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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orted>Lime님의 2023년 7월 7일 (금) 18:31 판 (→‎조선의 4대 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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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황족 훈구 VS 지방 사림의 밥그릇 싸움

야구로치면 범죄 쥐 거쥐 올스타 VS 홍통야칰 올스타로 요약할 수 있다.

근엄한 황족니뮤들이 매번 참교육 시전을 하지만 결국 물량에 밀려 성리학 탈레반이 집권.

성리학 꼴통들의 헬조선화를 막아보려는 수도권 황족들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요약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죠광죠의 기묘한 사화 이다.

디시위키에 자꾸뜨는 광고만화 제목이기도 하다.거 그림체 한번 더럽네

ㄴ 근데 훈구도 헬조선 化에 먼저 기여한 놈들인데? 애초에 훈구의 시초가 수양대군 개객기한테 붙어먹은 십선비들인데... (제대로 된 선비들은 단종 ~ 세조 연간에 다 갈려나감)


조선의 4대 사화[편집]

  • 무오 사화


연산군 즉위 4년에 벌어진 사화다.

연산군의 아버지인 성종은 왕이랑 전혀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성종의 아버지인 의경세자(세조의 장남)이 요절했다지만, 의경세자의 장남이자 형인 월산대군이 있었으니까, 근데 월산대군은 몸도 약하고 정치적으로 뭔가 해볼려고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세조가 죽자 정희왕후(세조 정비)는 왕으로 의경세자의 동생이자 세조의 차남을 선택했고, 그가 곧 예종이된다.

근데 예종이 즉위하고 일 잘하다가 1년만에 급사해버린다, 예종의 자식들중에서, 장남이였던 애는 3살도 안되서 요절해버리고, 이후에 낳은 아들중에서 제안대군 한명있었는데, 얘는 아직 4살 밖에 안되서 왕위고 나발이고 세상 구경하느라 바쁜 시절이라

제외됬고.. 남은건 자을산군이였는데, 뭐 자을산군 부인이 한명회의 딸이기도하고, 하여튼 이렇게 되버리자 정희왕후(아직까지 살아있는 세조의 정비)가 자을산군을 지목하고, 그가 곧 성종이된다.

훈구파(계유정난 공신 집단)에 의해 옹립된 왕이라서 그런지, 그 당시 궁궐에 많았던 훈구파 신하들한태 질질 끌려다니는 그런 면이 없지않아 있었다. 그래서 이를 견제할 목적으로 지방 사림들을 대거 등용시키는데

이때 유명한 김종직과 그의 친구들이 지방에서 올라와 3사의 언론직과 사관직 자리에 앉고 그동안 해왔던 사치등등 사사건건 시비를 걸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훈구파들을 견제하기 시작한다.

사림이랑 훈구랑 치고박고 싸우다가 시간이 지나서 김종직도 죽고, 성종도 죽자, 이후 왕에 오른 연산군은 전통에따라 신하들한태 성종 실록을 제작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근데 이때 사림쪽 소속이였던 김일손이 사초에 이상한 내용을 적기 시작하면서 일이 발생했다.

애초에 사초는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적는건데, 김일손은 주변의 소문이나 근거 하나도 없는 개소리를 적기 시작했고

김종직이 꿈에서 꾼 이야기를 시로 쓴 조의제문이라는 글을 사초에 적는데 김종직이 꿈을 꿨는데 먼 옛날 초한지의 배경이였던 초한쟁패기에, 초나라의 황제로 등극한 어린 황제가 있었는데, 얘가 바로 의제다, 물론 항우가 훗날 의제를 죽여버렸는데.

이 의제가 김종직 꿈에 나와서 나는 초나라의 황제인 의제인데 강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를 외치고 사라지자 마자 김종직이 잠에서 깬것이다.

내용 자체가 좀 어렵게 써있어서 그런지, 나중에 유자광(훈구)이 이 시문을 해석해보니, 조의제문 등장 인물에서 시해당한 의제는 단종 이홍위 였으며, 살해를 지시한 항우는 연산군의 할아버지인 세조였던것.

하여튼 이런 개소리와 뜬구름 잡는 소문들을 사초에 적기 시작했고, 실록 제작 자체땐 묻혀있어서 그려려니 했지만, 이제 편집을 완료하고 최종적으로 검수하던 이극돈이라는 훈구파 대신이 조의제문등 김일손이 사초에 써 넣은 내용을 보고 깜놀하며

그 당시 춘추관(실록청의 상위 기관)의 대장이였던 영의정과 상의했고, 상의 결과 '야 이거 진짜 밖으로 나가면 좆될수도 있으니 수정해야겠다' 라고 하며 수정을 하려고했으나

이게 다른 훈구파 대신들까지 알게되고, 결국 소문은 퍼져 연산군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

당연히 연산군은 개빡쳤고 사초를 보고자 하였으나, 그 당시 대신들이 극구 말려, 대신들이 생각하기에 문제점이 있는 부분만 발췌,그 부분만 전달했다.

어찌됬던 연산군은 김일손을 심문하는데

이때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과 화술주시(동진의 마지막 황제였던 공제가 훗날 송나라가되는 유송의 초대 황제였던 유우한태 선위했는데,유우가 공제를 죽여버림, 마찬가지로 단종이 세조한태 선위하는걸 욕하는 글임)라는 글을 사초에 적어넣었다고 진술한다.

이걸 본 연산군은 '이 씨발 개새끼들 이딴 생각을 가지고 있는 새끼들이 왜 벼슬을 하고 앉아있냐 무서워서 시발 부랄떨린다 개새끼들' 하며

김종직을 부관참시하고 김일손을 거열형하며 그 밖에 관련된 사림들을 모조리 다 사약먹이거나 귀양보냈다.



  • 갑자 사화


이 사건은 그냥 연산군의 복수다.


연산군 즉위 9년이 되는해, 폭군처럼 맨날 술쳐먹고 놀던 연산군은 어느날 대신들과 잔치를 벌이고 있었는데

예조 판서였던 이세좌가 연산군이 내려준 술을 먹다가 흘려버려서 연산군의 옷을 적셔버리는 일이 있었다.

이세좌가 죄송하다고 상소문까지 쓰고 개같이 빌었지만 개빡친 연산군은 그런게 없었고, 그냥 파직시키고 귀양보냈다

이후 연산군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1년후 풀어주고 한양으로 다시 불려들어서 사이좋게 술도 먹고 화해하는걸로 끝나는거 같았지만.

그러다가 연산군 10년, 간택령을 내리고, 경기도 관찰사였던 홍귀달의 손녀에게 입궐시키라는 어명을 내리지만, 홍귀달은 좆까하며 무시한다.

연산군은 '아니 씨발 신하된 새끼들이 왕의 명령을 어겨? 이런 시부랄, 이건 다 내가 이세좌를 오냐오냐해서 풀어준거 떄문이야!' 하며

이세좌를 다시 유배보내고, 그의 자식들까지 곤장을 후려치며 유배보내버렸다.

일주일뒤,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 사건에 관련하여 어머니를 모함한 죄로 성종의 후궁인 귀인 정씨와 귀인 엄씨를 창경궁으로 끌고와 개같이 패기 시작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깜깜한 밤에 귀인 정씨의 아들이자 자신의 이복 남동생이였던 이항과 이봉을 강제로 대려오고

그 앞에 있는 연산군은 귀인들을 가리키며 '이 여자들은 죄가 많으니 몽둥이찜질좀 해라' 라고 명령을 내린다.

이봉은 눈치까고 안했지만 이항은 주춤주춤하며 어찌됬던 왕명이니 때렸긴했다, 연산군은 시원치 않아 사람을 다시 불러 귀인들을 몽둥이로 때려죽였다.

계비였던 자순대비(중종의 어머니)로 칼들고 찾아갔지만 왕비였던 신씨(거창군부인 신씨)가 극구 말려 포기했고

이항과 이봉의 머리채를 붙잡으며 인수대비(세조의 장남이였던 의경세자의 부인, 즉 연산군의 할머니이다) 앞으로 끌고가 강제로 술을 따르게하며

'손자에게 참 이르실 말은 없으십니까?' 라고 묻고, 충격받은 인수대비는 한달후에 사망한다

대비전에서 나온 연산군은 이항과 이봉을 창덕궁에서 내쫒아버리고, 내관한태 귀인 정씨와 귀인 엄씨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려 젓갈로 만들고 그것을 들판에 뿌리라는 지시와 함께

그 둘을 폐서인시켜버린다.

그리고 이항한태는 잘 때렸으니 말을 선물했고, 이날부터 훈구와 사림 관계없이 관련된 자들의 숙청이 시작했다.

일단 폐비윤씨한태 사약을 배달한 이세좌와 폐비하는것에 적극적으로 동의한 윤필상에게 자살하라는 어명을 하고

이미 죽어서 무덤에 있는 한명회,정창손 등등 관련자들을 부관참시하고

옆에서 정치좀 잘하라고 간언하던 한치형은 부관능지(참시의 업그레이드 버전,목만 자르는 참시랑 다르게 시신을 전부 토막내버리는것)했다.

그것도 모잘라서 한치형의 일족을 전부 죽여버렸으며, 이세좌가 광주 이씨였는데, 이거랑 관련있는 광주 이씨 출신 관료들을 귀양보내거나 죽여버렸다.

이때 진짜 많이 죽었다. 앞의 무오사화는 50명이 처벌받았고 6명이 죽었지만 갑자사화는 처벌 받은 사람만 500명이며, 진짜 죽거나 시신 훼손당한 사람은 120여명에 달한다.

뭐 8족을 멸하네 10족을 멸하네 해도 조선은 그냥 주동자만 죽이고 나머지들은 노비로 강등시키거나 유배만 보내는 선에서 끝냈는데, 연산군은 진짜 8족까지 다 쳐죽여버렸다.

이리하여 연산군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게됬고, 이 권력가지고 일은 안하고 개같이 술쳐먹고 놀기만하다가 중종반정이 일어나서 쫒겨났다.


  • 기묘 사화

죠광죠의 기묘한 사화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림이였던 조광조의 무리한 개혁 정책(위훈 삭제)로 인해 훈구파들이 빡치게했고, 중종도 저 정책 자체에 부담을 느껴 명분을 만들고 사림파의 대가리를 깬 사건이다


중종 반정은 훈구파애들이 중종을 옹립하며, 성공한 쿠테타였고, 중종은 즉위하여 잘 하다가 또 훈구파들이 개지랄하자 지방 사림들을 등용하기시작했는데,

이때 등장한것이 죠광죠이다.


조광조는 다양한 정책을 간언하여, 집행했는데, 가장 무리수가 소격서(도교 제사 지내는곳) 폐지와 위훈 삭제였다.

소격서 폐지는 세종과 성종이 이걸 왜 안했냐며 헛소리를 하는, 즉 왕족을 욕하는거였고

위훈 삭제는 즉 공신은 공신인데 가짜 공신이 있어, 이 가짜 공신을 제거하자 이거였는데, 이게 트리거가 되어

중종이 소격서 폐지의 명분을 이유로, 조광조와 기타 등용된 사림들을 전부 귀양보내거나 사약을 보내 죽여버렸다.


  • 을사 사화


마지막 사화, 그냥 명종 즉위년에 벌어진 왕의 외척들간의 싸움이였다. 파평 윤씨 내부에서 윤임(대윤)과 윤원형(소윤)이 싸워 윤원형이 이긴 사건.


양재역 벽서 사건을 결정타로 대윤을 모조리 내쫒아버리고 소윤이 이겼다.