도의 병사가 필요했으므로 보통 3~4명이 한 조를 이루어 전투를 이루었다. '''이 경기관총의 본격적인 양산은 1차대전이 발발한 이듬해인 1915년부터 시작되었다. 이때 군 당국이 붙인 정식 명칭은'Fusil-Mitrailleur Mle 1915 SCRG'라는 긴 이름인데'''(프랑스다운 쓸데없이 긴 이름)''','''이를 줄여서 'Mle 1915' 또는 'M1915 CSRG'라고 했다. 하지만 개발자의 이름을 따서 흔히 '''쇼샤'''라고 불리는데, 이렇게 개발자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것은 프랑스 무기 체계에서는 보기 드문일이었다. 전쟁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대량생산 된 쇼샤는 전선에 바로 공급되어 분대지원 화기로 활약했다.'''(말이 활약이지 사실 병사들 암세포만 증가시켰다. 그이유를 보자)''' 개발 당시부터 쇼샤는 당시 기관총들의 보편적인 생산방식인 절삭가공을 최대한 배제하고 총 몸통 등의 상당 부분을 [[철판프레스]] 가공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따라서 재료 낭비가 적고 생산성이 탁월하여 저렴한 단가에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이 때문에 1922년까지 약 26만 정이 생산되었는데, 이로써 쇼샤는 1차대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자동화기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다.'''(그리고 역대 최악의 총이라는 타이틀도 말이지...)''' 이렇게 많이 만들어지다 보니 [[프랑스]]군뿐 아니라 [[미국]]•[[벨기에]]•[[이탈리아]]•[[루마니아]]•[[러시아]]•[[세르비아]]등 많은 [[연합국]]에 공급되었고 [[독일]]군도 종종 노획한 '''쇼샤'''를 사용했다. 특히 [[미국]]은 르벨탄보다 강력한 자국의 7.62x63mm 스프링필드탄에 맞게 개조한 모델을 일부 사용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서술한 것만 본다면 쇼샤가 흠잡을 곳 없는 훌륭한 경기관총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빠졌는데, 바로 성능이 나빴다는 점이다. 기계적 결함이 너무 많아 일선에서 쇼샤를 신뢰하지 않았다. 총의 첫 번째 선택 기준이 성능인데, 웃기는 사실이지만 쇼샤는 이것만 빼고 괜찮았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얼탱이없는 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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